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밉도록 철없는 불쌍한 아내...1편
50대 중반의 환자.
대장암에 뇌출혈까지 동반되어 반편을 쓰지 못하는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깔끔한 외모와는 달리 불같은 성격을 지닌 분이셨는데 들어오신지 하루만에 생긴 값을 톡톡히 하셨습니다.
봉사자와 간호사, 간병인을 달달 볶아 대는데 그전에 하루에 벨을 100번 누르던 분보다 한 술 더 뜨는 분이셨습니다.
침대를 올려라, 내려라, 베개를 이쪽으로 놓아라, 저쪽으로 놓아라.
이불을 펴라, 개라, 등을 받쳐라, 일으켜라.
다리를 이쪽으로 놓아라, 저쪽으로 놓아라.
일분 일초도 자기 몸을 가만히 놔 두지를 않았습니다.
밤이면 꽃마을 식구들이 비상 상태로 대기를 할 정도로 침대를 흔들어
삐꺼덕 거리고 물컵을 떨어뜨리고 소변 통을 던지고..
화장지를 뽑아 버리고...
침대에 누워서 할 수 있는 모든 짓거리? 들은 다 하고 있었습니다.
감정적으로 뭔가 폭발할 것 같은 것을 억누르는 모습이 역력했고,
그나마 남을 달달 볶고 물건을 집어 던짐으로써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고
있었습니다.
한 달이 지날 무렵, 참다 못해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부인이라고 해봐야 입원할 때 나타나서는 내다 버리듯 놓고 가버린
사람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이런 환자를 계속 내버려 두다가는 봉사자 다 떨어질 판이라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추석을 며칠 앞둔 시점이라 명절 전에 다녀갔으면 했지만
부인의 대답은 추석 지나고 오겠다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환자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욕을 퍼부으며
나 죽으라구 쳐박아 놓고 와 보지도 않는다고 아주 아주 나쁜 xx라고
거품을 물었습니다.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추석이 지나고 이틀 뒤에 부인이 나타났는데
추석 음식을 골고루 싸 와서는 환자보고 주위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하는 행동을 보면 부부 사이가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문제는 일주일 뒤 임종이 시작될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임종 시간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보통 3시간에서 3일까지 끌게 됩니다.
그런데 이분은 특별한 경우에 해당되는 분이었습니다.
전에도 임종으로 들어갔다가 깨어나길 8번이나 반복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분은 8일에 걸쳐 10번도 넘게 반복을 거듭했습니다.
이럴 경우 뭔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임종이 시작되는 것을 발견하고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임종이 시작되니 될수록 가족들과 함께 빨리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러자 부인은 대뜸 '죽으려면 얼마쯤 남았냐'고 물었습니다.
'그거야 알 수 없죠!'
공연히 화가 나는 것을 참으며 전화를 끊었지만
참 별별 인간이 다 있다는 생각에 쓴 웃음만 나왔습니다.
죽음을 안타까워해야 정상일 것 같은데...
오전 10시에 전화를 걸었는데 밤 10시에 혼자서 나타났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다 직장이다 바빠서 안 봐도 된다고 혼자 왔다는 것입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더 가관인 것은 남편이 누워있는 방에도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서 기웃기웃 쳐다보더니 간호사 데스크로 와서는 언제쯤 숨이
떨어지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제 이승을 하직하려는 남편의 안위는 관심이 없고
오직 언제 숨이 떨어지는가가 관심사였습니다.
'우선 방에 들어가 보세요'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어요.'
'아니 남편인데 뭐가 무서워요?'
부인의 팔을 붙들고 안으로 데려가자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던 부인은
기겁을 하며 뛰쳐나갔습니다.
그러는 부인을 붙들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숨소리와 눈 뜬 모습이
너무너무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러길 4일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임종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깨어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인을 불러
'남편이 가시려나 봐요. 와서 손 좀 잡아주고 인사하세요.'
그러면 부인은 이제 갈려나 보다 하고 신나는 표정으로 달려와
감정 없는 목소리로
'잘 가 하늘나라 가서 내 몸에 병 안 걸리게 해주고 돈 많이 벌게 기도해.
아이들도 공부 잘하고 직장 생활해서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 착하지?
내 말 잘 듣지?'
하자 임종에 들어가던 남편이 눈을 부르르 뜨며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부인은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갔고...
참으로 기가 막힌 작별 인사였습니다.
얼마나 분통이 터지면 저승 문턱에까지 갔다가 되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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