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4) - 육종암에 걸린 19살 소녀 이야기 (1)

주님의 착한 종 2007. 8. 30. 18:36

육종암에 걸려 죽음을 얼마 앞둔 19살 소녀가 의사를 붙잡고

하소연했습니다.

"응급실이라도 좋으니 햇빛이 드는 1층에서 하룻밤만이라도 더 지내게

해주세요"

 

 그러나 더 이상 아이를 위해 병원에서는 치료해줄 게 없다는 말과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 환자를 응급실에 둘 수 없다는 대답만 되풀이해

들을 뿐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절망감에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

오른쪽 어깨 위 두 주먹만한 암 덩어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딱지와 진물은

아이로 하여금 매 순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아이를 더 힘들게 한 것 은  또 다시 지하 단칸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망감이었습니다.

 

모처럼 주위의 권유와 도움으로 병원에 오게 되었을 때

이 아이를 들뜨게 했던 것은 기침과 암 통증을 치료하는 것보다도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공기였습니다.

 

비록 병원 한구석의 응급실에서라도 맑은 하늘을 실컷 볼 수 있고

시원한 공기를 맘껏 마실 수만 있다면

심한 기침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기대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이 아이의 작은 바램은 손익을 따져야 하는 사회의

비정함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딱한 모습이 병원 원목실 수녀님 눈에 띄어 꽃마을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빠 등에 업혀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는 아이.

이제 갓 피어나는 꽃봉오리마냥 앳되고 맑은 그런 아이였습니다.

 

전도사로 조그만 개척교회를 이끌던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2 3녀 중에 막내로 귀여움을 한 몸에 받던 아이였습니다.

어머니가 신도들과 예배를 드릴 때 피아노 반주를 하며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던 아이.

자기의 아픈 모습을 남의 눈에 보이지 않으려 친구가 올 때면 옷을 잔뜩

껴입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웃어 보이며

오히려 남을 배려해주는 사려 깊은 아이였습니다.

 

학생 때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님께 선물도 드리고 이 다음에

주일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바램이라며 조그마한

소망을 밝히기도 했던 꿈 많은 소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신을 차리지 못 할 정도로 심한 기침과 오른쪽 어깨

위에서 짓누르는 암 덩어리 때문에 팔이 저려 잠시도 누군가가 주무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짙게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 했는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신부님 사람이 죽을 때는 어떨까요?"

"왜 죽는 게 두렵니?

 "아니요. 두렵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죽을 때 힘들까 봐 그게 무서워요."

 

아마도 친척이나 조상 중에 누군가 힘들게 임종을 맞이하는 것을 본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내가 알기로 사람이 죽을 때는 그렇게 힘든 게 아니라고 한단다.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올 때는 순간적이란다.

 

자기의 영혼이 육체에서 1m정도 높이 위에 떠서 자기의 육신을

바라보는데 주변에 누가 무엇을 하는지 다 보고 느낄 수가 있단다.

 

그리고 영혼이 육체를 벗어버린 그 순간 영혼이 느끼는 상태는 지극히

평온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고 그래.

아마도 육체의 욕망을 벗어버렸기 때문일 거야.

 

영혼만 남게 되면 육체의 욕망은 사라지고 오로지 영적인 갈망만 남게

되는데 그 영적인 갈망이란 것은 아기가 엄마 품을 그리워하듯

오로지 하느님의 품을 찾으려는 열망만 남게 된다는 거야.

 

네가 교회에서 하느님을 알고 믿었으니 너같이 준비된 죽음이라면

네 영혼은 틀림없이 하느님 품에 안길 것이고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클 거란다. 네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 형제들을 남겨두고 가는 슬픔

보다도 더 큰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힘을 내. 그리고 기도하거라. 죽을 때 두렵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도록. 그리고 나도 네 옆에서 같이 기도해 주마.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보았지만 임종하는 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단다. 그건 내가 확실하다고 약속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신부님 말씀을 들으니 죽는 게 하나도 안 무서울 것 같아요."

 

"그런데 네 엄마가 전도사님이니까 기도는 많이 했겠구나?

지금도 기도 많이 하니?

 

"."

 

"그래 무슨 기도를 했는데?"

 

"편히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

 

저는 순간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적어도 이런 상황이라면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건강을 달라고

기도할 법도 한데 이 아이는 이미 죽음을 초월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그 고통이 얼마나 힘겨웠으면 저런 기도가 나올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다 두려움에 떨고 무섭기 마련인데......

 

                                       <2편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청주교구에 계시는 박창환 신부님의 호스피스 일기를 

계속하여 올려드립니다.

연재를 해 주시는 분은 가톨릭 인터넷의 박영효 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