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마음을 열고

[스크랩]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

주님의 착한 종 2007. 5. 10. 10:16
中 대륙 울린 ‘칠순 효자’의 사모곡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왕일민·유현민 지음/랜덤하우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어머니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 왕일민씨. 어머니가 바깥 풍경을 잘 볼 수 있게끔 수레 사방에 창문을 냈다.
책을 읽다 몇 번이나 책장을 덮었습니다.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먹먹해져 더 이상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하릴없이 서성거리며 한 숨을 돌리고 나서야 다시 책을 집어들 수 있었습니다.

책은, 일흔네살의 아들이 아흔아홉의 노모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중국 전역을 여행하는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부인과 사별하고 자식들까지 분가시킨 왕일민(王一民)씨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홀어머니가 살고 계신 흑룡강(黑龍江)성 탑하(塔河)로 갑니다. 이곳은 중국의 동북에서도 북쪽 끝이지요.


탑하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몇 년을 살던 왕씨는 어느날 어머니에게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어머니가 자신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삶의 생채기를 끌어안고 사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어머니, 세상구경 가실래요?” “세상구경? 어떻게?” “제가 어머니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떠나는 거예요.”

이렇게 시작된 여행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최종 목적지인 서장(西藏)을 향합니다. 티베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노모가 무슨 이유에선지 그곳까지 가자고 나선 까닭이지요. 물론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 노모는 짐작도 못 합니다. 단지 지도를 보고 “이렇게 쭉 가면 되겠네”하며 마치 이웃집 나들이 가는 마냥 쉽게 여깁니다.

일흔네살 아들은 노모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길가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과 풀잎에도 노모는 즐거워합니다.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나고서야 우비를 준비하고, 가파른 산을 넘어가며 수레를 끌기 위해 밧줄을 마련하는 등 도중에 필요한 것들을 갖춰가면서 이들은 조금씩 여행에 익숙해져 갑니다.

노모는 수레에서 밤을 새우고, 아들은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구들 삼아 이슬을 맞으며 잠을 청합니다. 하루 종일 페달을 밟고, 고갯길에선 밧줄을 어깨에 걸쳐 수레를 끌면서 아들은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어머니를 모십니다.

어머니가 칼국수를 먹고 싶다고 하자 아들은 길가에 수레를 세우고 부랴부랴 준비합니다. 밀가루 반죽을 밀기 위해 땅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조심조심 밀가루를 폅니다. 신문지가 찢어지고 반죽에 흙이 묻지만, 아들은 묻은 흙을 털어내고 정성껏 칼국수를 만듭니다. 그저 소금물에 면만 넣고 끓인 칼국수지만 노모는 맛있다며 더 달라고 합니다.

이들의 사연은 중국 중앙방송, 흑룡강TV 등 30여개 방송사에서 앞다퉈 다뤄 중국 전역에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여행길 곳곳에서 모자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 마지막 효자’라며 아들을 치켜세웁니다. 하지만 아들은 이 같은 세상의 환대를 탐탁지 않아 합니다. 자신은 단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여행길에 나섰을 뿐 세상이 알아주기를 바란 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자신을 높이 치켜세움으로써 효도를 보통사람들이 행할 수 없는 지고지순한 행위인 양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아들은 ‘금세기 마지막 효자라는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당연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평가받는다는 것은 여러 모로 부담되는 일입니다. 무얼 어떻게 하는 것이 불효인지는 잘 압니다. 그저 불효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를 대하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절강(浙江)성 지나 복건(福建)성 깊숙이 들어선 산골에서 모자는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노모의 끼니는 챙기면서도 비상식량이 모자란다고 생각한 아들은 두 끼를 굶습니다. 꼬박 사흘이 걸려 산에서 빠져나온 모자를 보고, 인근 마을 사람들은 기적이라며 닭과 돼지를 잡아 대접합니다. 이처럼 사연 하나마다 더할 나위 없는 효심이 드러나, 읽는 이를 웃기기도 울리기도 합니다. 노모의 기색을 항상 살피며, 말 한마디 표정 하나라도 거스르지 않으려는 아들의 효심은 새삼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2년여에 걸쳐 3만㎞를 돌아본 이들의 여행길은 서장의 라싸까지 이르지 못하고 중국 최남단 해남(海南)섬에서 꺾입니다. 이미 100세를 넘긴 노모가 점점 기력이 쇠잔해지는 것을 보다 못한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지요. 하지만 서장까지 가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은 책 2부에서 결국 이뤄집니다. 더욱 감동적인 사연이 펼쳐지지요.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유현민씨는 한국작가입니다. 지난 2002년 중국에서 유적을 답사하고 있던 유씨는 이들 모자의 사연을 듣고 아들을 만나기 위해 2년여에 걸쳐 왕씨를 수소문했습니다. 친구의 집에 머물고 있는 왕씨를 겨우 만난 유씨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하지만 왕씨는 “그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을 뿐이지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려 한 일이 아니다”면서 단호히 거절합니다. 이미 숱한 중국 작가들의 똑같은 청도 뿌리쳐 왔던 왕씨였습니다.

밤새 술잔을 나눈 두 사람은 그저 이야기만 주고 받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펑펑 쏟아진 함박눈은 떠나려던 한국작가의 발길을 잡고 맙니다. 순간, ‘어머니가 생전에 가보고 싶어하시던 한국에서 책이 나오면 어머니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왕씨는 결국 유씨에게 사연을 털어놓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후 일주일에 걸쳐 두 사람은 동고동락하며 같이 지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해서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을 보이게 됐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책에서 인명과 지명은 모두 한국식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왕씨가 이를 원했다는군요.

굳이 중국식 발음을 피한 것은 그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신문표기법에도 어긋나지만 왕씨의 뜻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기사에서도 이를 따랐습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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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년정보공유
글쓴이 : 큰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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