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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3월11일)
<법의 근원은 화해의 성사입니다>
듣기 민망하던 비난과 막말의 방송이
대선이 끝나자 사라졌습니다.
그 동안 귀를 닦아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모 후보가 낙선한 큰 이유 중 하나가
형수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욕지거리와
형님에게 한 행동들이었음은 자명합니다.
오늘 복음 마태오 5,20ㄴ-26 말씀을
귀담아 듣고 행동했더라면
후회가 없었을 텐데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형제에게 화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요.
성이 나면 폭언은 예사입니다.
‘바보, 멍청이’ 정도는 애교에 속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말을 하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하시는 군요.
서로 불목하여 싸우는 인간들에게서는
그 어떤 예물도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마음은 진정 사랑이 넘치는
부모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유산을 더 많이 상속받으려고
서로 헐뜯고 싸우는 형제들을 보게 됩니다.
얼마라도 더 받아내고 싶어
서로 반목하여 원수처럼 지내면서도
부모 앞에 나타날 때에는 온갖 예를 갖추고
선물을 정성껏 준비하더군요.
하지만 어느 부모가 그러한 인사와
선물을 반기겠습니까?
진정 부모를 위한다면 서로 화해하고
잃어버린 우애를 되찾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할 텐데요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바치는 예물보다
형제들과 화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며 먼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웃에게 성내는 것부터 바꾸라는 말씀이지요.
살인 같은 큰 죄는 누구나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렇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성을 내는것은
작은 잘못이라 생각하니 무관심합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성내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
살인 같은 큰 죄를 질 수 있을까요?
공자님도 참을 인(忍)이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셨는데요,
형제처럼 가까운 사람을 얕보고 비웃는
사람은 큰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웃과 소원한 관계라면 가까이 지내라."
이것이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형제와 법정 소송을 벌였다면
될 수 있는 대로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화해는 하느님의 힘과 기운을
모셔 오는 행동이라고 하지요.
작은 말 하나가 화해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큰 불목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번 대선 후보들도 말 실수로
진땀 흘리며 곤욕을 치르더군요.
“말에서 실수하지 않으면 온전한 사람”
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가까운 사람과 사랑하는 가족에게
성을 내고 업신여기는 말은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노력하면 될 것입니다.
삶의 태도를 바꾼다면 저절로 고쳐집니다.
이번 사순 시기 동안 힘써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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