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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3월07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3. 7.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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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3월07일)

 

 

울진, 삼척 지역과 동해 지역의 산불을

3일째 잡지 못한 채 밤을 지새우고

4일째를 맞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수십 년의 추억이 깃든

아버지가 지으신 집이 다 타버렸다며

눈물 짓는 촌로의 얼굴에는

체념의 빛이 가득합니다.

아사 이 불길이 잡혀야 할 텐데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무너지고 불타는

건물 사이로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안고

달려가는 구조대원을 바라봅니다.

 

불타는 산과 산,

무너져 내린 건물에 파묻힌 사암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비라도 흠뻑 내려주면 좋겠는데

겨우내 가물었던 땅에는

아직 비 소식은 기미조차 없습니다.

마치 지옥의 뜨거운 불 속에서

한 모금 물을 갈구하는 악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릴 때 보았던 기적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수도자의 삶을 갈구하던 예비 수녀가

어느 젊은 장교와 사랑에 빠져 구도원을 뛰쳐나가고

 그 고장은 비 한방을 내리지 않게 됩니다.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와

엎드릴 때 비가 내리며 막을 내리는 영화인데

그 영화처럼 비가 내리는 기적이라도

주님께서 내려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제1독서 레위기 19, 1-2. 11-18는

마치 신약에서의 예수님 말씀처럼 들립니다.

레위기의 근본정신은

주 하느님을 바르게 섬김으로써

하느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은 레위기의 중심이며

구약 성경에 있어서의 최고의 사회도덕 기준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사랑의 계명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오늘의 복음 마태오 25,31-46를

생각해 봅니다.

 

종말에 최후의 심판을 받을 사람들은

인류 전체가 대상이 될 것입니다.

 

종말 심판의 기준은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우선 적용될 것이 틀림 없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란

불쌍한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불쌍한 사람들일 것도 틀림 없습니다.

 

왜냐고요?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천천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실 때에

우리가 어떠한 죄와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헤아리시기 보다는,

우리가 타인을 위해 얼마나 도움을 주었고

또 얼마나 이해타산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선행을 베풀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아

용서를 청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인생의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이웃을 위하고 또 얼마나

진정한 마음으로 선행을 하는지에

그 가치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선행이야말로 악행을 이겨 내고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임에 틀림 없습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마음의 초점이 늘 악행에만

머무르기 때문에 평생 악행과 싸우는 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그러나 선행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의 온 삶이 선을 쌓으려는 의지로

향하기 때문에 어느덧 자신의 삶이

긍정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다시 복음을 읽어보니

어쩌면 이렇게 딱 들어맞을까요?

 

그러므로 삶의 마지막 심판 때에

하느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려면

악을 피하려는 것보다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에 있음을

주님께서 오늘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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