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3) - 전과 20범 마지막회

주님의 착한 종 2007. 8. 30. 10:46

 며칠 후에 한 번 더 간정맥 출혈이 왔습니다.

이번엔 상태가 좀 심했습니다.

간경화 환자가 3번 피를 토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지만 두 번째인데도

많은 양의 피가 나왔습니다. 아직도 입가에 피가 묻어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천당 보내줘요, 말아요?"

 "알았어요.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마음대로 해요."

그래서 급한 김에 교리를 설명해 주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에 대해서 반성하고, 용서 청하고

그리고 용서하도록 유도해주었습니다.

 

사실 호스피스에서 종교를 권하는 일은 없으나 이 환자의 경우 이렇게 죽게

내버려뒀다가는 안 되겠기에 강요 아닌 강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으니 최소한 내일은 여기 왔으면 좋겠다고.

동생들을 오라고 하고는 환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동생들이 한 번 더 온다는데 좋지요?”

“좋긴 뭐가 좋아요. 싸가지 없는 새끼들!”

 

피를 토하느라 힘이 빠진 상태에서도 원망은 매한가지입니다.

“정말 그렇게 싸가지가 없어요?”

“네. 나쁜 새끼들이에요. 나한테 줄 돈이 있었는데 안 주고 말이지.”


 “그럼 동생들 왔을 때 내가 한번 혼내줄께요.

  그렇게 싸가지가 없는 놈들이 있어? 하여튼 오기만 해봐라.”

하고 환자보다 더 분노를 나타내자,

 

 “안 돼요. 그러다가 진짜 안 오면 어떻게 해요. 아무 소리 하지 말아요.”

하면서 눈을 번쩍 뜬 채 고함을 칩니다.

욕은 하면서도 동생들이 진짜 안 올까봐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보고 싶은데 입에서는 정반대의 소리가 튀어나옵니다.

 

이제는 이해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 환자의 애정과 사랑 표현이라는 것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이럴 때 나오는가봅니다.

봉사자들이 아무리 잘해 주어도 핏줄이 해줄 몫은 따로 있는 법입니다.

 

다음 날, 달려온 동생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이제 환자상태로 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밤이 고비일 것 같으니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만나야 합니다.

지나온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쪽으로 얘기를 하세요.

아시겠죠?”


 형제들이 상봉하는데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삼형제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환자도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으로 느끼는지

동생들의 손을 마주 잡으며

 

“이 형이 정말 면목이 없다. 형 노릇도 제대로 못 하고,

정말 미안하다. 어머니한테도 그렇고.

내대신 내 몫까지 효도해라.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형님 미안해요, 그 동안 너무 미워하고 욕을 해서.

우리도 잘못한게 많아. 어머니나 다른 식구들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가요.”

 

삼형제의 눈과 코에선 연신 눈물, 콧물이 흘렀습니다.

흘러내리는 눈물, 콧물 속에 그 동안의 미운 마음,

분노와 증오가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형제애가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

분위기로 봐서 오늘 밤 동생들이 형님 옆에서 간호를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때요? 형님이 얘기 해봐요.

동생들이 옆에 있으면 좋겠는지! 아니면 그냥 가는 게 좋겠는지!”

 

그 소리에 환자는

“내일 출근해야 되잖아?”

하면서 동생들을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내가

“형님 눈치로 봐서는 동생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하룻밤만이라도 형님 옆에서 지켜줘요.

둘이서 교대로 간호하다가 내일 일찍 새벽에 가면 되니까, 그렇게 하세요? 

하고 권하니

“예.” 하고 대답합니다.


 “어차피 봉사자도 옆에 같이 있으니까 손만 붙잡아주고 있으면 됩니다.”

 

그날 밤 동생들은 형님의 손을 잡아주고 다리도 주물러주며

세상에서의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있었습니다.

동생들의 간호를 받으며 하룻밤을 보낸 그 다음 날부터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임종 이틀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마른 모습이 나하고 똑같았는데

나도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아요.”

하고 말하며

 

“아무래도 죽을려는가봐요.

그렇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영양제 좀 놔주세요.”

합니다.

불만이 가득한 모습은 사라지고 어리고 순한 양 같아 보입니다.

또 옆에 있던 환자 보호자와 갈등과 미움으로 껄끄러웠는데

이날 보호자를 불러 먼저 화해를 청했습니다.

 

아무래도 죽음을 예감했는지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임종 하루 전!

각혈을 많이 해서인지 얼굴이 더 창백해졌습니다.

이번이 3번째입니다.

갑자기 각혈을 또 하게 되니까 비위도 상하고 죽을 것 같다고하며

불안해합니다.

혈압은 50에서 40으로 떨어지고 맥박은 약하게 120으로 빨리 뛰었습니다.


 간호사가 옆에서

“각혈한다고 불안하게 생각하지 말고 병으로 인해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잘못한 죄 다 용서해달라고

기도 많이 하세요.”

 

하고 말하니 환자는

“예.”

하고 대답을 하면서 죽어서도 신부님과 이곳을 위해 잊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그 동안 정말 고맙습니다.”

하며 간호사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담배를 피웠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여섯 개비를 구해서 드렸더니

두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몇 번을 말하면서, 담배 하나를 피우고 나니

불안하고 비위 상하고 했던 것이 없어지고 마음이 너무 편하다고 했습니다.


임종 당일!

아침부터 영양제를 놔달라고 재촉을 합니다.

그러나 핏줄이 약하고 이미 청색증이 오기 시작해 주사바늘을 도로

빼야 했습니다.

임종 20분 전에 다시 영양제를 놔달라고 청합니다.

숨이 빠져나가고 있는데도 정신은 말짱한가봅니다.

 

잠시 후 혈압은 들리지 않고 호흡의 높낮이가 없이

서서히 6회.5회.4회.3회.2회....로 줄어들더니

오후 1시 15분에 조용히 평화로운 얼굴로 임종하셨습니다.


 처음에 꽃마을에 왔을 때는 머리에 뿔만 달면 꼭 마귀 같았는데

석 달이 지난 지금 환자의 얼굴은 마치 어린 양처럼

 순하고 착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실제로 영원히 잠든 모습이 착한 아이가 누워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56년을 악 속에서 살았고

형제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정은 이미 온데간데없었지만

마지막을 화해와 용서로 끝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화장을 하고 유해를 성모꽃마을로 가져오던 날 형제들이 말했습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여기서 보살펴준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짧은 하룻밤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동생들이 형 간호도 해줄 수 있었고,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교도소에서 나온 채로 그대로 죽었더라면 화해는 고사하고

 서로 평생 한이 될 뻔했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형제의 도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다행으로 

 여겨집니다. 고맙습니다. 

 

납골당에 유해를 안치하는 형제들의 얼굴은 형님을 떠나보낸 슬픔보다는 오히려 안도와 평화로움이 짙게 배어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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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꽃마을은 무료 시설이며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성모꽃마을엔 작은 성당이 있고 성당 제대 양옆과 뒤편으로 유해를 안치한

납골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회원으로 가입한 신자들에게는, 암환자와 봉사자들이

매일미사와 묵주기도, 회원 가정의 돌아가신 분들의 연도를 바쳐드리고

있습니다.

 

<청주교구에 계시는 박창환 신부님의 호스피스 일기를 

계속하여 올려드립니다.

연재를 해 주시는 분은 가톨릭 인터넷의 박영효 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