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靑島)는 중국에서도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말하자면 중국의 시드니라 할까. 도시건물이 해안을 따라 길게 들어선 것이 전형적인 해변도시를 연상케한다. 옛날 독일의 조차지였던 연유로 오래된 건물들은 거의다 독일식 형태를 많이 띠고 있다. 그중에서도 독특한 동네가 한 군데 있다.<八大關>. 즉, 여덟개의 관문이란 뜻인데, 지금은 그것이 여덟개의 원심형 도로로 표시되어있을 뿐이다. 녹색사업이 아주 잘 되어있어서 그 속에 들어가면 한 여름에도 시원하다. 주택은 모두 아름드리 고목을 몇개씩 보유한 잔디정원이 넓직넓직하게 만들어져있다. 이전에는 군인장성들의 사택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중국정부가 제일 신경쓰는 복지분야가 군인들이다. 유럽풍의 주택들로 단층은 없고 모두 2층 복식으로 되어있어 일견에도 고급주택지 였음을 알수가 있다.
그곳에 해안을 낀 풍경 좋은곳에 장개석 별장이 있다. 견고한 암석을 깍아만든 이 3층 주택은 유럽의 어느 성을 그대로 갖다 놓은듯하다. 그 옆은 칭다오에서도 모래사장이 제일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제2해수욕장이다. 이전에는 외국인 전용으로 내국인은 출입금지 지역으로 해 놓은 만큼 빙 둘러싼 방갈로는 이국적 풍취를 더하고있다. 장개석 별장의 담벼락을 끼고 비탈길 아래는 넓적한 바위들로 되어있는데, 밀물때는 잠기고 썰물때는 드러나서 햇볕이 좋은 날은 바위에 보석을 뿌려놓은듯 눈이 부실정도다. 그 비탈길에는 아직도 지하벙커가 그대로 있는데, 언듯보기에는 분묘 같아보인다. 그 벙커위에 올라서서 저 멀리 끝도없는 수평선을 무심히 바라보며 긴 상념에 젖었다. 날씨만 쾌청하다면 저멀리 대한민국의 서해안이 꼭 보일것만 같다. 요 며칠동안 몰골이 말이 아니다.
(어찌해야 좋은가!)
가짜 루난지사의 왕조해로부터 대금회수는 불가능하다. 시급한 문제는 우리회사를 믿고 원부자재를 외상으로 대준 거래선에 대한 대금결제다. 이제까지 중국에서 사업이랍시고 죽자사자 미친놈 널뛰듯이 해온 노력이 이 한칼에 모두 날아가 버린것이다. 정말이지 남들모양 놀 것 안 놀고 쓸 것 안 써가면서 일푼일푼 열심히 모아왔던 것이 아니던가. 어찌할까! 이제는 어찌해야만 하는가?
(도망가 버릴까!)
제일 쉬운 방법이다. 눈 딱감고 토껴버리면 간단하다. 모든 친척들이 중국에 가는 것을 말릴 때 농담삼아 만약 실패할 경우에는 가족들의 주거는 있어줘야 한다고 처가집 2층을 세놓지말것을 당부했었다. 장인장모는 이눔이 출정하는 마당에 웬 재섭는 소리하는고 하듯 불안하고 기가막혀 물끄러미 바라보면서도, 진정 진담으로 아셨는지 아직까지 몇 년째 2층집을 비워놓았지 않았는가. 가족을 그기로 보내고 나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버릴까. 그러나 이를 가족에게 어떻게 얘기 한단 말인가. 이때까지 사업이 어떻다는 것을 한번도 가족에게 얘기한적이 없다. 생활비 꼬박꼬박 주고 맨날 바쁘다고 설레발 치는 것을 보고 아마 잘 되고 있는줄 알 것이라. 중국사업 4년에 자칭 전문가라 떠들고 다녔는데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하다. 남에게는 사기 당하지마라고 주의에 주의를 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홀딱 넘어가 버리지 않았는가 말이다.
중국으로 건너올때는 정말 눈동자에 불이 튈 정도로 의욕과 패기로 똘똘 뭉쳐있었다. 전문분야를 만들기위해 숱한곳을 돌아다니며 연구하고 검토하지를 않았던가. 수백수천종의 전자부품중 경쟁력있는 것을 찾기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가. 중국공장의 특수한 거래형태를 체득하느라 수많은 세월을 고시공부하듯 하였다. 하나님의 살피심이 있어서 승승장구하지 않았는가. 토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비록 크게는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씩 하나씩 땅을 다져나가듯 터를 닦아온것이다. 한번도 실패가 없었다. 너무 안이하고 교만했었던가. 누구나 한번은 과정에서 겪어야하는 일이란 말인가. 그렇더라도 너무 참담하다.
벙커위에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두목(杜牧)의 시를 읇조린다.
늦여름의 햇살이 따갑다.이후 거의 일년동안 출장을 제외하곤 일주일에 한두번 이 자리를 찾아 앉았었다.
勝敗兵家不可期 (승패는 병가도 기약할 수 없으니 )
包羞忍恥是男兒 (수치를 싸고 부끄러움을 참는 것이 남아로다)
江東子弟多豪傑 (강동의 자제 중에는 준재가 많으니 )
捲土重來未可知 ('권토중래'는 아직 알 수 없네)
눈을 가늘게 뜨고 몇시간동안 아득한 수평선을 꼼짝도않고 잡아먹을듯이 노려보았다. 이 몇 년의 중국사업에서 반드시 지키는 철칙이 하나있었다. 절대 사무실을 옮기지않고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는것이다. 지금있는 사무실도 이미 오래된 건물로, 주위의 새로운 건물보다 임대료가 더 비싸게 되어 버렸는데도 옮기지 않았다. 이것은 중국인과의 신용거래에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라 보았다. 중국인끼리도 신용거래를 못하는 이유중 하나는, 상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사라진 뒤에는 워낙 넓은 천지다 보니 찾을길이 막막한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때까지 우리와 거래관계를 한번이라도 맻은적이 있는 업체라면 그것이 4년전이던 일년전이던 ‘아직도 그대로네’ 하면서 반가와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거의 신용으로 납품하는 업체가 많다. 이렇게 만들기위해서, 그 긴 세월동안 곱게 다듬어 쌓아온 신용이 아니던가. 중국내 부품업계에선 이제 우리회사라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있지 않은가. 이런 신용을 몇푼의 금(金)과 과연 바꿀수가 있을까.
며칠후 보신전자유한공사 회의실.
중가란전자유한공사 취청폐경리, 보신전자유한공사 펑웨신 총경리와 그의 비서 왕해원경리,나 그리고 김부장.이부장 이렇게 회의탁자에 둥글게 앉았다. 취경리는 사십대 후반으로 우리와 거래한지는 벌써 2년이 넘었다. 공장은 즉묵에 있는데,호인상으로 형님이 사장이고 본인은 부사장으로 있다. 언제나 물심양면으로 우리를 위해 마음을 많이 써 주었다. 하다못해 자기 공장의 원료수입도 우리에게 대신 맡기곤하였다. 오래된 친구처럼 그렇게 지내왔던것이다. 펑사장은 50대 초반으로 주위에서도 소문난 독종이다. 특히 대금회수에 있어서는 전형적인 중국인의 지독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스타일이다. 친동생과 거래하면서도 결제가 몇 개월 늦어진다고 그의 자가용을 차압해 버리는 냉혈한이다. 중국의 대표기업군에 드는 하이얼회사가 그와 거래를 터기위해 그렇게 똥줄이 빠지게 접촉해도 결제시스템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리는 그런 사람이다. 대기업이던 중소기업이던,친척이던 친구던 가리지 않는다.
다른거래처에는 이것저것 모두 긁어모아 결제를 끝냈으나 이 두 업체가 그중 70%의 미수금을 갖고있다. 이제 금고에는 단 일푼도 없다. 완전 무일푼이다. 공장도 정리하고 비용이 절약되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집사람도 아마 얼마동안은 쥐어짜듯 살아야 할것이다.
"몸이 부셔져도 갚겠습니다. 단지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사고는 들어서 알고있습니다."
"아무데도 안 쓰고 버는만큼 조금씩이라도 갚도록 하겠습니다."
"언제까지 가능하겠오?"
"기약을 못하겠습니다."
[…………!]
[…………!]
침묵의 긴시간이 흘렀다.
"박사장을 믿겠오."
"몇 년이 갈지도 모릅니다."
"펑여우(朋友)아니오. 요 몇 년동안 우리 유쾌하게 거래하지 않았오?"
"그럼. 확인서를 써도록 하겠습니다."
"不要了.我相信! 저녁에 술이나 한잔 합시다.내가 쏘겠오.취경리 어떻소?"
"커이(可以).박사장 힘내시오."
취경리와 펑사장. 고맙소!. 적은돈도 아닌데 믿어줘서 정말 고맙소. 그날저녁 회식때
지금까지는 전자부품을 전문화 시키기위해 여러 사람으로부터의 잡다한 거래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거나 다른사람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제부터 무엇이든 한다. 도둑질과 사기만 빼고 비록 본업에 타격이 좀 가더라도 돈되는것이면 물불을 안가릴것이다. 비록 전문분야가 아니더라도 덤벼들었던 것이다. 모든걸 다 해결하고 난뒤 다시 본업인 전자로 돌아갈 것이다.이후 플라스틱 원료,과일통조림,염화칼슘,비비안스타킹,동대문티셔츠,고철,등 무역방면에 손 안대 본것이 없다.그리고 정확히 2년후 다시 본업인 전자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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