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4. 크리스마스의 탄생
올해도 어김없이 아기 예수께서 우리 곁에 오십니다.
거리 곳곳마다 성탄 캐럴이 울리고,
교회에서도 성탄 성야미사 준비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우수개 소리를 먼저 하겠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생활할 때 일입니다.
그곳에서도 성탄절이 다가오면
백화점이나 상가에 요란하게
Merry Christmas 라거나
중국어로 圣诞节(셩딴제) 라고 쓰고
싼타크로스가 썰매를 타고 가는 광고가
요란하게 등장합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에게 셩딴제가
어느 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냐? 고 물으면
잘 모릅니다.
대개는 圣诞老人(셩딴라오런 : 싼타크로스)
또는 红衣老人(홍이라오런:빨간 옷을 입은 노인)의
생일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공산국가의 실상이지요.
오늘 <교회상식 속풀이>에서는 크리스마스,
즉 성탄절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홍락 신부님의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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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동들의 경배 (게하르트 作, 1622년)
우리가 흔히 부르는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으로,
이 말의 기원은 앵글로 색슨족의 언어였던 고대 영어
‘크리스테스 매세’(Cristes Maesse)입니다.
이 크리스마스라는 용어가 문서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시기는
11세기 중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1세기 이전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불렀을까요?
그냥 ‘탄생일’(Dies Natalis)로 불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 즉 성탄(聖誕)이라는 의미지요.
초기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이레네우스(140-203년)교부와 테르툴리아누스(160-220년)교부가
자신들의 ‘축제표’에서 성탄절을 기록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성탄절은 초기 교회의 축제에 포함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오리게네스(185-254년) 역시 자신의 저서 <레위기 강해>에서
‘임금의 탄생’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성경에서 성인이 아닌 죄인들만이
자신들의 생일을 경축한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성인들은 자신의 탄생일이 아니라 천상탄생일,
천국으로 돌아가는 날을 기념한다는 것이지요.
<교부학 총서>로 유명한 프랑스의 교부학자
자케 미뉴(Jacques P. Migne, 1800-1876년)가 편집한
<라틴 교부학> (Patrologia Latina)에 따르면
호교론자였던 아르노비우스(Arnobius, 327년경 사망)는
“하느님의 생일이 존재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라며
조롱 섞인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그 만큼 하느님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추후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논쟁으로까지 확대됩니다.
초기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주님 공현대축일인 1월 6일
12월 25일은 로마인들의 ‘무적의 태양 탄신일’을 그리스도교화 한 것
그렇다면 교회에서 언제부터 성탄절을 경축했던 것일까요?
성탄절에 대한 첫 증언은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약 200년 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215)는
그의 저서 <양탄자> (Stormata)에서 몇몇 이집트 출신 신학자들이
아우구스투스 황제(재위 기원전 27년-기원후14년) 재위 28년 5월 20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합니다.
또한 클레멘스는 2세기 초 영지주의자였던 알렉산드리아 출신
바실리데스(Basilides)의 추종자들이
‘주님 공현축일’인 1월 6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경축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케 미뉴의 또 다른 저서 <희랍 교부학>(Patrologia Greca)에 따르면,
4세기 말엽,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누스(Cyprianus, 200년-258년)는
‘예수의 신성을 거부’한 알로기(Alogi)파에 반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1월 6일에 태어나셨고,
12월 8일에 세례를 받으셨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또한 시리아의 에프렘(Ephream, 306-373년)교부 역시
메소포타미아에서 성탄을 1월 6일에 거행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동방교회에 속하는 아르메니아에서는
아직도 1월 6일을 성탄으로 경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2월 25일이 성탄이라는
주장도 거셌습니다.
요한 카시아노(Joannes Cassianus, 360-433년)는
418-427년 사이에 쓴 저서 <담화집> (Collationes)에서
이집트 수도원들에서 “오랜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오랜 전통”은 바로 12월 25 일입니다.
그리고 이는 에메사의 바오로의 강론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427-433년 사이에 이미 이집트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12월 25일을 예수 성탄일로 경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카파도키아 출신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35-394년) 교부는
<성 바실리우스에 관한 강론>과 <성 스테파누스의 축일 강론>에서
이미 380년에 12월 25일을 성탄축제로 경축하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isostomus, 349-407년)는
388년 <성 필로고니우스 축일에 대한 강론>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12월 25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탄일이 최소한 10년 정도 지속적으로 지켜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탄 축제의 목적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는 정통 교리 고수
5세기 초, 12월 25일
예수 성탄 축일 정식 선포
성탄 축제를 통해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고
정통 교리를 고수하려는 목적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교회는 이어 5세기 초, 12월 25일을 예수성탄 축일로 정식 선포했습니다.
이렇듯, 초기 교회는 성탄절은 1월 6일과 12월 25일로
각각 경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교회에서 성탄을 12월 25일로 확정한데는
로마인들의 3대 축제 가운데 하나인
‘무적의 태양 탄신일’(Natalis Solis Invicti)을 그리스도교화 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사(史)의 대가인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 1817-1903)의 저서
<라틴 명문 전집>(Corpus Inscriptionum Latinarum)에서,
274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Aurelianus,재위270-275년)때부터
태양을 최고신으로 공경하여 태양신의 신전을 건립하고
그 건립일인 12월 25일을 축제일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그 축제일이 바로 ‘무적의 태양 탄신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제일이 그리스도교의 성탄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앞서 언급한 미뉴의 <라틴 교부학>에서도
몇몇 교부들이 태양신 축제인 ‘무적의 태양 탄신일’과 예수의 탄생일을
서로 연결 지으려는 시도를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첫 증언은 카르타고의 치프리아누스 교부에서 나타납니다.
그는 “오! 태양이 태어났던 그 날,
하느님의 섭리가 얼마나 놀랍도록 이루어졌는가...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날 탄생하셨도다.”
(De pasch. Comp. 19장)고 주장합니다.
또한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역시
“우리 주님 역시 1월의 시작 8일전, 12월 25일에 태어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날을 ‘무적의 태양 탄신일’이라 부른다.
그 누가 우리 주님처럼 참으로 무적일수 있을까?
또는 그 날이 태양의 탄신일이라 한다면,
그 날은 정의의 태양이신 예수의 탄신일일 것이다.”
(del Solst. Et Æquin. 2장)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무적의 태양 탄신일’과 예수의 탄생일을
연결 지으려는 태도에 반박하는 교부도 있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 교부는
“이 태양은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이 아니다”(Apol., 16장)고 주장했고,
아우구스티누스 교부도
“태양을 그리스도와 합치시키는 것은 이단적인 생각”(Tract xxxiv, in Joan.)
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또한 교황 레오 1세(재위 440-461년)는
<주님의 탄생에 대한 강론>((Serm. xxxvii in nat. dom.)에서
태양신 숭배에 대해 격렬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하지만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다시 한 번 교회의 공식 결정으로 승인했던
교황 리베리오(Liberius, 재위 352-366년)는
354년 디오니시우스 필로칼루스(Dionysius Filocalus)에게 명하여
그의 연대기를 통해 새해가 시작하기 8일 전인 12월 25일을
성탄축일로 로마 축일표에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했던 아리우스주의에 대항하여
성탄 축제를 통해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고
정통 교리를 고수하려는 목적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교회는 이어 5세기 초, 12월 25일을 예수성탄 축일로 정식 선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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