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빚에서 벗어나 빛을 보기까지 | |||||||||||||||||||||||||||
와우돈가스1900 김동현 사장의 인생역전기 아내가 붙여준 별명이 `전단지`항상 새벽이 돼야 퇴근했거든요 | |||||||||||||||||||||||||||
◆ 20대에 억대 빚져 = 김 사장은 95년 선배가 하던 식자재 유통업을 도우면서 사업에 발을 내딛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오자마자 도전할 만한 일을 찾고 있던 그에게 노력한 만큼 바로 성과가 나타나는 식자재 유통업은 매력적인 사업이었다. 그는 아예 선배와 함께 동업에 나섰다. 거래처 중에는 대형 학생식당, 백화점 푸드코트 등이 있었고 성실한 관리 덕에 거래처가 또 다른 거래처를 소개해주면서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선배는 재정관리 등 안살림을, 김 사장은 영업관리 등 바깥살림에 주력하며 사업을 키워 나가던 중 주거래처에서 한두 번씩 수금이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른 척 하는 사이 문제는 감당할 수 없이 커졌다. 거래처가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몇 년간 신뢰를 쌓아가며 거래했다는 이유로 외상금액을 키워놓은 것이 화가 됐다. 돈을 받을 곳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식자재 도매상에 지불해야 하는 몇 억원대 대금이 빚으로 남았다. 98년 3월 그는 도망치듯이 고향으로 향했고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현재 아내인 당시 애인이 그를 서울로 다시 불렀고, 김 사장도 이렇게 물러설 수 없다는 굳은 각오로 다시 돌아왔다.
= 각오만 새로웠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당시 주머니에 있는 돈은 고작 6만원이었다. 사업 밑천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할부금도 다 갚지 못한 승합차 한 대가 전부였다. 할부금을 갚지 못하면 그나마도 없어질 상황이었다. 그는 남은 할부금을 동생의 컴퓨터를 팔아 마련하며 "훗날 갚아주마"라고 말했다. 99년 우선 식자재 유통업에 재도전했다. 주로 식자재를 주문할 만한 시간을 가늠해서 다녔다. 대개는 한번 찾아가서 명함을 전해주고 돌아오기 마련이지만 그는 명함 대신 계속 얼굴을 내미는 방법을 선택했다. 몇 번을 찾아갔더니 오히려 명함을 안 주냐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장들과 친해져 식자재에 관한 정보도 많이 주고 거래처 상황에 대해 정보를 꼼꼼하게 수집해 필요한 것은 알아서 챙겨주었다. 또 주문량에 상관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식자재를 가져다줬다. "젊은 사람이 성실하고 부지런하다"며 소개해주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거래처가 두 배, 세 배로 늘었다. 재창업을 하면서 그가 세운 원칙은 철저한 현금거래였다. 외상거래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상승세를 타자 매출이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 김밥집으로 일어서다 = 김 사장은 사업이 안정기에 들어서자 더 안정된 거래처를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직접 외식업에 뛰어들었다. 식자재 유통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메뉴만 봐도 어떤 재료가 들어가 있는지 훤히 알 수 있는 분식 업종에 도전했다. 이 도전이 김 사장을 확실한 성공 반열에 올려놓았다. 2000년 신길동에 `맛밥김밥`이라는 이름으로 점포를 오픈했다. 점포비를 포함해 총 1억원을 들여 오픈한 33㎡(10평) 규모 김밥집은 하루 매출이 200만~250만원(이익률 약 30%) 정도 나왔다. 김 사장은 이 매장의 성공 비결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과감하면서도 신중한 입지 전략이다. 점포를 개설한 곳은 장사가 잘 안 돼 몇 사람이나 망해 나간 자리였다. 당시 건물주는 점포를 비워놓을 수 없어 당시 유행하던 DDR 기계를 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임대료는 근처 건물보다 저렴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성공 비결로는 미끼상품인 1000원짜리 김밥의 품질을 높인 것이다. 품질 좋은 김을 구워 사용하고, 다른 1000원짜리 김밥에는 들어가지 않던 우엉도 볶아 넣는 등 알찬 김밥을 만들었다. 김 사장 가게 때문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다른 김밥집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마지막 비결은 적절한 메뉴 구성이다. 1000원 김밥의 원가를 높인 만큼 다른 메뉴를 통해 마진율을 상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김 사장은 "그렇다고 다른 메뉴의 재료 질을 낮춘 것이 아니라 유통 사업을 전개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저렴하게 공급이 가능한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원재료의 효율을 높인 것이 성공 포인트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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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줄이 매장 오픈
= 첫 매장이 대박이 나자 몇 달 지나지 않아 서울 화곡동에 2호점을 오픈했다. 그 매장은 첫 매장보다 더 작은 26㎡(8평) 정도 규모였는데 하루 매출이 300만원을 넘었다. "성공 비결은 역시 첫 매장과 같았다"는 김 사장은 "입지와 아이템에 대한 호응도가 높아 더욱 매출이 높았던 것"이라고 말한다. 장사가 너무 잘 되다 보니 직영점을 7개까지 열었다. 전체 매장의 월평균 매출이 4000만~5000만원 정도 나왔고, 마진율은 30~35% 수준에 달했다. 현재는 직영점을 운영하던 직원이나 직영점 운영을 원하는 예비창업자에게 대부분 양도하고 2호점인 화곡동 매장과 50㎡(15평) 규모의 혜화동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혜화동 매장도 권리금을 전혀 들이지 않고 입점했다. 비용은 안 들어도 적절한 자리라는 판단으로 2년 이상 기다려 입점했다. 지금도 김 사장은 상권 분석을 토대로 장사가 잘 될 만하다 싶은 매장은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을 기다려서라도 입점한다. 가맹점을 내달라는 문의도 많이 들어왔다. 그렇게 시작된 가맹점이 35개까지 늘었다. 김 사장은 "지금도 `맛밥김밥`은 월평균 35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을 만큼 경쟁력 있는 점포로 자리매김했다. 월수익도 800만원 이상"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 돈가스로 프랜차이즈 확장 = `맛밥김밥`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김 사장은 올해 초 프랜차이즈를 본격적으로 운영한다는 차원에서 제2 브랜드 `와우돈가스1900`을 론칭했다. 서울 개봉동에 1호점을 직영으로 열었다. 그 자리 역시 2년 동안 눈여겨봤던 곳이다. 김 사장은 "테이크아웃 점포는 일반적인 상권을 보는 관점으로는 장사가 잘 될지를 알기 어렵다"며 "지난 10년간 잘 되는 점포를 발로 찾아다니면서 버스 노선만 봐도 상권을 파악할 수 있게 된 덕에 이제 상권을 보는 눈이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말했다. 점포비용까지 포함해 총 1억3000만원 정도를 들여 개설한 개봉점은 하루 매출이 120만~130만원 정도 나왔다. `와우돈가스1900`은 분식점 운영자들이 힘들어하는 배달인력 문제, 장시간 영업에 따른 노동 강도 등을 개선한 것이 특징. 초보자도 별 어려움 없이 조리할 수 있는 돈가스류, 우동류, 덮밥류가 주요 메뉴다. 특히 1900원 초저가 수제 돈가스를 대표 메뉴로 내세우고 있다. "가격은 1900원밖에 하지 않지만 여느 돈가스와 비교해도 맛과 품질이 떨어지지 않아요. 이것이 핵심 경쟁력이죠." 이와 함께 배달서비스 대신 테이크아웃 서비스로 매출을 올리고, 셀프시스템을 도입해 인건비를 절감했다. 현재 26개 가맹점이 개설됐고 전체 매장의 하루 평균 매출은 100만원 이상이다. 테이크아웃 서비스를 도입한 것은 인력 문제를 해결하고 점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배달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 사장은 "비를 맞으며 배달할 때 얼마나 처량한지 아느냐. 그 심정은 희망 없이 고향으로 향했던 10년 전의 마음과도 닮았다"고 말한다. 그는 가맹점에서도 `사장`으로 불리기보다는 `삼촌`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그는 또 매출이 안 나오는 가맹점은 만들지 않는다. 항상 가맹 상담할 때는 본사 지원 사항, 예상 수익 등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철저하게 지킨다. [심시보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매일경제 |
출처 : 창업길라잡이▶소호 투잡스 재테크
글쓴이 : 박oH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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