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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4월23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4. 2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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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4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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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평신도들의 신앙공동체가

수없이 많지만 가장 인원이 많고 조직적이며

위계질서가 확실한 단체로는

누가 뭐라고 해도

레지오 마리애라는 단체가 으뜸일 것입니다.

 

라틴어로는 Legio Mariae 라고 쓰고

레지오라고 통칭되는 이 단체는

성모님의 군대’’라는 뜻입니다.

 

레지오는 교본에 의하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강력한 지휘 아래,

세속과 그 악의 세력에 맞서는

교회의 싸움에 참가하기 위하여

설립된 군대이다.

(중략)

이 군대의 현태는 본디 로마 군단을 본뜬 것이며,

명칭도 거기서 따 왔다.”고 하지요.

 

1917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순수한 몇 명의 평신도들이 발족한 이 단체는

현재는 전 세계 모든 가톨릭 성당에

조직되어 있을 정도로 성장을 하였고

금전적인 어떠한 것도 모두 강력히 배제하고

오직 기도와 노동 등으로 봉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희 본당에서 꾸리아 (Curia) 모임이 있었습니다.

꾸리아는 분대라는 의미의 쁘레시디움(Pr.)을

두 개 이상 관장하는 평의회인데

그냥 쉽게 중대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다들 아시는 내용인데..

 

코로나로 인해서 그동안 회의가 중단되었거나

약식으로 진행되어 온 꾸리아 회합이

오랜만에 정식으로 개최되었습니다.

Pr. 4간부가 모두 모여 열띤 토론을 곁들인

회합 모습을 보니 이제는 정말

코로나로 걱정하던 시대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거리 두기 시행으로 미사는 물론

단체 모임에 빠지다 보니, 습관이 되어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제 자리를 찾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시고

안심시켜 주셔서 당신의 확실한 제자로

삼으신 것 같이

우리는 어떻게 교회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되돌아올 수 있게 할 것인가..

레지오에서 심각하게 고민하여야만 하겠지요.

 

 

오늘 복음은 마르코 16,9-15입니다.

복음 말씀을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일곱 마귀 들린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완전히 치유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런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스도 교회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과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당신의 복음 선포를 지속하십니다.

주님의 참 제자들은 온 세상으로 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전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시어 당신의 부활을 증언하십니다.

당신 곁에서 3년을 동고동락한 제자들일지라도

스승님의 부활만큼은 결코 쉽게 믿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겠지요.

 

하물며 주님의 부활 이후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부활의 신비를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아니 믿음으로 간직하기에는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지낸 사도들에게조차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직접 보여 주셨던

주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다릅니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방식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 안에서, 성체의 신비 안에서,

그리고 신앙의 실천 안에서

당신 부활의 신비를 드러내고 계시기에

우리가 이해하고 수긍하여 따르기가

많이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물질만능주의로 변한 현대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주님 부활의 신비를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는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어야만 할 텐데요.

 

 

부활의 정신은 새로운 출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라도 다시 시작하는 자세 말입니다.

일이 잘 풀릴 때에는 그것이 쉽습니다.
매일이 새롭겠습니다.

 

하지만 귀찮고 힘든 일이 생기고

계획대로 풀리지 않으면 짜증과 분노가

찾아 들기 마련이지요

 

새 출발은 어디에서 먼저 시작해야 할까요?

제가 자주 저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뒤돌아 보자.”

뒤돌아 보면 모든 것이 은총임을 깨닫는다”

 

그렇습니다.

다시 시작하려면 주어진 모든 것을

다시 돌아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렵지만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필요했기에 주셨다.

장점도 약점도 시련도 고통도 그리고 질병까지도

필요했기에 주셨다.

모든 인연과 관계 역시 나에게는 꼭

 있어야 했기에 맺어 주셨다.

그러니 주신 분의 뜻을 묵상해보자.”

 

그렇게 하여 얼마라도 깨달을 수 있게 되면

그제서야 나를 지탱하고 있는

힘의 원천을 깨달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새 출발을 시작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복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지요.

그 이유는 부활을 확인시키시려고

그러셨던 것이 아이라 제자들도 부활의 삶을

살라는 뜻에서 그렇게 하셨던 것이랍니다.

 

그러니 변화의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다고 받아들이면

그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고 하지요.

 

스승의 발현으로 제자들은

모든 것’의 원인이 주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은총 없이는 새로운 출발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애써도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