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쒀서 개 준 꼴이 되고 말았어요.!
키가 훤칠하게 크고 잘생긴, 환자 같지 않은 분이 입원을 하셨습니다.
61세의 폐암말기. 얼굴은 까맣지만 선한 인상을 풍기는 분이었습니다.
오시는 날부터 마치 이 환자가 여기 있었나 할 정도로 정말 조용하게
지내는 분이었습니다. 다만 심적인 고통이 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던 것은 밤이면 밤마다 잠을 못 이루고 한숨만 내 쉬며
침대에 걸터앉아 컴컴한 창 밖을 바라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을 치며 내 쉬는 긴 한숨 소리는, 뭔가 가슴 속에 응어리진 풀지
못한 한이 크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관심을 갖도록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간호사들과
봉사자들에게 부탁을 해 두었습니다.
환자가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저 단순한 단답형이었습니다.
봉사자가 간식을 갖다 주며 “춥지 않으세요?” 하고 물으면
“괜찮아요” “이렇게 좀 해보실래요?“ 하면 ”싫어요“ ”먹어볼래요?“
하면 ”안 먹을래요“
식사시간이나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숨만
내 쉬고, 한 달이 지나도록 이런 과정을 되풀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간호사가 옆 침대 할아버지와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웃고 있었는데 옆에서 환자가 이불로 입을 가린 채 킥킥 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습니다.
자고 있는 척 하면서 대화를 다 듣고 있었나 봅니다.
간호사가 “아저씨 웃으려면 얼굴 내 놓고 웃어 봐요. 왜 숨어서
웃어요? 그런데 아저씨 웃는 것 한 달만에 처음 보네요?... ”
“간호사 선생님 보기에는 안 그렇게 생겼는데 굉장히 재미 있네유?,,,”
“그래요? 내가 그렇게 못생겼어요? 이거 섭섭하네. 나가서는 한 미인
한다고 듣는데...” (모두 웃음)
모처럼 밝은 분위기가 갈아 앉을까봐 간호사가 말을 계속 붙였습니다.
“그건 아니구요”
“괜찮아요. 이 참에 말 좀 하면서 지내요. 그렇게 입 다물고 있다가는
입에서 곰팡이 슬겠어요. 허구헌날 말도 안하고 이불 덮고 누워만
있으면 나가던 병도 다시 올 거 같으니까 말 좀 하고 살아요. 네?”
“곰팡이 슬면 어때요. 어차피 죽을 건데요 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앞에 할아버지를 보세요. 얼굴이 항상
웃고 계시잖아요. 저분이라고 아프지 않고 마음이 편해서 그러시겠어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받아들이시니까 그렇죠.
죽는다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누워 있으면 저 할아버지도 마음 어둠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을 거에요.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즐겁게 사는데
왜 아저씨는 스스로 어둠 속에 갇히려고 하세요.
어차피 죽는다면 죽음을 기다리느라 허송세월 보내지 말고 하루를
살아도 내 자신을 위해서 밝게 사세요“
“어떻게 해요. 돈도 없고 힘도 없는데!”
“간단해요. 밤에는 모든 것 잊어버리고 주무시고, 낮에는 좋은 경치와
공기도 마시고 옆에 할아버지와 대화도 나누고, 나 같이 이쁜 선생님하고
데이트고 하고 한번씩 웃어주고 그러면 되는 거예요.
한번 웃어 주는데 암세포가 열 개씩 죽는데요 알았죠?”
“글쎄요”
간호사가 제법 전문가다운 솜씨로 설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무슨 남자가 그렇게 자주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세요!
답답한 일이 있으세요?”
“네 저도 답답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이러다가 남한테 이야기도 못하고
죽을 거 같아요”
“그럼 나한테라도 털어놔 보세요.”
“...”
“알았어요. 다음에 마음 내킬 때 하세요. 훌훌 털어 버릴 것 있으면 떨쳐
버리시고요. 그래야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요.”
“네”
“그래요. 우리 간호사 선생님 말처럼 죽을 때 죽더라고 사는 날까지
재미있게 삽시다.” 옆에서 할아버지가 한 수 거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환자는 한동안 말없이 괴로워하며 “미치겠네, 미치겠네”하며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치면서 밤에는 잠도 안자고 병실을 헤매고
그의 손에서는 얼음물이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어느 때는 자기 분을 못 이겨서 푸푸거리다 호흡곤란이 와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서 숨을 돌리곤 했습니다.
하루는 도저히 안되겠는지 2-3일 정도 밖에 외출 좀 하고 오겠노라고
허락해 달라고 있습니다.
혼자서 가시면 불안하다고 하니까 자주 오던 여자친구? 가 올 거라며
함께 동행할 테니 걱정 말라고 하고는 점심을 먹고는 비장의 결심을
한듯한 모습으로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이틀 뒤에 돌아 왔는데 얼굴 표정이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왜 가셨던 일이 잘 안됐어요?”
“차라리 안 가는이만 못했어요” 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안 될 일이라면 다 훌훌 털어 버리세요”
“그럴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사람도 죽고 사는데 마음먹기에 달려 있지 안 될 것이 어디 있어요.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은 다 헛된 욕심이니까 자신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 편한 쪽으로 사세요.“
“네, 그럴께요” 하면서 닭똥 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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