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30) - 미치게 만드는 환자의 가족들 (1)

주님의 착한 종 2007. 9. 28. 08:38

미치게 만드는 환자의 가족들 (1)

 

호스피스 시설을 운영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지도 않은 일이 사람을 미치고 환장하도록 만드니

문제입니다. 꽃마을에서는 한 달 평균 10-15명이 돌아가시는데,

이곳의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2달에서 3달 사이입니다.

 

병원에서도 이미 손을 뗀 사람들, 현대의학으로는 더 이상 해줄게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상황은 항상 급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환자를 입원시킬 때는 가족들에게 동의서를 받습니다.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돌봐드리지만 언제 어느 때 돌아가실 지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점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것과,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이곳에서 환자를 위해 간호하는 일에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옆에서 계속 환자를 지켜보는 보호자가 문제가 아니라

어쩌다 한번 불쑥 나타나는 가족들과 친척들이 문제입니다.

정작 필요할 땐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왜 이러냐?

약은 제 때 주느냐? 반찬은 뭐냐? 증상이 이런데 병원은 안 가냐?

언제 갔다 왔냐? 하며 취조를 합니다.

뭘 알고서나 떠들면 좋으련만...... 그 행태들이 가지가지입니다.

 

사례 1)뻔실이 형

하루는 간호사가 식식거리며 어째 이런 일이 생겨야 하는지 성질 나서

못 하겠다고 투덜댔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물어보니 오늘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환자가 들어왔는데 그 환자 가족들 때문에 속상하다는

것입니다. 환자를 병실에 눕히고 났는데 가족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간호사실로 오더니 잠깐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환자 데리고 왔는데 됐죠? 이 환자는 여기가 안 좋고, 저기는

의사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주의하고, 그리고 음식을 잘 못

드시니까 그럴 때마다 영양제 좀 꼭 놔주고요. 말씀을 잘 못 하시니까

자주 들여다보세요. 아셨죠?” 그러고는 바람과 함께 집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너무도 당당한, 뭐 맡겨놓은 사람처럼 요구하고 시켰습니다.

가만히 하는 꼴을 보면 환자 데리고 왔으니 고마워하라는 투입니다.

도대체가 뭘 고마워해야 하는지, 그 뻔뻔함에 기가 찹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은 무료시설이라고 하면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면서

잘 믿기지가 않는지, 정말 아무 것도 안 받느냐? 100% 무료로 해주냐?

하고 반문합니다.

 

이렇게 반문하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환자 한 명 받으면 정부로부터

얼마씩 보조를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 환자 보호자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환자를 데려왔으니 고마워하라는

식의 말투가 나오는 것이죠.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환자를 위해 간호해주다가 돌아가셨을 때

가족들은 그 고마움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럴 때 가족들에게 한 가지를 당부합니다.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들이 제일 힘들어할 때 우리가 아무 조건

없이 사랑으로 돌봐주고 나누어주었던 것처럼 당신들도 주변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거든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 만큼 나누어

주라고...... 그것이 성모 꽃마을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가르쳐줍니다.

                          

사례 2)황당 형

어쩌다 한 번 씩 뇌출혈로 쓰러진 사람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상태는 매우 안 좋지만 병원에서 계속 있어봐야 늘어나는 병원비와

간병인에 들어가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퇴원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암은 아니지만 형편이 너무 안 좋고 생활보호대상자에다가 갈 곳도 없는

딱한 처지라 받아주게 됩니다.

 

꽃마을에 입원을 추천하는 사람들은 환자에게 다른 가족이나 친척들은

있으나마나 이고, 정말 병원비 10원 한 장 보태준 적도 없고,

병문안을 온 적도 없는 사람들이니 꼭 받아주어야 한다고 죽는 소리를

합니다.

 

한번은 뇌출혈 환자가 들어왔는데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들도 길어야 몇 달 혹은 그전에라도 합병증으로 가실 수가

있다고 경고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가 들어온 지 보름 만에 갑자기 임종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임종을 하면 1시간에서 이틀까지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환자는 임종을 시작하고 운명하는 데까지 1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이럴 때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쓰러진 지 몇 년이 되셨지만 그래도 한두 달은 더 살 것 같았는데

갑자기 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소에 나와 있는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친척에게 전화를 했는데 몇 시간 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에쿠스를 선두로 외제 스포츠카에다가 체어맨에 무쏘를 끌고 몇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류층 혹은 큰 부자들이나 가질 수 있는

고급 승용차들입니다. 그리고는 간호사실에 와서 따지듯,

 

“언제 돌아가셨냐? 왜 돌아가셨냐? 왜 빨리 죽었느냐?

병원에서는 식사대용으로 캔을 하루에 7개씩 먹였다는데 여기서는

얼마씩 주었느냐? 사람이 왜 이렇게 말랐느냐?

간호는 제대로 해주었느냐?

 

하면서 마치 여기서 잘못하여 죽인 것처럼 말들을 합니다.

병문안 한 번 안 오고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죽은 뒤에는 무척이나

아끼고 위하는 관계인 것처럼 구는 꼴들이라니!

물에 빠진 놈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인지?

 

불쌍해서 기껏 도와줬더니 오히려 탓을 합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어렵게

지내는 동안 친척이라고 있는 것들이 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니면서도

병원비 10원 한 장 도와주지 않던 사람들이 말입니다.

죽은 사람만 불쌍할 뿐입니다.

                                                     

                                                       <계속 이어짐>         

<청주교구에 계시는 박창환 신부님의 호스피스 일기를 

계속하여 올려드립니다.

연재를 해 주시는 분은 가톨릭 인터넷의 박영효 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