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26) - 어머니에게 내 병을 알리지 말아주세요

주님의 착한 종 2007. 9. 19. 18:39

 

어머니에게 내 병을 알리지 말아주세요

 

46세의 폐암 말기 환자가 계십니다.

발병하기 전에는 감기 한번 안 앓을 정도로 건강했던 분입니다.

인테리어 업을 하고 있던 분인데 작업을 하던 중 갑자기 어지러움 증이

심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폐암 말기인데 너무 늦어 치료가 불가능 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고 남들이 그러는 것처럼 절망과 좌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남겨두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도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팔순의 노모에게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자기의 병을 알리지 않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우리말에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그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환자도 어머니보다 먼저 가는 자식으로 인해 가슴에 못을 박을까

두려웠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까지 잘못될까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입원 당시 소양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어머니에게는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을 한다고 하고는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온 후에도 전화를 가끔씩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기운이 좀

나고 목소리가 잘 나올 것 같으면 전화를 드리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 기운 없는 목소리를 들으면 걱정 하실 것 같아서요.

어머니는 늘상 같은 말을 하신답니다.

몸은 좀 어떠냐, 밥 잘 챙겨먹어야 한다,

빨리 완쾌돼서 집에 오너라.

 

이미 밥 먹기가 많이 힘들어졌는데, 통증도 점점 심해져

마약성 진통제를 처음에는 60mg을 쓰다가 지금은 240mg을 써야 할

정도로 늘어나 말하기도 힘겨운데 어머니의 바람을 들어드릴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전화를 끊고 나면 눈물이 앞을 가려 한참을 울어야

했습니다.

 

결혼에 실패하지만 않았더라면 손주를 안겨드려 기쁘게 해드릴 수

있었는데, 어머니보다 앞서 가도 덜 죄송했을 건데

그것이 못내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지난 며칠 전에는 어머니 생신이라서 가족들이 다 모이는데 갔다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 몸으로 그 먼 거리를 갔다 온다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기 때문에

전화나 드리라고 해도, 혹시라도 눈치를 채실 수도 있고 마지막 생신을

챙겨드리는 일이라 안 갈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머리가 다 빠졌어도 약 부작용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

통증이 와도 이를 악물면서 진통제로 버티는 아들을 보시고도 눈치를

못 채셨으니 마지막 효도를 성공적으로 하고 온 셈입니다.

 

이제는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옆에서 며칠을 같이 지내시던 환자 분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보면

 

“ 나도 나갈 때는 저렇게 가겠지, 다음은 내 차례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고 우울해지지만 그러나 어차피 갈 거라면 편히 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할 뿐이에요.

 

하면서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 다시 한번 건강을 주신다면 정말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위해

보람 있게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내가 가진 기술로 집도 고쳐주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제는 부질없는 바램이겠지요?

 

그로부터 며칠 후 임종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이 모두 와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 어머니보다 먼저 간 불효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훗날 어머니가 마지막 때에 찾거든 전해주세요.

그리고 나는 화장을 해서 일부는 꽃마을에

일부는 집이 내려다보이는 앞산에 뿌려서

거기서 어머니와 가족들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몇 시간 후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아마도 이 분의 영혼은 먼 여행길에 오르기 전에 어머니 얼굴을 보고

떠나기 위해 집으로 달음질쳐 갔을 것입니다.

 

† 주여. 이 영혼을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소서.   아멘. 

 

 

<청주교구에 계시는 박창환 신부님의 호스피스 일기를 

계속하여 올려드립니다.

연재를 해 주시는 분은 가톨릭 인터넷의 박영효 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