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2) - 전과 20범 2회

주님의 착한 종 2007. 8. 29. 09:12

 

<계속 이어짐>

이 환자한테 동생들이 찾아온단 얘기를 하니까 얼굴에는 안도의 기색이

역력합니다.

혹시라도 끝까지 안 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가 봅니다.

교도소에 들어간 이후로 서로간에 한 번도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 영영 버림받는가 보다 하고 걱정도 될 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놈의 새끼들 오기만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죽일 놈들.”하면서

또 욕을 해댑니다. 동생들이 찾아와서 고맙고 기쁘다는 표현이 이런

식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이러다간 형제들이 오랜만에 상봉하는 자리에서

싸움 나겠다 싶어 또 머리를 썼습니다.

 

일요일 날 동생 둘이 왔기에 다른 방에 떼어놓고서,

환자인 형에게 가서 절대로 지난 날 얘기는 꺼내지도 말고 동생들이

오면 딱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 형 노릇도 못 하고 이 꼴을 보여줘서 미안하다.

하고 한 마디만 하라고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에게 가서는 절대 지난날 얘기는 꺼내지 말고

“그 동안 찾아가지도 못 하고 미안해요, 식구들도 잘 있으니까 아무 걱정

말고 여기서 잘 지내요.

이 말만 하라고 시켰습니다.

그리고 손이나 한번 잡아주고 가라고 각본을 짰습니다.

 

마침내 형제들을 상봉시키는 자리에서 처음 각본대로 해야 되는데

환자가 대뜸

“이눔 새끼들! 그 동안 한 번도 안 오고 말야. 연락도 없고.

하면서 성질을 버럭 냅니다.

그러니까 동생이

“아! 형이 옛날에 그렇게 속만 안 썩였어도....

그러기에 내가 뭐라 그랬어? 응 응... 

하면서 또 싸움이 붙었습니다.

 

이거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어서 환자보고 입 다물라 하고는

“아까 가르쳐준 대로 하라니까!”하면서 눈을 부라리니

 

“와줘서 고맙다. 형 노릇도 못하고.....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내 눈치를 힐끔힐끔 봅니다.

 

이번엔 동생들을 짝 째려보니까

“어쨌든 지난 날 덮어두고 잊어버립시다. 그나저나 이게 무슨 고생이유.

어머니도 잘 계시니까 걱정 말고 잘 계시유.” 하고 말합니다.

 

 이젠 좀 제대로 되는가 봅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옆에서 계속 감시를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집안얘기를 한 7분 정도 했나?

그러고는 이제 됐으니까 집에 가라고 동생들을 보내면서

다음에 올 때는 어머니하고 다른 가족들을 데리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나중에 환자에게

“동생들이 오니까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지눔 새끼들이 안 오면 어쩔 거야." 합니다.

정말 성질머리하고는 대책이 없습니다.

 

평생을 다정다감한 얘기를 한 적이 없으니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전부

원망과 미움뿐이었습니다.

자기가 죽인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늘

“그 놈들은 죽어도 싼 놈들이었다. 뒈질 짓을 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나는 요만큼의 죄책감도 없다.

하고 독기가 떨어지는 눈을 치켜 뜨면서 얘기를 합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뒈질 짓을 하면 때려죽여도 괜찮겠네요?

하고 물으니

“내가 왜 죽어? 내가 죽여버리지. 그 놈들한테 내가 죽을 줄 알아요?

끝까지 자신은 잘했다고 우겨댔습니다.

세상에 대한 한과 증오가 이 사람 마음 안에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어머니와 동생들이 또 한 차례 다녀갔습니다.

 

동생들에게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방문 왔을 때 좋은

얘기만 하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해서인지 별 마찰 없이 지나갔습니다.

어머니보고 불여우 같은 년이라고 하더니 어머니의 방문 이후 어머니에

대한 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와서 음료수며 과일주스를 사다가 머리맡에 놓아주고

돈도 10만 원을 주었는데 남들이 자기 것을 먹을까 봐 침대 밑에 내려

놓지를 않았습니다.

옆 환자에게 좀 나눠주라고 해도 막무가냅니다.

동생들이 주고 간 돈을 책갈피에 꽂아놓고는 머리맡에 베개로 눌러

둡니다.

그리고는 화장실 갈 때 세어보고, 들고 갔다 와서는 또 세어보고,

잘 때 또 세어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을 세어보는지 돈이 닳아빠질 지경입니다.

그리고 봉사자들이 청소하려고 베개 쪽에 손이 가려고 하면 날벼락이

떨어집니다. 돈 훔쳐가려고 한다고.....

 

이 환자는 절대 자기 돈을 쓰는 법이 없습니다.

뭐가 먹고 싶은데 사다 주면 돈을 주겠다고 봉사자에게 말합니다.

사다 주면 봉사자가 돈을 받겠는가? 잘 안 받는다는 심리를 십분

이용해서 담배 사 달라, 뭐 사 달라, 하면서 꽤나 뜯어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돈은 10만원에서 한 푼도 줄어든 적이 없었습니다.

한 달 보름이 지나도록 영혼 상태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번에는 이 환자 정신 상태를 바꾸어야 될 것 같아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요새는 꿈을 자주 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 자기가 죽인 마누라가 나타나서 자기를 쳐다본다고

하는데 무서워 죽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는

“그 마누라가 지금 당신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죽으면 바로 지옥으로 끌고 갈려고 하기 때문에 언제 죽으려나

확인하려고 자꾸 꿈속에 나타나는 거다.

하고 겁을 주었습니다.

 

다음 번 꿈에 나타나면 난 절대 당신 못 따라가 하고 소리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내 말만 잘 들으면 마누라가 나타나서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해도 안 가게 할 수 있는데......! 하면서 여운을 주니까

그게 뭔데요?

하고 즉시 반응이 옵니다.

“방법은 아주 쉬워요. 내가 죽인 사람들보고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다오,

한마디하고 내가 믿는 하느님을 믿으면 되는데.

그러자,

“흥 하느님이 어디 있습니까? 천당도 지옥도 다 없어요. 내가 믿는 것은

내 주먹밖에 없습니다.

 

 “맞아, 그 주먹 셌지? 스쳐도 중상이고 빗맞아도 사망인데. 셋씩이나

죽였는데 내가 잊어버렸네요.

하고 슬슬 비꼬았습니다.

“거 너무 그러지 마요.” 하고 토라집니다.

일단 초를 친 셈입니다. 얼마 후에 피를 쏟았습니다.

간경화로 인해 간으로 흘러 들어가는 정맥에서 핏줄이 터진 것입니다.

저절로 지혈이 되지 않으면 위험한 상태가 됩니다.

다행히 피가 멎긴 했지만 환자가 느끼는 심리적인 쇼크는 크기 마련입니다.

 

 2차 심리전을 썼습니다.

먼저 솔직하게 지금 몸이 어떤 상태인지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잘못하면 그냥 죽을 수도 있는데 지금 이 상태로 죽으면 지옥에 갈 게

뻔한데, 어떻게 할까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한마디만 하면 천국 보내줄 수

있는데....

하면서 다시 심리전을 폈습니다.

 

“뭐라고 하는데요?

“내가 죽인 사람들아! 정말 미안하다.

생각해보니까 나도 잘 못한 게 많다. 죽은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고 용서를

청한다.

하고 한마디만 하라고 했습니다.

 

 “글쎄 그러면 정말 지옥에 안 가는 거요?

“그럼요. 내 말대로 해도 밑져야 본전 아니오? 천국과 지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있으면 나만 손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없으면 본전이지.

생각 좀 해볼래요?

시간 없으니까 빨리 생각하세요.

 

두 번째로 초를 쳤습니다.

이 정도면 대개 다음 번엔 반응이 오기 마련입니다.

 

   <계속 이어짐>

 

<청주교구에 계시는 박창환 신부님의 호스피스 일기를 

계속하여 올려드립니다.

연재를 해 주시는 분은 가톨릭 인터넷의 박영효 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