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을 준비하며/중국무역·사업 경험기

중국식 협상술 (2) - 중국문화 입문

주님의 착한 종 2007. 8. 17. 18:14
캘리포니아대 어번캠퍼스 교수 John L. Graham
변호사 N. Mark Lam


▶ 중국문화 입문

중국문화는 "네 가닥의 두꺼운 실"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실들은 중국 사람들을 거의 5000년 동안 하나로 묶어 왔다.

따라서 거래상담도 자연히 그 영향을 받는다.

첫 번째 실은 "농본주의"이다.

인구의 대부분이 도회지에서 사는 미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지금도 인구의

3분의 2가 농촌에 거주하고, 쌀농사 혹은 보리농사를 주요 생업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예부터 소작농이 주류이다.

즉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으로 작물을 재배해 왔다.

생존의 열쇠는 집단의 협력과 조화에 있었다.

집안 서열을 충실히 준수하지 않으면 집단이 하나가 되어 일할 수 없다.

지금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의 가치관이 지금도 숨을 쉬고 있다.

 

미국인의 경우도 아주 세련된 사람이 "다툴 필요가 없고" "툭 터놓고

얘기하는" 카우보이 혼과 무관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아무리 현대적인 사람이라도 대지와 함께 살아 온 수 천

년의 영향을 받고 있다.


1980년대 이전의 중국에서는 상업적 가치관은 농업적 가치관의 밑에

있었다. 문화대혁명 시절, 毛澤東은 관료와 학생들을 농촌으로 보내,

재교육을 받게 했다. 교관은 소작농이다.

즉 毛澤東은 농촌의 생활에서 보아야 할 것이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중국의 철학자 馮友蘭은 저서에서 "중국의 현인들은 예로부터 '根'(농업)

'技'(상업)를 구별해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根은

중시되고 技는 경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탓에 技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즉 상인은 멸시를 당했다.


중국문화를 구성하는 두 번째 실은 "도덕"이다.

2000년 동안 중국의 교육은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루어져 왔다.

그런 탓에 관료로 등용되려면 유교 경전에 관한 교양을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했다.

공자는 나라는 "仁"이라는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나라는 번영을 하고, 정치는 안정되며,

오랑캐의 침입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그는 학문과 혈연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정의한 주요 인간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과 아우", 그리고 "벗" 이렇게 다섯 가지이다.

마지막에 든 벗을 제외하면, 양자는 모두 엄격한 상하관계에 있다.

공자는 지배 받는 사람(아내, 자식, 아우)은 지배자(남편, 부모, 형)가

베푸는 仁을 받는 대신, 충성을 다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공자 시대에는 폭력과 내란이 만연해 있었다.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려면 상하의 질서를 준수해야만 했었던 것이다.


여기에 중국사회에서 질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예가 있다.

그건 첸한첸과 그 아내의 몸에 일어난 비극이다.
중국의 학자 다우린 수에 의하면 1865년, 첸의 아내는 불손하게도

시어머니를 때리려고 손을 올렸다.

당시의 가치관에 비추어보면 이는 말도 안 되는 중죄이다.

 

부부는 수많은 형벌들 가운데서 살아있는 채로 살갗을 벗기우는 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살갗은 여기 저기 마을 어귀에 내 걸렸고,

뼈는 재가 될 때까지 불에 태워졌다.

그리고 그 누는 이웃과 먼 친척에게까지 미쳤다.


이는 극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 얘기는 지금도 중국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구미인은 중국인의 권위주의를 가볍게 여기는

일이 있는데 이 얘기를 들으면 그것이 얼마나 부주의한 일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노자는 공자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고, 도교의 시조로 추앙 받고 있다.

도교의 기본이념 가운데 하나는 "陰陽"의 관계이다.

음은 "여자" "어두움" "수동" 같은 힘을 뜻하고, 양은 "남자" "밝음"

"능동"을 의미한다.

두 가지 힘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보완을 하고 있다.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두 가지가 모여 하나를 이루고 있다.

 

음양에 있어서의 충돌과 일체는 중국의 전통의술에서 경제 싸이클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살아있고 인간사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자는 인생의 열쇠는 "德"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두 가지 힘의 사이에 있는 중용의 길을 찾는 것이라는 거다.

공자도 노자도, 관심은 진리의 탐구가 아니라 중용의 길을 발견하는 데

있었다. 이런 도덕관은 중국인의 협상술에서도 볼 수 있다.

즉 그들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한다.

 

최선의 형태로 절충을 하려면 밀고 당기는 의식적인 협상이 필요하고,

이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절충이 되면 쌍방에 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인은 진리 ―종종 자기들한테 해당되는― 를 추구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논의를 하고, 때로는 화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중국인은 중용의 길을 찾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런 탓에 상대방과 의견이 달라도 계속 줄다리기를 한다.


중국문화의 세 번째 실은 한자라는 "상형문자"이다.

구미의 아이들이 알파벳과 로마숫자를 배우듯이, 중국의 어린아이들은

수 천 개나 되는 한자를 배운다. 한자는 알파벳의 나열과는 달리

상형성이 높은데, 그런 성질이 중국인의 사고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그들은 종합적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홍콩 中文大學의 심리학 교수 마이클 해리스 본드에 의하면

중국의 어린아이들은 전체상을 파악하는 데 뛰어나고,

미국의 어린아이들은 상세한 것을 파악하는 걸 더 잘한다고 한다.


네 번째 실은 중국인이 외국인에 대해 품고 있는 "경계심"이다.

그 뒤에는 중국이 오랫동안 맛보아 온 쓰라린 경험과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가 있다.  중국에는 세계 여기 저기에서 침략자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결과, 내분과 내란이 일어나고, 열강의 성쇠에 말려들어

고통을 당했다.

이런 일이 연달아 일어나면 사람은 법치주의나 룰 같은 것을 믿지 않게

된다. 중국인이 믿는 것은 딱 두 가지뿐이다.

그렇다, 가족과 예금통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