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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16일 연중 제6주간 수요일
Wednesday of the Sixth Week in Ordinary Time
+ 야고보 1,29-27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해설)
절제되지 않는 욕심이 죄와 사망을 낳는 것처럼,
통제되지 않는 말과 분노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경솔한 듣기와 성급한 속단은 건강한 관계와 소통을 방해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기보다 그분의 음성을 먼저 듣고
원망과 불평을 내뱉기보다 그분의 뜻을 물으며,
초조해하고 조급해하기보다 그분의 때를 인정하고
기다리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태도일 것입니다.
19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20 사람의 분노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현하지 못합니다.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 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22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23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
25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26 누가 스스로 신심이 깊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아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 사람의 신심은 헛된 것입니다.
27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 First Reading, James 1:19-27
19 Know this, my dear brothers everyone should be quick to hear,
slow to speak, slow to wrath,
20 for the wrath of a man does not accomplish the righteousness of God.
21 Therefore, put away all filth and evil excess and humbly welcome the word
that has been planted in you and is able to save your souls.
22 Be doers of the word and not hearers only, deluding yourselves.
23 For if anyone is a hearer of the word and not a doer,
he is like a man who looks at his own face in a mirror.
24 He sees himself, then goes off and promptly forgets what he looked like.
25 But the one who peers into the perfect law of freedom and perseveres,
and is not a hearer who forgets but a doer who acts,
such a one shall be blessed in what he does.
26 If anyone thinks he is religious and does not bridle his tongue
but deceives his heart, his religion is vain.
27 Religion that is pure and undefiled before God
and the Father is this to care for orphans and widows in their affliction
and to keep oneself unstained by the world.
(묵상)
절제된 언어와 소외된 이웃을 향한 돌봄,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 참된 경건이요,
진리로 우리를 낳으신 주님을 닮은 삶입니다.
나는 신앙의 진위와 경건의 진정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경건의 능력은 물론 경건의 모양마저 사라져가는 시대 속에서
참된 경건과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마르코 8, 22-26
<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해설)
예수님께서 베싸이다 소경의 눈에 손을 대시자
그의 눈이 밝아지고 성해져서 모든 것을 바로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내시면서 마을로 들어가지 말고
곧 바로 집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는 이유는 이런 치유로 인해
잘못된 메시아 사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예수님을 오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22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Mark 8:22-26
22 When they arrived at Bethsaida,
they brought to him a blind man and begged him to touch him.
23 He took the blind man by the hand and led him outside the village.
Putting spittle on his eyes he laid his hands on him and asked,
“Do you see anything?”
24 Looking up he replied, “I see people looking like trees and walking.”
25 Then he laid hands on his eyes a second time and he saw clearly;
his sight was restored and he could see everything distinctly.
6 Then he sent him home and said, “Do not even go into the village.”
(묵상)
예수님만이 오천 명을 먹이시는 분이며,
예수님만이 소경의 눈을 완전히 성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별난 기적장이로 소문나는 것을 싫어하시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기적의 사건들을 소문내지 말도록 명하십니다.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치시다.
+ 마르코 8:22-26
1. 나의 삶이 어두운 밤길을 걷는 것과 같음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내가 어둠과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나를 일으켜 주시던 주님의 손길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나는 그때 어떤 위로와 치유를 받았습니까?
2. 하느님의 섭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진리 속에 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영적 소경입니다.
주님을 올바로 바라 보기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적 눈을 뜰 수 있도록 주님께 치유의 은총을 청하여 보십시오.
-1분 묵상-
요셉의 다락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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