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36) – 예쁜 봉사자만?

주님의 착한 종 2007. 10. 9. 11:18

예쁜 봉사자만?

  

오는 환자 중에 어쩌다가 꽤 양호한 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말기이긴 하지만 주변에 돌봐줄 사람도 없고 전이속도도 상당히

느리고, 그래서 임종 때까지는 꽤나 시일이 걸리겠다. 싶은 분이

계셨습니다.

정상일 때도 걷는 것이 불편했었는데 한동안 혼자서 투병생활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기저귀를 차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처지가 딱해서 받아주긴 했는데 문제는 한 보름이 지나서부터였습니다.

이곳 생활에 금방 적응이 되어서 그랬는지 어느 날 인가부터 한 가지

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봉사자들 얘기로는 이 환자가 예쁜 봉사자만 찾는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무슨 얘기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소변이나 대변을 보면

누군가 바로 치워주면 될 것을 꼭 여자 봉사자만 부른다고 합니다.

남자 봉사자가 먼저 알고 다가가면 됐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볼일을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니라고 하고는 여자 봉사자

오기를 기다렸다가 봐달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도 좋았는데 문제는 대소변을 보지도 않았는데..

예쁜 여자 봉사자만 지나가면 불러서 기저귀를 봐달라고 합니다.

나중에는 모든 봉사자들에게 소문이 나서 징그럽다고 그 환자에게는

안 가려고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두어 달 지나려니까 이제는 기어서 나오게 되었는데 옆방 환자의

보호자가 상당한 미인급(?)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인가부터 그 보호자만

오면 쫓아갔습니다. 옆방으로 병실로, 기웃기웃 하면서......

평상시에 살던 행동방식이 죽음을 앞두고서도 그대로 나오는가 봅니다.

평생 힘들게 살아왔고 더구나 몸까지 불편한 사람에게 어떤 여자가 눈길

한 번 주어봤겠는가!

 

그런데 이곳에 와서 모든 여자들이 불쌍하다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친절하게 속옷까지 갈아 입혀주니 제 정신을 못 차릴 법도 했습니다.

그래도 봉사자들에게 징그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에 굶주린 환자요,

정신이 온전치 못 한 환자이니 할 수 있는 한 성심껏 대해주라고

일렀지만 쉽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환자라고 생각하면 인간이 갖고 있는 오욕칠정을 못

느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몸 속에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는 것

뿐이지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의 기본욕구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기환자들도 통증을 없애주고 편안한 상태가 되면 성적인

욕구도 당연히 나타나는 법입니다. 하등 이상한 것이 아닌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기환자가, 죽을 때가 다 된 것들이 웃긴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한줌의 기운만 있으면 생각날 수 있고 행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기본

욕구입니다. 이런 욕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육체적인 통증

완화와 증상완화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환자도 임종 전까지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는 자연스런 인간임을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청주교구에 계시는 박창환 신부님의 호스피스 일기를 

 계속하여 올려드립니다.

 연재를 해 주시는 분은 가톨릭 인터넷의 박영효 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