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을 이해하는 열 가지 핵심 - 7. 중용과 조화
7. 중용과 조화
중국사람들은 중용을 통한 조화를 중시한다.
중용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우리는 가운데를 취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중용에는 보다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숫자 10을 놓고 보자. 단순히 가운데를 취한다면 5가 바로
중용의 숫자가 된다. 그러나 중용이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중국사람들이 배격하는 숫자가 될 수도 있다.
보다 중용에 가까운 숫자는 1과 10 두 개일 수도 있고 4,5,6이 될 수도
있으며 아니면 1에서 10까지 모두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중용이란 수학적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철학적 화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굳이 우리말로 쉽게 표현한다면
「모자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 즉 過猶不及의
상태가 바로 중용인 것이다.
그러면 조화는 또 무엇인가? 두 개의 극단을 동시에 취함으로써 중용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중국사람들은 극단적인 것을 싫어한다. 일도양단이라는 말은 마치 칼로
두부 모를 자르듯이 단칼에 결판 내는 것을 말하는데 그들은 이런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극단을 배격하며, 굳이 취하라면 차라리 양단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것이 곧 조화다. 중국 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음양사상은 조화의 좋은
예이며 그들의 옛 건축물을 보면 거의가 좌우대칭형이다. 어느 한 곳만을
치중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단체에 참석해보면 중국인 특유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좀처럼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그것을 타인과 조화시키기에 더 노력한다. 그들이 흔히 하는 속담에
「사람 보면 사람 말을, 귀신 보면 귀신 말을 한다」(見人說人語,
見鬼說鬼語)라는 말이 있다. 적응과 조화를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주장에 모순이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을 口是心非라고 한다. 「입과 마음이 따로 논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하면 음흉한 셈인데 그들은 음흉해서 오는 폐단보다는
남과 조화하지 않은 데는 오는 불화를 더 경계한다.
중국사람들에게 있어 조화의 대상은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들은 의술과 약학, 음식까지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보다 재미있는 것은 자연과의 조화다. 그들에게 있어 자연은 늘
경외스러운 존재였다. 따라서 자연은 숭배와 함께 조화의 대상일 뿐이지
서양 사람들처럼 연구한다거나 나아가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에베레스트를 자국 경내에 두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것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중국사람이 아니라 영국사람이었다.
1986년에 와서야 비로소 에베레스트에 중국인이 올랐다.
그러다 보니 인간과 자연간에는 엄격한 주종관계가 성립한다.
물론 主는 자연이고 인간은 그 부속물에 불과하다. 이 점은 동양화를
보면 쉽게 드러난다. 산천 등 자연은 크게 처리하고 있는 반면 인간은 늘
조그마한 한 점, 도는 한 획으로 처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늘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것이 바로
天人合一說이며 그 중의 하나가 풍수지리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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