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죽어 하늘나라에 가면 정말 어머니가 다 용서해 주실까요?” (1)
봉사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환자가 정말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내 뱉은 말입니다.
“그럼요. 어머니는 이미 다 용서해 주셨어요.
그리고 하늘나라 가서 어머니 만나면 그 동안 못했던 효도 많이 하세요“
”네 그럴께요. 이렇게 마음을 털어 놓으니 후련하고 속이 편안해 지네요. “
간만에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마음에 큰 짐을 덜어서일까 그로부터 1주일 후에 임종을 한 분입니다.
3달 전 입원할 당시만 해도 이런 사람이 말기 암 환자인가 싶을 정도로
겉보기엔 쌩쌩한 환자였습니다.
게다가 깔끔한 외모에 매서운 눈매, 오똑한 코에 서늘한 표정은
남들로 하여금 더욱 거리감이 느껴지게 했습니다.
생긴 대로 논다고 해야 하나 조그마한 가방을 들고 침실로 걸어 들어가는
표정은 내가 환자 취급을 받을 줄 아냐? 난 환자가 아니야?
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이 지나도록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를 않았습니다.
남의 도움은 절대 받지 않으려고 했고 낮이나 밤이나 사람이 옆에 가면
눈을 감고 자는 척하면서 말 거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물이라도 한 컵 떠다 드릴까요?”
하고 봉사자가 옆에서 물을라치면
“아니요 저는 뭐든지 혼자 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하며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고는 옆으로 돌아누워 버렸습니다.
침대에서 유일하게 일어나는 시간은 화장실 갈 때와 식사 때 밥을 먹기 위해
일어나는 것 외에는 이불을 들쓰고 누워 지내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는 봉사자들도 젊은 사람이 아프지도 않으면서 잠만 자냐고
답답하다고 쑥덕거렸습니다.
그렇게 지내길 3주정도.
어느 날 봉사자가 출근해서 평상시와 같이 인사를 하고 나가려 하자
“아줌마! 나도 말할 줄 알아유. 나한테도 말 좀 시켜 봐유?”
하며 말을 걸었습니다.
놀란 봉사자가
“아니 말도 할 줄 알아요? 거 봐요 이렇게 말을 하니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왜 그 동안 말도 안하고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싫어했어요?”
“ 마음도 아프고 몸도 아프고 창피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래서 그랬어요”
아마도 아픈 것을 내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 뒤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개고 앉아 있기도 하고
마당에 나가 운동도 하고 환자에게 물을 떠다 주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마음의 벽을
스스로 조금씩 허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가 말문을 열고 다른 사람과 농담도 주고받으며
마음을 열긴 했지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서 나오는 어두운 그림자까지는
감춰지질 않았습니다.
멍하니 시선을 창밖에 두던 어느 날
“뭔가 불안한 게 있나 봐요?”
“네! 아직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이 처음엔 많이 억울했었습니다.
하늘을 많이 원망도 했었고요.
그러나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허허!!!... 마음속으로는 이제는 다 정리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뭔지 모를 불안감이 계속 따라 붙어 다닙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내세라는 게 정말 있을까요?”
“ 종교가 없으시죠?”
“네! 어떤 때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봉사자한테 교리를 좀 가르쳐 드리라고 부탁할게요.
들어보고 나서 결정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세례를 달라고 했습니다.
봉사자에게 교리를 듣고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꼈다면서
나 같은 사람도 세례를 받을 수 있겠냐고 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난 후 한 가지 마음에 담아 두었던 사실을 털어 놓았습니다.
“꽃마을이라는 곳이 이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어요.
처음 들어 올 때 무료시설이란 말을 들은데다가 와보니 방도 비좁고
병원도 아니고 해서 처음엔 방 구석쟁이에 처박아 놓고
죽기만 기다리는 곳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뭐가 아니에요?”
“ 저는 자는 척 하면서 옆에 환자들한테 하는 것 다 듣고 보았어요”
“뭘 보았는데요?”
“통증이 심한 환자가 들어 왔는데 하루 밤 자고 나니 멀쩡해졌고
내 옆에 손발을 전혀 못쓰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극정성으로
밥을 먹여 주고 돌보는 그 모습,
전 번에는 내 왼쪽에 있는 사람이 임종이 들어갔는데 기도하며
돌보는 모습이 너무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제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어요.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하느님께 의지하고
꽃마을에 의지하며 살려고요”
“그래요. 마음 편하게 지내세요. 다른 걱정은 하지 말고”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지날 무렵 상태가 점점 나빠졌습니다.
깔끔을 떨던 사람이 옷을 자꾸 벗어 던지고,
대소변도 못 가리고 갓난아기처럼 사람을 들들 볶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달라, 저것 달라, 일으켜라, 눕혀라 짜증을 내며
요구사항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도 ‘고맙다’는 말은 빼놓지 않았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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