하늘을 향한 마음/마음을 열고

아들에게 쓴 협박편지

주님의 착한 종 2009. 1. 14. 18:48




 

아들아, 

 요즘 아빠가 아침에 양말을 찾아 신으면서 자꾸 네 양말에 손이 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양말을 신고 다닌 거 같은데

무심코 꺼내 신으면 어중간한 양말 길이에...

 

참 많이도 컸다. 

초등학교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학년이라니..

세월이 유수 같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구나.

그런 네가 요즘 엄마와 자주 대립하는걸 보면

아빠가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구나.

결론부터 말하고 시작 한다면 이 아빠는 무조건 엄마편이다.

그건 네가 크면 자연히 알 테니까 그냥 받아들여라.

퇴근하고 들어가면 요즘 아빠는 집안 눈치를 살핀단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하루가 멀다 하고 집안 분위기 살벌 하잖냐..

넌 책상에 앉아서 연필 토닥토닥 거리면서 깐죽이고

그 뒤에서 엄마는 팔짱 끼고 씩씩거리며

아빠가 들어 왔는데 눈길 한번 안주잖냐,

그리고 자기 아들이 말 안 들어서 죽겠다며 어떻게 해보라며

쌩 나가 버리고..

하루 일과에 지친 아빠와,

엄마의 등쌀에 지친 너와 둘이 마주 앉아 뭔 얘기를 하겠냐,

이 상황에 아빠는 정말 돌아버리겠다.

 

지금부터 아빠가 흥분 할 테니 말이 좀 거칠어도 이해하거라.

첫째, 엄마한테 왜 개기냐?
엄마가 뭐라고 훈계를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네가 얼마나 잘났다고 엄마가 물어보는 말에 입 꼭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하냐?

그런 너의 태도가 엄마를 더 열 받게 한다는 걸 모르냐?

아빠는 항상 엄마가 뭐 물어보면 신속하게 대답하는 거 안보이냐?

둘째, 무슨 일이던 엄마가 시킨 일은 엄마 입에서 두 번 다시

말 안 나오게 좀 깔끔하게 처리할 수 없냐?
왜 꼭 두 세 번 얘기해야지 그때서야 어기적어기적 움직이냐?

너도 12년을 엄마랑 같이 살았으면 엄마 성격 알 거 아니냐?

아빠는 엄마 표정만 보고도 움직이는 거 안보이냐?

셋째, 왜 다른 엄마하고 비교하냐?

다른 엄마는 이러는데 누구 엄마는 이러는데 하면서 깐죽이는 건

네가 매를 버는 거라는걸 왜 모르냐?

너희 엄마만큼만 자식한테 애정 보이면 일등 엄마라는걸 왜 모르냐?

아빠가 언제 다른 여자하고 엄마 비교하든?

아빠가 항상 엄마가 젤 예쁘다며 못된 자신감 심어 주는 게

아빠가 비위가 좋아서 그러겠냐?

아빠의 노력이 안보이냐?

아들아 네가 어제 잠들기 전에 말했지
"
나 다시 유치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 순수했던 시절로...."

아빠 그 말 듣고 웃음 참느라 코 나왔다.

너 자신도 아는구나. 네가 지금 얼마나 때묻고 타락 했다는 걸..

아빠가 예언 하는데 아마도 조만 간에 너한테 매를 들 것 같다.

항상 엄마는 너한테 악역 만을 담당하도록

아빠가 계속 지켜볼 수가 없구나,

아빠도 가슴이 아프지만 이제부터라도 아빠가 악역을 좀 담당해야겠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너하고 엄마하고 심하게 한바탕하고 2-3일 있으면 아빠 회사로

택배가 오더라. 물론 엄마 옷이다.

그렇다고 비싼 것도 아니고 화난 엄마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니
아빠가 가타부타 할건 아니지만

요즘 언듯 생각나는 건 엄마가 옷이 필요하면 너하고 대판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물론 아빠의 착각이 길 빈다만...

어제 도착한 옷은 맘에 들었나 보더구나,

너의 어처구니 없는 수학경시대회 점수에도 조용히 넘어간 거 보니,

그래서 아빠도 어제 카드 값 넌지시 얘기했다.

담부터 좀 아껴 쓰라고 하더라, 물론 상냥하게 얘기하더라

아들아, 네가 요즘 사춘기까진 아니지만 좀 비슷한 시기인 건

이 아빠도 인정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너의 불만을 표출하지 말고 눈치를 봐가면서

행동하거라. 세상에서 젤 어리석은 사람이 분위기 파악 못하는

놈이란 걸 명심하거라.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다른데 가서 눈치 보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끼리는 더더욱 조심하면서 눈치 좀 보면서 살자,

더구나 엄마한테는 말이다.

내가 너보다 너희 엄마를 몇 년 더 아는 사람으로써 이야기 하는데

너희 엄마 좀만 신경 써주고 살갑게 대해주면

, 쓸개 다 빼줄 사람 아니냐...

할아버지가 항상 얘기 하잖냐.

남자들은 세 여자 말만 잘 들으면 큰 재미는 없어도 고생은 안하고

산다고... 엄마, 아내, 딸 이 세 사람 말이다...

너야 엄마 말만 잘 들으면 되잖냐,

하지만 아빠는 할머니, 너희 엄마, 그리고 요즘은 네 여동생도 아빠한테

참견 하더라, 이런 아빠에 비하면 너 정말 호강하는 거다...

 

마지막으로 아빠의 바램은 하나다.  

네가 말했던 너의 유치원시절 순수했던 너 자신으로 회귀하거라.

네가 나중에 커서 너 아내 말 듣고 안 듣고는 너의 선택이니

이 아빠가 거기까진 관여하진 않겠다.

하지만 지금 엄마의 잔소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 사항이란다.

 

아빠가 존경하는 간디 알지?

혹시 간디가 가디언 기사 케릭이라는 헛소린 하지 말고
하여간 간디의 비폭력을 실천 할 수 있게..

아빠가 너에게 회초리를 들지 않게

나에게 힘을 실어줘라..

이건 협박으로 받다 들여도 무방하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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