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을 준비하며/동네북님의 중국소무역경험일기

경험일기 006 - 충분한 조사와 사생결단의 의지

주님의 착한 종 2007. 1. 18. 15:54

( 하이윈난, 동네북님의 경험기)

 

여섯 번째 이야기.

 

아침 편지함에 많은 분들의 격려와 도움의 글들을 받았습니다.
격려를 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도움 글 주신분들에게는 감사 드립니다.
편지 중에 이러한 내용의 편지가 많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하는 일이 전혀 무역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다.
자본도 넉넉치 못하다. 고민만 하고 있다.
중국에 꿈이 보인다지만, 워낙 불확실하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해야 할 것 같아서..
어떻게 시작하여야 할지 막막하다

각설하고...
오늘은 3년 전 우연히 찾아온 어떠한 여인의 이야기를
하여 볼까 합니다.

나이는 그때 당시 38살,

한국에서 나의 연락처를 알게 되어 사무실을 열고 들어오는

그 여자의 모습은 지칠대로 지친 모습이 얼굴에 역력하였습니다.
남편은 고등학교 선생을 하다 2년 전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고,
딸아이는 고1이 되면서 친구들과 본드흡입 등등으로 가출한지 1년 반,
친정에 기대어 지내었지만,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친정에 기대어 볼

벽마저 사라지고 나서, 온갖 일들을 다하여 보았지만
여자 혼자의 몸으로 견디기 힘든 세파의 흔적이

그 여자의 구석구석에서 베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한창 더위가 몰아치는 중국 절강 이우의 한여름,
얼음을 띄운 냉커피 한잔으로 그 여자가 나를 찾은 사연을 들어 보았습니다.
뜨문뜨문 대화 자체가 무척이나 서투름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 만큼 사회의 경력이 일천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여자의 한숨 고인 가방엔 또 작은 묶음이 나오면서,

그 묶음을 탁자 위에 정성껏, 정말 조심스럽고 정성을 다하여

그 묶음을 푸는 그 여자의 손길은 조금 떨고 있었습니다.

그 묶음 안에는 여자 팬티 14장이 쪼글쪼글하여져서 펼쳐졌습니다.
사실 전, 그때까지만 하여도 한국의 재생화학원료(우레탄, PP, PET)

같은 것을 중국으로 수입하였고, 청도항으로 한국의 굴삭기를
가져 오는 것이 주 수익원이었습니다.
사실, 이우에서도 한국의 부, 원자재의 공급을 목표로

뛰어 든 것이니 손바닥만한 여자 속옷은 그냥 쳐다보기도

민망스러워서 지나 친 것이 사실입니다.

그 여자가 나를 찾은 이유는 단 한가지..
이 14가지의 샘플로 가져온 팬티를 똑 같이만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을 알려 주고, 가격도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량은 사실 얼마 되지도 않는 것도 빠트려서는 안되지요..

사실 의류는, 특히 속옷 관련은 움직이는 물동량이

10만장 단위는 되어야 공장이 가동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가 나름 대로 준비 한 것을 보면
무척 간단하지만 놀라울 수 밖에 없습니다...특히 무역 방면으로

이 여자는 지난 6개월 동안 상계동 모 백화점 속옷 판매장..
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골라 골라~ 하는 것 말입니다.
그곳에서 오로지 손님들이 흩트려 놓은 것을 정리하는

잡일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로지 그 일만 한 것이 아니라,

손님들이 가장 잘 가져가는 패턴을 나름대로 연구를 하고,

수집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중 가져 온 것이 이 14장인 것입니다.

던져진 숙제를 풀어 보기로 내 자신이 숙고를 하였습니다.
많은 물량도 아니고, 결재 조건도 별로 탐탁치 않고

인근의 봉재 공장에 그냥 맡기는 것은 필경 아니 될 것이고..
하여, 마침 제가 한국에서 스판덱스를 공급하여 주는 업체가 있어서
이 스판덱스 업체를 기초로 원단 공장으로,

원단공장에서 봉재 공장으로 하여 샘플을 제조 하여 줄 업체를

찾아 보았습니다.
첫 번째 샘플용으로 한가지 모델당 1000장씩만 만들자..
비용은 스판덱스 업자더러 담보하여 달라는 부탁과 함께..

다만, 여기서 내가 확신 한 것은,

샘플이 정말 정확하게 만들어 진다면 한국시장에서 충분히

팔리겠다는 확신이 그 여자에게서 느껴졌던 것입니다.

충분한 시장조사..(이건 한국시장조사를 말합니다)
그리고 사생결단을 내자는 결의..

이거야 말로 초보 무역꾼이 있어야 하는 필요 여건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하여서, 불과 1주일 만에 샘플 별로 1000장을 만들었습니다.
아니, 1200장도 있었고, 1100장도 있었고..

여튼 샘플을 만들어서 한국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속옷이..
요즈음 그 여자는 한 달에 약 2컨테이너의 물량을

소화 해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나 역시 속옷에 대한 전문가가 되었으며,
지난해 10월부터는 직영 공장을 갖추게 되는

동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누가 보따리를 무시 하던가요..
무역은 무역학과를 나와야 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전공은, 보따리 무역인이 커서 활용하기 위한 것일 뿐..

여러분은 창조력을 가진, 오너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적는 중에 손님이 와서
많이 줄여 버렸습니다.

동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