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
어느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오늘 숙제는 부모님이 가장 아끼는 물건을 그려 오는 거예요.”
다음 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차례로 나가 그려온 그림을 보여주며
부모님이 왜 아끼시는 지 설명을 하게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의 밍크 코트를 그려오기도 했고,
고급 보석으로 된 반지며 목걸이 같은 것들을 그려오기도 했고
억대에 가까운 외제 고급 승용차를 그려오기도 했고
살고 있는 아파트나 넓은 정원이 딸린 집을 그리기도 했고,
어느 큰 교회의 담임 목사 아들은 아빠가 근무하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거대한 교회당의 그림을 그려오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것들이 얼마나 값비싸며 귀하고 호화스러운 것인가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발표를 하지 않고 미적거리던 아이가 있어 선생님이 그
아이를 불러냈습니다.
앞으로 나온 그 아이는 처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입술을 꼭
깨물고는 그림을 펼쳐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베개 하나가 그려져 있었고
그림 밑에 ‘엄마의 베개’라고 씌어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갑자기 와! 하고 웃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이 멈출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내가 2학년 때 백혈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우리 곁을 영영 떠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천사가 되어 다시 우리 곁에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나와 동생이 천사가 되신 엄마 모습을 보지 못하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뿐이라고 하시며
언제든지 힘들 때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다 들어주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침대에는 지금도 엄마가 베시던 베개가 아빠의 베개와
함께 나란히 놓여있고 혹시 약주라도 드신 날에는
아빠는 엄마의 베개를 꼭 안고 주무십니다.
아빠는 엄마의 냄새가 남아있는 이 베개가 나와 동생 다음으로
아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잘 모르겠어요.
이 베개가 아빠에게 왜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
그러나 얼마 전에 이모와 이모부가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약주를 드신 아빠가 말했습니다.
‘처제, 혹시 말야, 정말 혹시 말야,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 먼저 떠나는 일이 일어나거든
저 베개를 함께 넣어주게나. 부탁일세‘
아빠가 어디론가 떠나실 때에도 꼭 이 베개를 가지고 가시겠다는
것을 보면 아빠에게는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느 새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숨을 죽여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선생님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고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