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청도 이야기

마포에 가면

주님의 착한 종 2008. 11. 14. 18:27

 

마포에 가면 (방길남)

마포에 가면
청기네 집이 있습니다.
영희네 집도 있습니다.
진석이 진용이 춘혜네 집도 있습니다.
내가 살던 집도 있습니다.

어릴적 친구들은
누이 되어, 동무되어, 선생님이 되어
엄머가 되어
또 할머니가 되어 거기에 있습니다.
어릴적 친구들은
교수가 되어, 장사꾼이 되어, 의사가 되어
갑돌이가 되어, 세무쟁이가 되어
술꾼이 되어 그 집 앞에 있습니다.

새벽에 마포에 가면
전중이 밭 배추뽑던 곳에
아파트가 가로막아
밑바닥에 장받던 아저씨가
헛기침하며 나옵니다.
새벽에 그리움이 쏟아집니다.

마포에 가면 문득
달 동네에 남아있고, 대동 우물이 있고
전차종점에
새우젖 장수들이
다 떠난 거리에
情들이 떠 다닙니다.
나는 오늘도 당신을 안고 잡니다.

마포에 가면
나는 오줌이 마려워
그 거리를 다시 거닙니다.
야단치던
친구 엄마가 그리워서 새벽별을 보고
경보극장 안에
구봉서, 김희갑이 보고 싶어서
다시 보고 싶어서,
도화 극장 무대 안을 기웃거립니다.

오늘도 마포에 가면
임영대 선생님이 계시답니다.
작두위에 춤추던 무당은 이제가고
감리 교회는 남아 있습니다.
세창고개 너머 김구선생도 계십니다.

저는요
사는 의미가 있습니다.
잠이 안와도 뛸뜻이 기쁩니다.
마포에 가면 모든 사람의 품속에
내 마음을 던져 넣고 싶습니다.
한강 물새떼의 꿈이 살아 있고
오래된 마포의 혼령이 기지개를 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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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의 웬만한 식당 벽에는 대개 이 시 한구절은 붙어있습니다.

마포 사람은 원래 한양 사람이라 불리는 걸 싫어했답니다.

그래서 서울 사투리와는 약간 다른 마포 사투리도 있습니다.

 

50 여 년 쯤 전에,

내 어린 꿈이 서렸던 마포길엔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짐을 나르던 마부들이 멋이 있었고

땡땡... 울리며 내달리던 전차가 타고 싶었고

멀리 밤하늘을 밝히던 여의도 비행장에 가고 싶었습니다.

 

빨래감을 잔뜩 머리에 이고 한강으로 향하는 엄마를 따라가면

나 처럼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과 미역을 감거나

두껍아 두껍아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하며 놀다 보면

어느 새 서쪽 하늘은 붉어지고

샛강 쪽엔 굿판을 준비하느라 무당들이 부산했었지요.

 

하루 종일 미역감고 뛰어놀다 보면

엄마 뒤를 졸졸 따라 돌아가는 길은

왜 그리 배가 고프던지요.

 

산 꼭대기 전도관에 가면

그렇게도 맛있는 '미루꾸'를 나눠주었지요.

감람나무 오셨네.. 노래 몇번 따라 하면서

눈길은 전도관 선생님 손에 들려있을 미루꾸를 훔쳐보았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인리 발전소 옆 넓은 솔밭은 봄 가을 소풍 장소였습니다.

그날은 아무리 가난해도 김밥이 풍성했고

미군부대 다니는 아버지를 둔 아이들의 미꾸사꾸에는

신기하게도 깡통에 든 고기 같은 게 들어있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전근가는 아버지를 따라 마포를 떠난 후

직장생활을 마포에서 했습니다.

등 뒤의 창문으로 내다보면

어릴 때 놀던 공덕 시장 길이 보였는데

같이 뛰놀던 동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금요일.

몇 달 전만 해도, 최대포며 마포 주물럭 같은 곳에서

직원들이며 친구들과 소주를 나누었는데..

 

오늘 외로운 청도의 금요일에

그냥 끄적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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