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18) - 사진 한 번 찍혀보는 게 소원에요 (1)

주님의 착한 종 2007. 9. 12. 10:38

“사진에 한 번 찍혀보는 게 소원이에요.

 

성모꽃마을을 개보수하고 축복식을 하는 날

주교님께 꽃다발을 바치게 될 환자가 내뱉은 말입니다.

 

31살의 자궁경부암 말기.

얼굴은 초췌하고 말랐지만 눈빛에서는 생기가 돌았습니다.

꽃마을에서 제일 쌩쌩하고(?) 젊은 환자입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마약성 진통제를 하루에 1200mg이나 쓰고 있지만

그래도 화장실을 마지막까지 걸어 다녔던 환자였기에

제일 쌩쌩해 보이는 환자였습니다. 

 

통증만 없으면 웃고, TV보고

그 병실에선 제일 어린데다가 다른 환자보다 일찍 입원한 고참이라

환자들 상황보고까지 다 해주는 착한 환자였습니다.

저 환자가 밤에 몇 번 깼다는 등, 밥을 먹다 말았다는 등,

변을 몇 번 보았다는 등 환자들의 필요한 정보를 다 일러주었습니다.

 

축복식 날 주교님께 꽃다발을 드릴 수 있겠느냐는 제의에

흔쾌히 응낙하면서 대중 앞에는 서본 적이 없어 떨린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 흔한 운동회 사진 한 장 없이 살아온 것이

가슴이 아팠는데 주교님께 꽃다발을 드릴 때는 사진을 많이

찍어주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죽기 전에 사진이나 원 없이 찍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소원대로 진짜 많이 찍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는

사진첩을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꽃다발을 드릴 때 통증이 오면 어떡하죠?” 하며

걱정을 합니다.

 

“그럼, 아침 행사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진통제 30mg을 더 올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안심을 시켜주었습니다.

이 환자가 하루에 쓰는 진통제의 양은 엄청납니다.

 

 MS-Contin 30mg(먹는 마약성 진통제) 30알에다 듀로 패취제를

 75mcg(피부에 붙이는 마약성 진통제)를 붙이고 있는데

양으로 따지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아마도 의사 선생님들이 이 글을 읽으면 까무러칠 만큼의 양이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당장 중독이니 내성이니 하고 생각하겠지만

이 정도의 약을 써야만 환자가 팔팔하게 하루를 버틸 수가 있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말씀 드리면, 건강보험 공단에서는 마약에 관한 규정으로

듀로 패취제를 쓰는 사람에게는 먹는 약을 처방할 수 없게 해놓았습니다.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사람에게만 패취제를 쓸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이지요.

 

이 환자의 경우 패취제를 안 쓰면 MS-Contin 10알 정도는 더 먹어야

통증을 가라앉힐 수가 있습니다.

40알 정도를 먹어야 통증을 없앨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먹는 MS-Contin을 하루에 4, 경우에 따라서는

좀 더 추가할 수 있다고 해놓았는데 실제로 병원에서 처방하는 양은

5알 정도 이내에 불과합니다.

 

다행으로 호스피스에 관심이 있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면 약이 더 추가될

수 있으나 대부분 그렇지를 못 한 실정입니다.

그러니 40알을 먹어야 통증이 없는 환자에게 5알을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지막지한 통증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 환자는 장이 녹으면서 자궁에 천공을 일으켜 자궁으로 대변이

함께 섞여 나오고 있었습니다.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갈 때마다 변이 함께 쏟아졌는데

화장실에서 나올 때는 반 초주검이 되어 나왔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땀으로 샤워를 하고 나올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가만히 있어도 변이 자궁을 통해서 조금씩 흘러나왔기 때문에

계속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했고,

그럴 때 여자의 자존심과 창피함이란 말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행사 당일 날도 이런 문제 때문에 일찌감치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기저귀를 여러 겹으로 대놓고 냄새에도 대비를 했습니다.

봉사자가 생애의 마지막 단장(?)을 예쁘게 해놓고

빌려온 한복으로 갈아 입혀주었습니다.

 

말랐지만 말만 안 하면 환자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예쁘게

가꾸어놓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누가 2~3달 후면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싶을 정도로 환자도 신이 나 있었습니다.

 

행사 끝에 주교님께 환영의 꽃다발을 드리는 순서가 되었을 때

사회자가

31살의 자궁경부암 말기 환자가 주교님께 꽃다발을 드리겠습니다.

이 환자의 마지막 소원이 사람들 앞에서 환영을 받으며

사진을 많이 찍어보는 겁니다.

 

하고 말하자, 봉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환자가 걸어 나왔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상황을 알고는

우렁찬 박수소리와 함께 엄청난 플래시로 환자에게 답례를 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기쁜 날은 없었을 거예요.

주교님의 손을 붙들고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그녀의 눈에서는

기쁨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들은 얘기지만 이상하리만치 통증도 전혀 없었고,

변이 흘러나오면 냄새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변도 전혀 나오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날 하루 컨디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아 약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어도 통증을 못 느낄 정도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기분이 좋아 엔돌핀이 많이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