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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19일 연중 제6주간 토요일
Saturday of the Sixth Week in Ordinary Time
+ 야고보 3,1-10
<사람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해설)
어떤 이들은 입이 무거워서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잘 알 수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말이 많은데
쓸데 있는 말이 별로 없어서 듣기는 하나
그냥 흘려버려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마 말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로
실수나 악을 범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말을 아끼며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혜로운 처사인 듯도 합니다.
성경도 혀를 능히 길들일 자가 없다고 하였고
이는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지칠 줄 모르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입니다.
1 나의 형제 여러분, 많은 사람이 교사가 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2 우리는 모두 많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누가 말을 하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그는 자기의 온몸을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3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 복종하게 만들면,
그 온몸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4 그리고 배를 보십시오.
배가 아무리 크고 또 거센 바람에 떠밀려도,
키잡이의 의도에 따라 아주 작은 키로 조종됩니다.
5 이와 마찬가지로
혀도 작은 지체에 지나지 않지만 큰일을 한다고 자랑합니다.
아주 작은 불이 얼마나 큰 수풀을 태워 버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6 혀도 불입니다. 또 불의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혀가 우리의 지체 가운데에 들어앉아
온몸을 더럽히고 인생행로를 불태우며,
그 자체도 지옥 불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7 온갖 들짐승과 날짐승과 길짐승과 바다 생물이
인류의 손에 길들여질 수 있으며 또 길들여져 왔습니다.
8 그러나 사람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악한 것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
9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0 같은 입에서 찬미와 저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이래서는 안 됩니다.
+ First Reading, James 3:1-10
1 Not many of you should become teachers, my brothers,
for you realize that we will be judged more strictly,
2 for we all fall short in many respects.
If anyone does not fall short in speech, he is a perfect man,
able to bridle his whole body also.
3 If we put bits into the mouths of horses to make them obey us,
we also guide their whole bodies.
4 It is the same with ships:
even though they are so large and driven by fierce winds,
they are steered by a very small rudder
wherever the pilot’s inclination wishes.
5 In the same way the tongue is a small member
and yet has great pretensions.
Consider how small a fire can set a huge forest ablaze.
6 The tongue is also a fire.
It exists among our members as a world of malice,
defiling the whole body and setting the entire
course of our lives on fire, itself set on fire by Gehenna.
7 For every kind of beast and bird,
of reptile and sea creature,
can be tamed and has been tamed by the human species,
8 but no human being can tame the tongue.
It is a restless evil, full of deadly poison.
9 With it we bless the Lord and Father,
and with it we curse human beings
who are made in the likeness of God.
10 From the same mouth come blessing and cursing.
This need not be so, my brothers.
< 묵 상>
듣기는 속히 해야 하는 반면에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것이 야고보 사도의 교훈입니다.
행동으로 무엇이 나오기 전에
당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점검하라는 말씀입니다.
말하기를 더디 한다는 것,
이것 역시 듣기를 속히 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말을 해 놓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 템포만 늦게 말하려고 했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텐데,
생각 없이 분별없이 튀어나온 말 때문에
듣는 사람이 상처를 입고, 나도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 마르코 9, 2-13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였다.>
(해설)
예수님의 변모 이야기는 예수님의 수난 예고와
베드로의 수난 거부 사건 뒤에 자리하며,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더욱 확고히 하는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 부활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오르신
높은 산은 특별한 가르침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변모하시고 옷이 새하얗게 빛납니다.
그때에 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11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13 사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Mark 9, 2-13
2 After six days Jesus took Peter, James, and John
and led them up a high mountain apart by themselves.
And he was transfigured before them,
3 and his clothes became dazzling white,
such as no fuller on earth could bleach them.
4 Then Elijah appeared to them along with Moses,
and they were conversing with Jesus.
5 Then Peter said to Jesus in reply,
“Rabbi, it is good that we are here! Let us make three tents:
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6 He hardly knew what to say, they were so terrified.
7 Then a cloud came, casting a shadow over them;
then from the cloud came a voice,
“This is my beloved Son. Listen to him.”
8 Suddenly, looking around,
they no longer saw anyone but Jesus alone with them.
9 As they were coming down from the mountain,
he charged them not to relate what they had seen to anyone,
except when the Son of Man had risen from the dead.
10 So they kept the matter to themselves,
questioning what rising from the dead meant.
11 Then they asked him,
“Why do the scribes say that Elijah must come first?”
12 He told them,
“Elijah will indeed come first and restore all things,
yet how is it written regarding the Son of Man
that he must suffer greatly and be treated with contempt?
13 But I tell you that Elijah has come and they did to him
whatever they pleased, as it is written of him.”
< 복음 묵상 >
천상적 존재가 나타나면 인간은 두려워합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천상의 존재들입니다.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예수님은 하느님 본래의 모습입니다.
이분들은 영원한 장막에 거처하신데
베드로는 현세적인 초막 셋을 지어 드리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셔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 마르코 9,2-13
1.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사건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은
내게 어떤 의미로 들립니까?
그리고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다는 뜻은 어떻게 해석됩니까?
2. 나의 삶은 주님을 증거하는 삶입니까?
아니면 세상적인 것에 한눈팔려
하느님의 참 진리를 놓치며 살고 있습니까?
삶 속에서 나는 언제 예수님을 만나며
어떻게 그 분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참 모습을 체험한 제자들의 모습처럼
만약 하느님의 현존 앞에 서게 되면
나도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고백할 수 있을까요?
-1분 묵상-
요셉의 다락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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