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17) - 어! 아직도 안 갔어요? (2)

주님의 착한 종 2007. 9. 11. 08:36

! 아직도 안 가셨어요? (2)

 

환자가 이제 살아봐야 한 달 이내인데 어차피 가는 사람이라면

한이 없게 배려를 해주는 것이 보내는 사람의 도리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면 더 자존심이 상하니까

한 사람씩 환자와 지난날의 얘기를 하면서,

사실 지난 날 이러이러한 점은 나도 좀 심한 구석은 있었지만

너에게도 야속한 점이 있었다.

 

사실 본심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잘못한 게 많구나,

미안하다, 우리 화해하자, 하는 식으로

서로의 가슴을 터놓고 대화를 하게 해야 합니다.

일방적인 사과나 화해는 절대 금물입니다.

일방적인 사과나 화해는 오히려 반감만 사거나 놀림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화란 사실 너도 이기고 나도 이기는 방법이기 때문에

서로의 자존심을 세워 줄 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1:1로 대화를 유도해나가면 시간은 걸릴지 모르나

죽음을 준비하게 하는데 확실한 방법이 됩니다.

이렇게 가족들간에 대화가 다 끝나면 환자의 얼굴이 달라져 있습니다.

 

마음이 편안하니 얼굴색까지 편안하고 통증도 가라앉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면 육체의 통증도 쉽게 다스려집니다.

그날 이후로 환자는 조용히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남은 생을 정리하고,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몫까지 해줄

것을 당부합니다.

이 정도면 대충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끝난 셈입니다.

 

얼마 후에 임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부르게 하고 봉사자들과 함께 마지막 가는 임종을

지켜주기 위해 둘러서서 임종경과 묵주의 기도를 바치고 있었습니다.

환자의 호흡 상태로 보아 오래 끌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그날따라 피곤해서 눈을 감고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기도가 끝날 무렵 이제는 가셨겠거니 하고 환자를 쳐다보니

얼레! 함께 기도를 바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라! 아직도 안 가셨어요? 아니! 지금쯤이면 하늘나라로 가셨어야지,

어떻게 된 거예요?” 하니

작은 소리로

"엄마 정을 알고 가야지......그냥은 못 가요!" 

하고 대답합니다.

아니, 볼 사람은 다 본 것 같은데 지난번에 시어머니, 친정어머니도

오셨잖아요? 하고 남편에게 물으니

지난번에 친정어머니가 오셨을 때 환자와 다투고 갔다고 귀띰을 합니다.

 

알고 보니 모처럼 친정어머니가 간호를 해주려고 했는데

환자는 어머니가 고생할까봐 괜찮다고 가라고 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상하셨던가 봅니다.

그리고는 다신 안 온다고 하고 가셨는데 그 일 때문에 환자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남편에게 친정어머니를 찾아 모시고 오라고 하고는

어머니 오시거든 마음 상하게 하지 말고 간호 좀 해달라고 부탁하라고

시켰습니다.

 

아주 간혹 가다 임종막바지까지 갔다가 다시 깨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뭔가 한이 남으면 신기하게도 금방 가실 것 같은데 못 가는 경우가 있고

또 임종 시간을 질질 끌게 될 때가 많습니다.

저녁 무렵 친정 어머니가 오셨을 때 모든 봉사자를 철수시켰습니다.

모든 간병은 친정 어머니가 하도록 했는데 3일간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주었습니다.

 

3일째 되던 날 저녁 나를 부르더니,

“이제는 진짜 갈 것 같아요. 지난번에는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는데

너무 힘들어서 예수님 제발 빨리 데려가 주세요, 하고 부탁을 했더니

아무 대답도 안 하고 쳐다만 보고 계셨는데

어제 밤에는 미소를 지어주셨어요. 이제 갈 것 같아요.

그 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봉사자들도 고맙구요.

로사리오 기도가 나를 씻어주는 기도니까 기도를 많이 해주세요.

하며 봉사자들에게 부탁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에게

“신부님! 천국 가서 기도 많이 할께요.” 합니다.

“그 약속 잊지 말고  꼭 기도해야 돼요?  

 마지막 갈 때까지 옆에 있어줄 께요. 그리고 또 사기(?) 치면 안 돼요.

환자도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채고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본인이 한 말 때문인지

다음 날 아침부터 호흡상태가 좋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정신은 말짱합니다.

남편이 옆에서

“내가 누군지 알겠어?

하고 물으니까

“당신이지” 그러더니

“서울 가야지, 서울 가야지.”하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이 잠깐 세수하러 간 사이에 임종호흡으로 들어갔는데

시작한지 불과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숨을 몰아 쉬더니

그대로 가셨습니다.

엄마 사랑을 받고 가야 한다더니 말대로 3일 동안 엄마의 지극한 사랑과

간호를 받은 데다 예수님도 대기상태에 계셨고 본인도 준비를 다했으니

그리도 쉽게 가셨나 봅니다.

 

 예수님의 품에 안겨 행복한지 영원히 잠든 얼굴 모습이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이제 진짜 잘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