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마음을 열고

가장의 짐

주님의 착한 종 2007. 3. 16. 15:06
 

                      가장의 짐

 

오늘 새벽 5시 잠결이었어요.

어디선가 낯익은 멜로디가 깊은 잠을 깨우는 듯해 눈을 뜨니

어제 밤 설정해둔 휴대폰 알람입니다. 열심히 부지런히 울려댑니다.

모기장을 걷고 나와 전화를 끄고 남편을 깨웠습니다.

도대체 얼마 만에 이 시간에 기상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미싱으로 일해서 돈을 버는 그런 직업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섬유업계에 불황이 오고 경기침체로 인해 일거리가 거의 없이

지내는 요즘입니다.

더욱이 일년 전 그 동안 모아둔 돈을 투자해 보증금 500에 월 35만원 세를

얻었고 각종 기계를 사 들였어요.  물론 중고였지만.... 

남들은 가뜩이나 어려운데 굳이 지금 시작할 필요가 있냐고 말렸지만

어려울 때 시작해서 성실하게 하다 보면 더 잘될 거란 생각으로 일을

벌였었지요. 그리고 쉽게 사장님 사모님 소리를 들었습니다. 

껍데기만 사장이고 사모님이지....

 

어디서 알고 일을 주는 건지 첨 일을 할 땐 그저 고맙고 명품보다 더 좋은

품질로 일을 했습니다. 좋은 신임을 얻기 위해서......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이제 갓 생긴 공장들을 상대로 일만 시키고 돈을 주지

않았어요.  수법도 참 간단했어요. 마주치면 돈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므로

물건을 가져갈 땐 퀵으로 가져가고 전화 연락도 끊고 종종 모습도 감췄습니다.

 

집안식구나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처음엔 어느 정도 여유 돈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

거의 일거리가 없고 공장은 2년으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일하지 않아도

세는 줘야 합니다.

막연하게나마 그저 우리 두 사람 월급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너무 심합니다.

일년동안 손해에 손해만 거듭하길 수 차례...

 

공장주인이란 게 ,사장 사모님이라는 게,

남들 눈에 빛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갈수록 생활은 어려워지고....... 

하다 못해 5년씩 부어오던 적금도 해약을 했고.....

이번 달도 해약해서 은행에 넣어둔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합니다.

 

어젯밤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남편이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상대방은 우리와 같은 업종에 일하던 박 씨 아저씨인데

그 분은 일이 없으면 새벽에 인력시장에 간다고 합니다.

인력시장이 맞는 표현은 아닌 거 같은데..

 

아무튼 새벽에 나가서 5천원으로 접수하고 어느 곳에 하루 일을 배정

받는다고 합니다.  남편은 쉽게 노가다라고 했습니다.

공사장에서 잔심부름하고 온갖 쓰레기 정리하고......

그런 일을 하는 곳에 오늘 남편이 갔습니다.

 

웃으면서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살 빼려고 간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 말이 지금 현실에서 꼭 그렇게 듣기엔 너무 가슴이 아프기만

합니다.  갑자기 목이 아파 오는 걸 가까스로 참았어요.

아무렇지 않은 듯 청바지와 긴 팔 남방 그리고 목 장갑과 타월 한 장을

가방에 담아 남편이 아침에 나갈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 차려 주고 커피 타 주고.......

시간이 되자 박 씨 아저씨가 대문 앞에 오셨습니다.

 

남편과 나란히 걸어가면서 박 씨 아저씨가 남편에게 하는 말이 날 더욱

슬프게 했습니다.

"오늘 첨인데 가서 일 잘하면 또 일하기 쉬울 겁니다"

아!!........ 

내 남편은 그 말을 들을 때, 막노동 현장에 따라 나서려고 맘을 먹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목구멍이 심하게 아팠지만 참았습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두 아이 어린이 집 보낼 준비를 끝내고 아침을 먹는데

 남편 전화가 왔어요.  휴식 중이라고.. 

“할만하냐”고 밖에 난 말하지 못했습니다.

 

점심시간쯤 되서 또 남편은 전화를 했습니다. 점심 먹었냐고......

내 맘을 이해하려고 전화를 했겠지.

자기는 아무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겠지........

남편이 이 일을 얼마나 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저 고맙고 불쌍하기만 합니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아빠로 가장이란 짐을 진 남편이

정말 불쌍합니다.

그래요. 내 남편은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첨이나 지금이나.... 

내 나이 스물 둘에 남편은 서른이었고 남편의 성실함이 좋아서

고아였던 내 친구와 맺어주려 했었지요 .

그런데 내 남편이 키가 작다는 이유로 친구가 남편을 거부했어요.

 

물론 남편은 아직도 그걸 모른답니다.

성실해서 좋게 봐 온 사람이 어느 날 내가 좋다고 하길래

쉽게 난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 내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왠지 난 남편에게 너무 쉽게

기울었습니다.  사랑도 전혀 없었지만...... 

그게 인연인가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남편과 살아온 지 11년.........  남편은 첨보다 지금 더 날 아낍니다. 

사랑한다 말은 하지 않지만 그러한 말보다 더 중요한 느낌이란 게 있더군요.

언제나 남편은 날 보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한 번도 내게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낸 적도 없었네요.

그렇게 우린 11년을 다툼 없이 살아왔습니다.

 

부부가 살려면 자주 싸워야 정들고 잘 산다고들 하지만

우린 싸우지 않아도 잘 살고 있습니다.

마주하기만 하면 싸우는 오빠네는 날보고 묻습니다.

둘이 있으면서 안 싸우냐고...... 싸울게 뭐 있나?  왜 싸우지??????

 

암튼 오늘 너무나 많은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어젯밤 남편은 애들에게 "아빠가 낼 일해서 돈 받으면 수박 사올게~~~~"

 

들에게도 너무나 다정한 남편입니다.

지금 힘들고 지쳐 있는 많은 부부들...

서로가 조금 더 이해하고 아끼길 바랍니다.

조금 아주 조금만 상대를 더 배려하는 그런 삶이 되길 바랍니다.

 

난 누구에게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게 변함없는 내 마음이에요.

오늘 내 남편은 참으로 아름다운 가장인 거 같습니다.

어서 남편의 짐을 덜어 주고 싶어요.

 

                                      - 유니텔 가톨릭 동호회 마니또 자매의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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