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16) - 어! 아직도 안 갔어요? (1)

주님의 착한 종 2007. 9. 10. 14:48

! 아직도 안 갔어요?...1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올라오는 환자의 눈매가 매서웠습니다.

사실은 독기가 떨어진다고나 해야 할까?

남편에 대한 원망과 증오에 가까운 눈빛, 신경질적인 태도와 언사 등,

상황으로 보아 남편과의 관계나 가족들과의 관계가 어떨지 대충 짐작이

갔습니다.

 

이런 사람이 들어오면 사실 할 일이 많아집니다.

암 통증도 통증이려니와 가족간의 갈등까지도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남기 때문입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뭔가 건수를 잡아 화해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보통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봉사자에게서 오늘 입원하는 환자가 생일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0, 생의 마지막 생일,

사실 이곳에 들어오면 길어야 석 달 정도 살기 때문에 내년에 생일을

다시 맞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때문에 오늘이 이 환자가 이승에서 맞는 마지막 생일인 셈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다 싶어 저녁 때 축하파티를 열어주기로 하고는

환자와 가족들 몰래 꽃다발과 샴페인을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깜짝 쇼를 여는 셈입니다.

첫날밤은 환자의 안정을 위해서 가족들이 자고 가는 것이 낫겠다고

귀띔을 해 둔 터라, 저녁식사 후 다 모이게 하고는 남편을 몰래

불렀습니다.

 

“오늘이 부인 생일인 거 아세요?

 

“아! 맞습니다. 집사람 아픈 것 간호하다 보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그래서 말씀 드리는 건데 경황이 없으실 것 같아서

제가 대신 꽃다발과 샴페인을 준비했습니다.

이따가 저녁때 꽃다발을 부인에게 주세요.

물론 그때까지는 가족들에게도 아무 말 하지 마시고요. 아시겠죠?

 

“예. 정말 감사합니다.

 

저녁때쯤 되니 환자가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일시에 모인 다음 남편이 꽃다발을 전해주며

“여보, 생일 축하해!” 하며 뽀뽀를 해주자 환자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더니 이내 입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샴페인을 터뜨리고 축하노래를 합동으로 한 곡 불러주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샴페인을 따라주도록 하고 쨍! 술잔을 부딪치며

“여보! 사랑해!” 하며 꼬옥 안아주도록 했습니다.

남편도 마지막이라 생각했는지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합니다.

평소 때 같았으면 닭살 돋는다고 할만도 할 텐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고분고분합니다.

 

아내도 남편의 그러한 모습이 평소의 모습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좋은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습니다.

아마도 지난날의 원망이나 한이 그 순간만큼은 다 녹아 내린 듯

했습니다.

 

이 정도면 효과 만점이다 싶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습니다.

오늘은 두 분의 날이니까 이곳에 신혼여행을 왔다고 생각하고

이 침대에서 신혼부부처럼 잘 것을 명령했습니다.

 

사실상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몸 가는데 마음 간다고

좁은 일인용 침대에 함께 누워 부딪치다 보면 미웠던 마음도 다소

녹을 수 있으리라 기대를 했던 것입니다.

 

다음 날 슬쩍 보니 두 사람이 한 침대에서 손을 꼬옥 포갠 채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좁은 침대에서 부부가 손을 잡고 밤새 잔 모양입니다.

아내의 얼굴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어제 입원할 땐 독기가 똑똑 떨어지던 눈빛이 온 데 간 데 없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더니

부부란 참 묘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환자가 평생을 살면서 행복했던 기억이라고는 임신했을 때

남편에게 사과 두 쪽 얻어먹은 것이 행복한 기억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해온 모양입니다.

 

양가 부모가 원치 않는 결혼을 시작으로 시댁의 시집살이, 남편의 부도로

쫓겨 다니며 동생들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동안의 힘겨움,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남편의 바람기와 무성의, 시어머니의 구박 등등,

모든 것이 복합되어 ‘시’ 자만 나오면 화를 삭이기가 어려울 정도였습

니다. 더구나 친정어머니와의 갈등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호스피스에서 중요한 포인트 중 한 가지는 환자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거기엔 반드시 무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빨리

읽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사람을 입에 올리면서 거품을 물며 욕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속을 들여다보면 환자가 욕을 하는 그 사람과의 화해를

원하는 표시라고 봐야 합니다.

뭔가 이런 상태로는 그냥 죽을 수는 없는데 방법을 몰라 욕만 해대는

것입니다.

 

환자는 자기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욕을 하거나 원망하는 강도가 사뭇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호스피스 봉사자가 제 때에 읽어 내지를 못한다면 화해는

고사하고 죽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에게 큰 한()을 남기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모든 환자는 마지막에 가서는 진실하고자

하는 마음만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느끼는 환자의 심리상태는 편안함과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감과 자유입니다.

 

홀가분하게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해결치 못 한 문제가 있을 때는 계속해서 원망을 하고 욕을 하는 것으로

싸인을 보내서 본인의 답답함을 드러냅니다.

 

이 자매도 비슷한 상황에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남은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시댁 식구들을 불러놓고 한 명 한 명에게 환자와

대화를 하게 하는 방법이 제일 중요합니다.

방법은 꼭 1:1이어야 하고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