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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3월08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3. 8.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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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3월08일)

 

 

제가 가끔 시건방지게 하는 이야기 중에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말이 있습니다.

제가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금도 깜짝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섭리 때문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참으로 암담한 사태에 직면할 때가 많았는데

어떻게 사건이 해결되고 무마되었는지

떠올리다가 뒤늦게 깨닫곤 하는데

거기에는 늘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여

제가 보살핌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주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그래서 감히 다른 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보십시오.” 라고요.

 

그냥 운이 좋아서, 재수가 좋아서,

기막힌 우연이나, 좋은 인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해주신 것이 하느님이셨다.” 라고요.

 

 

우리는 자신이 받은 관대와 용서

그리고 사랑의 체험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증오의 감정에 더 집착합니다.

 

제 자신이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고 믿으면서도

관대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며

사랑은 오랫동안 더더욱 베풀지 못합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하느님과 이웃에게서

사랑 받고 용서받았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타인에 대한 이해와 용서가 얼마나 어렵고

오로지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상대방의

흉과 허물만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모두 조금만 바뀌어 봅시다.

 우리의 생각을 조금만 바꾼다면

새로운 인식의 틀을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누구에게서나 예수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찾을 수 없다면 아직 우리는 닫힌 마음인 것이지요.

 

어느 분의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타인이 나에게 잘못한 부분보다는

잘해 준 부분을 먼저 보는

노력을 해보라 하시더군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것부터 먼저 볼 수 있다면

 

사랑과 용서의 체험이

상처의 체험보다

앞설 것은 분명하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이웃을 증오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게 될 것은 자명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보여 주신 행동은 용서였고요.

 

그러므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곧 용서하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어떤 유혹이겠습니까?

사랑하지 않겠다는 유혹 아닐까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마음이겠지요.

이런 유혹에서 구해 주십시오 하며

기도하는 것을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십니다.

 

세상에는 부정적인 것이 더 많아 보이지만

마음의 눈을 조금 더 크게 뜨고 보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살아있는 기도라고 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