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게 만드는 환자의 가족들 (2)
사례 3) 억장이 무너질 형
위와 비슷한 처지의 환자가 온 적이 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병원에서 퇴원을 강요 받았지만 갈 곳이 없어 2달
정도만 말미를 주기로 하고 받아준 적이 있었습니다.
환자 상태는 L-튜브를 꽂고 있고 치매기에, 뇌출혈에, 대소변을 기저귀로
받아 내고 매시간 체위변경을 해야 했습니다.
왼손만 간신히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간혹 의사표시는 되지만 말씀을
거의 못하는 중증환자입니다. 말기 암 환자보다야 그래도 사정이 낫다고
치지만 언제 어떻게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몰라 동의서를 받아 둡니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하도 나부대기 때문에 손을 묶어놓았다고 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왼손으로 콧줄을 잡아 빼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했던
것이고, 그밖에 엉덩이에 조그만 욕창이 있고 다른 상태는 양호하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의 이런 말만 듣고 환자를 받았는데 저녁 무렵 환자의 욕창을
치료하려던 간호사가 깜짝 놀라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욕창이 굉장히 큰데요?” 손바닥 정도의 크기라고 합니다.
가족들에게서는 분명 동전 크기라고 들은 것 같은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추측컨대 환자를 이송하다가 들것으로 옮기는 중에 약한 엉덩이 피부가
스치면서 살가죽이 벗겨진 것 같았습니다.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려야 할까 말까 하다가 다음 주에 온다고
했으니 그때 말하기로 하고 치료만 한 것이 화근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 주가 지나고 가족들이 와서 하는 말이 욕창이 왜 이렇게 커졌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때부터 그랬다고 간호사가 얘기해도 그때는 분명
동전 정도의 크기였는데 어떻게 간호를 했기에 이렇게 되었느냐는 식의
여운을 남깁니다. 정말로 복장이 터지고 억장이 무너질 노릇입니다.
이차저차 설명했지만 한번 떠오른 의구심은 계속 남는 듯한 인상입니다.
그래서 환자가 이곳 상황과는 안 맞는 것 같으니 모셔가라고 하자
조금만 더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할 수 없이 더 두라고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또 터졌습니다.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편한 상태를 제공하기 위해 손을 묶어 놓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콧줄을 잡아 뺀 것입니다.
할 수없이 병원 응급실로 가서 다시 꽂고 오기를 무려 3번째...
그런데 20일째 되던 날
병원 응급실로 콧줄을 끼러 따라갔던 봉사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환자가 임종할 것 같다고...... 가기 전에 점심까지 잘 드시고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응급실에 가서 죽을 것 같다고 하니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나중에 알았지만 의사 선생님들이 L-튜브를 끼우는데 잘 들어가지를
않아 한쪽 침대에서 쉬었다가 다시 하기로 했답니다.
사실 이 튜브를 끼우기 위해서는 환자가 아......! 소리를 내고 침을 꿀꺽
삼켜주어야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런 협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고서 3시간 후 환자상태가 이상하다고 연락이 오더니 30분 후
임종을 했다는 것입니다. 병원응급실에서 의사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심장마비가 온 것 같다고 합니다. 가족들에게는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질
일인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건강해지거나 정상상태로 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더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가족들에게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가족들의 심리는 마지막 보고 간 시점을 생각합니다.
그때 보고 왔을 때는 정상이었고 밥도 먹고 움직였는데 왜 그렇게
갑자기 죽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전화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죽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성통곡을 하며 이해할 수 없다고 원망 투의 말을 합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만있자니 꼭 우리가 잘못해서 사람
일찍 죽게 만든 것 같게 되고 설명하자니 들을 생각도 안 하고......
그나마 병원 응급실에 가서 의사들이 최선을 다해 치료를 했었기
망정이지 집에서 임종했더라면 꼼짝없이 살인자(?)가 될 뻔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절대 뇌졸중이나 기타 다른 질병은 받지 않습니다.
실컷 돌봐주고 원망 듣고 마치 잘못해서 빨리 죽게 만든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가족이 늘 옆에 붙어 있는 환자가 아니면 환자 상태에 변화가
왔을 때 가족들에게 즉시 연락을 합니다. 가족들은 항상 환자를 마지막
보고 간 그때만을 생각하기 때문인데 중간 중간에 환자의 상태가 나빠져
가는 것을 알고 있어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원망을 안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례 4) 숨 넘어갈 형
사랑하는 가족이 아프면 가족들의 마음이 오죽이나 아프겠습니까?
호스피스의 대상이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포함 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가족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보호자가 원하면 대개 가족 1명에게는 숙식을 제공합니다.
특히 젊은 부부들 중 누군가 한 명이 암에 걸리면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시간들을 함께하고 싶어 곁에 있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보호자 한 명에게도 숙식을 제공하는 것이죠.
그런데 가끔은 나이가 조금 있는 50대 후반의 환자가 오면 장성한
자녀들과 가족들이 많은 편인데 환자를 보살펴주는 입장에서는 꽤나
피곤한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가족들이 화목하고 효자 효녀 집안이면 꽃마을 봉사자들과
간호사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환자 보호자들이 환자 옆을 계속 지키면서 돌아가면서 환자상태를
알립니다. 5분마다 가족들이 번갈아 가며 쫓아와서는 지금 환자가 인상을
찡그리는데 아픈가 봐요. 진통제 좀 놔주세요. 가래가 조금 끓는 것
같은데요? 링겔이 너무 빨리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요? 아까보다 소변이
더 안 나오는 거 같아요! 아까보다 숨소리가 이상해요. 어제는 이렇지
않았는데 오늘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왜 그렇죠?
지금 다른 환자 보고 있으니 끝나면 금방 갈게요! 하다가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으면 금방 달려와서 숨 넘어가는 소리로 환자가
급한 것 같으니 빨리 좀 와주세요 하고 재촉을 합니다.
정말로 급한가 싶어 달려가 가보면 아까하고 똑같습니다.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다가 어찌어찌 해달라고 하면 그야말로 생
골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알아서 해줄 테니 한 명만 교대로 남으라고
해도 떠날 줄을 모릅니다. 이런 것을 효자라고 해야 하나(?)
환자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안타까움이야 오죽하랴마는 지나치게
예민해져 결국은 내 환자만 보라는 식이 되고 맙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해줘도 조금 지체된다 싶으면 원망하는 것 같은
눈초리의 시선이 더 괴롭습니다. 도대체!
<청주교구에 계시는 박창환 신부님의 호스피스 일기를
계속하여 올려드립니다.
연재를 해 주시는 분은 가톨릭 인터넷의 박영효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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