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53) - 얄밉도록 철없는 불쌍한 아내...2편

주님의 착한 종 2007. 11. 23. 15:10

얄밉도록 철없는 불쌍한 아내...2

 

얄밉도록 철없는 불쌍한 아내...

이렇게 보낼 일은 아니었습니다.

 

부인이 뭘 얼마나 잘못을 했길래 남편이 이리도 가시지 못하고

힘들어 하시죠?

 

그 말을 들은 부인은 펄쩍 뛰며

나는 잘못이 없다고 하며

 

저 남자가 나를 얼마나 고생을 시킨 줄 알아요?

13년 동안이나 소식 없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현관 벨이 울려 문을

열어보니 구급차에 환자를 싣고 와서는 무작정 방에다 내려놓고 갔다

 

그때 너무 놀라 심장병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병들어 온 환자라 내 쫓지도 못하고 돌보다가 꽃마을로 왔다면서

오히려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길이니까 부인도 용서 청하고 아이들도 와서

인사하고 자식도리를 다 하도록 하셔야지요.

 

그럴 필요 없어요. 애들도 전번에 와서 다 풀고 갔는데요?

그냥 죽으면 서울 가서 보면 되지요 뭐

 

말하는 것을 보면 기도 안찼지만 그날 밤 남편 옆에서 억지로 자게

하면서 지켜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숨소리만 조금 커지면 놀라

뛰어 나와서는

 

죽으려나 봐요. 봐 주세요

하고 요란을 떨었습니다.

가보면 상태가 달라진 것은 없는데도 숨 한번 크게 쉬는 소리에도

놀라고 있었습니다.

 

아직 괜찮아요

하면

왜 이렇게 못 죽어요. 아침 먹고 나면 갈려나?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러기를 여러 번 되풀이 했지만 매번 부인의 말투는 똑같았습니다.

(참내!!! 나 같아도 열 받쳐서 못 죽겠다.)

 

도대체 남편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렇게 가시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얼마나 억울하면 못 가겠어요!

딴 사람 같으면 벌써 열 번도 더 죽었을 겁니다.

 

그러자 부인이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아요. 남편이 무슨 말 했어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남편의 임종 상태를 지켜보시면 알잖아요.

뭔가 풀지 않고는 갈 수 없다는 느낌을 매번 받는데,

지금도 보세요. 몸부림치면서 손을 내젓죠?

눈이 감기면 있는 힘을 다해 눈을 뜨는 거 보세요.

 

그때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어 가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하며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남편은 교통경찰이었는데 멋있게 생긴데다 인정도 많아서

이사람 저 사람 일을 잘 봐 주곤 했어요.

그러다가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여자도 남편에게 반했는지

늘 상 꽁무니를 쫓아 다녔고 밖에서 자주 만나곤 했나 봐요.

자연히 내가 바가지를 긁었고 결국 못 참아서 이혼을 하자고

달달 볶았어요.

정말이지 그때는 눈에 뵈는 게 없었어요. 속도 많이 썩였고...

나는 직업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던 터라 자식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남편 앞으로 되어 있는 재산을 모두 빼앗아야 했어요.

그래서 재판을 3번씩 걸어 남편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넣었지요.

아이들 하고 살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남편 위신을 계속

깎아 내려야 했고, 깔끔하고 정확하고 자존심 강한 남편은 그때마다

묵사발이 되었어요. 그때마다 남편은 억울해서 팔팔 뛰었지만 바람

피웠다는 이유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당했습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뒤도 안 돌아 보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애들과

살지 못하니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답니다.

결국 남편은 퇴직금만 가지고 빈 몸으로 나갔는데...

그러고서 13년 만에 만난 모습이 지금의 모습이에요.

내가 생각해도 모질고 독하게 했어요.

 

모처럼 자신의 지나온 속내를 털어 놔서인지, 후회감 때문인지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혔습니다.

부인의 마음이 돌아서서 인지 그날 저녁 아이들이 도착해서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늦게 와서 죄송해요.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하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남편은 이미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지만 반분이라도 풀렸는지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아내는 남편 옆에서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닦아주며,

무릎을 꿇고 기도도 하며 마지막 정성을 보였습니다.

임종 4단계로 접어들 무렵

 

이제는 정말 가시려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지금 하세요

 

부인이 남편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여보 잘못했어, 용서해줘,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당신도 알잖아, 나 아무것도 못하는 거,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아들 둘

잘 키우고 지금까지 잘 살 수 없었을 거야,

당신도 결국 나한테 와서 죽잖아. 고마워해야 돼. 잘했지?

나도 당신한테 잘못한 거 많아 용서해줘, 당신이 그 사람들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하는 바람에 챙피 줘서 미안하고 잘못했어,

재판할 때마다 당신 지게 해서 미안해. 나 용서하고 천국에 가. ?

여보 사랑해, 나 당신 사랑했어. 용서해 줘... 마음 편히 가...

 

그 말을 듣는 남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부인은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마, 당신 좋은데 가는데 왜 울어,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가서 만나자

 

정말로 마지막까지 듣고 싶어 하던 단어였나 봅니다.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줘, 사랑해

 

이 말을 듣기 전에는 결코 죽을 수 없었기에 그 동안 10번도 넘게

저승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했었나 봅니다.

용서와 화해의 눈물을 흘리며 남편은 비로서 마지막 한 숨을 크게

쉬었습니다. 그간 응어리졌던 가슴이 다 녹았나 봅니다.

편안한 얼굴로 돌아오며 남편은 비로서 하늘나라로 향했습니다.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아무리 봐도 아름답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