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일기 (34) – 정을 떼려고 3 (마지막 회)
“이 집에서 현금 100만 원이면 전 재산과 같은 큰돈인데
그 돈을 불쌍한 사람을 위해 쓴 것은 아이들에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일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100만원보다 훨씬 더 큰 교육을 자식들에게 몸으로 보여줬습니다.”
“남편의 이 훌륭한 행동을 자식들이 잊지 않도록 오래오래 두고두고
얘기를 해주셔야 돼요.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 남편의 행동을 보고 남편이 세상을 살면서 자식들에게 해줄 몫의 10배를 자식들에게 은총으로 갚아줄 겁니다. 자매님의 아이들 잘 살 겁니다. 남편이야말로 마지막 죽음을 멋있게 장식하는 겁니다.”
“신부님 말씀 듣고 보니까 정말 그러네요.
남편이 마지막까지 감동시키고 가네요.”
모처럼 아내의 입에 웃음이 묻어났습니다. 언젠가 말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 때 환자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 솔직히 더 살고 싶은 욕심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지금 상태까지
오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 하느님의 은총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가게 되더라도 자식들이나
내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다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는
않겠습니다. 기적이란 것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천주교로 개종하고 싶습니다.
여기 오기 전부터 개종하기로 생각해왔던 거니까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내도 찬성했어요.”
“정 원하시면 세례를 드리겠습니다만 댁의 부인이 교회를 다니고 있고
또 목사님을 불러다가 기도도 받고 싶어 하시니까 목사님이 오시면
안수기도 받고, 목사님 가고 나면 제가 기도해드리는 것으로 합시다.
둘 다 하죠. 부인 체면도 있으니까요.”
“예. 그렇게 하지요.”
얼마 후부터 말할 기운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의식은 있었기 때문에 듣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상태로 봐서 오래
가시지는 않을 것 같아서 어린 자식들이 왔을 때 작별인사를 하게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를 않았습니다.
낮에 자고 밤에는 깨어 있으니까 자식이 오면 자고 있고, 가면 깨어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자식들이 아빠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녹음을 해서 들려주기로 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의 작별인사
“아빠 저 00이에요. 아빠 건강할 때 하고 싶은 얘기 충분히 못해서 지금
할 게요. 아빠가 지금 빨리 깨어나서 내 소원 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빠 천국 가서 우리 꼭 지켜보세요. 아니면 지금 일어나서 우리와
행복하게 살아요. 아빠 지금 일어난다면 나 아빠 엄마에게 효도하고
오빠와 안 싸울 자신 있어요. 그러니 빨리 일어나세요.
아빠가 많은 병원들 가 있었을 때 아빠랑 잠자고 싶었고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아빠와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저녁만 되면 우리 가족이
다같이 과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거였어요.
아빠 위해 기도할 테니까 제발 힘 좀 내세요. 아빠 천국 가시더라도 마음
편히 가셔야 해요. 엄마하고 우리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가세요.
아빠 사랑해요.”
녹음을 한 딸아이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알아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딸아이의 구구절절한 내용에 대답할 수 없는 현실이
많이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기운이 있었을 때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끝까지 남편 노릇, 아빠 노릇 해주지 못하고 가는
것이 제일 가슴이 아픕니다.”
딸아이의 간절한 기도와 염원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며칠 후 편안한
선종을 하셨습니다. 막상 임종을 하고 나니까 부인이 하는 말이
“남편이 돌아가시면 많이 슬플 줄 알았는데 이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 모진 고통에서 해방되었고 이제는 하늘나라 천국에
가셨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됩니다. 죽음 준비를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인생의 완성은 길고 짧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끝맺음을 얼마나 잘 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끝>
<청주교구에 계시는 박창환 신부님의 호스피스 일기를
계속하여 올려드립니다.
연재를 해 주시는 분은 가톨릭 인터넷의 박영효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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