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을 준비하며/중국무역·사업 경험기

최고 부자 순위에 집착하다 망한 기업인들

주님의 착한 종 2016. 11. 11. 09:57


올해도 중국 최고 부자 자리를 지킨 왕젠린(王健林)
완다(万达)그룹 회장은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사상 최고에 이르렀다고
비난했다.
왕 회장은 “중국 정부도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구매제한이나 대출 축소 등 각종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각을 세웠다.
내용은 새로울 것 없지만 올해 부동산 사업에서 헛발질을
한 왕젠린 회장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왕젠린 회장은 지난 4년 사이 3 차례나 중국 최고 부자에
오른 사람이다. 2013년에는 중국 부자순위를 집계하는
 포브스와 후룬 두 개 기관을 통틀어 최고 부자 통합 타이틀도 차지한다.
물론 두 기관에서 집계한 그의 재산은 무려 490억 위안이나 차이를 보였다.
왜 이런 착오가 있었는지는 왕젠린 회장 자신 이나 완다그룹 내부에서만 알 수 있는 일이다.

중국 최고부자가 오만하게 정부에 불만을 터뜨리자 중국 부동산업계 큰 손인 왕스 완커 그룹회장은
업계에 불똥 튈 것을 우려한다. 
 “최근 어떤 사람이 정부 들으라고 헛소리를 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라며
“부동산 관리 감독 기관이 호랑이로 돌변하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중국에서 기업인이 기고만장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경고로 들린다.

마침 청두의 루비엔서(路边社)는 다롄(大连)시 전 상무위원인 진청쩡(金程曾)이
지난 15년간 30개 부동산 개발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아 온 것으로 드러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뇌물을 준 기업에는 완다와 왕 회장의 친구 회사인 이팡(一方)그룹도 포함돼 있다.
또 완다가 국영기업에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고도 했다.

왕젠린 회장은 재 빨리 해명에 나섰다.
“중국의 민영기업은 원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완다는 원죄가 없다.
 완다는 뇌물을 주지 않기 때문”이러고 했다.

그런데 최고 부자라서 그런지 기고만장 하다는 데 대한 시샘은 더 커져가는 형국이다.
마치 지난 2004년 최고 부자 자리에 오르는 순간 마치 지명 수배를 당한 느낌이었다고
한 황광위(黄光裕) 궈메이전기 회장의 말을 연상케 한다.

그는 당시 후룬(胡润) 조사에서 최고 부자 자리를 차지하자 당시 기자들이
“돈 주고 타이틀을산 게 아니냐”고 묻는다. 황광위는 하하하 웃으면서
“내가 후룬 때문에 짜증나 죽겠는데 무슨 돈을 주다니요?
후룬 순위는 지명 수배령이나 다름없지요.
후룬 순위표에 이름에 올라가는 자는 망 한다“며 펄쩍 뛴다.
결국 이후 상황을 정확히 예언 한 셈이다.

광둥성 차오저우에서 태어난 황광위는 어린 나이에 내몽고 국경 마을로 가서 물건을 팔며 돈을 번다.
20만 위안(약 3억4000만원)을 들고 베이징에 온 게 17살 때인 1986년의 일이다.
제조업체와 직거래로 싸게 파는 게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중국 전자유통 업계를 이끄는 기업으로 성장한다.
중국진출 후 미수금으로 골치를 앓던 삼성전자도 궈메이와 판매 계약을 맺은 후
안정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게 정설이다.

궈메이전기 총경리 직을 매부인 장즈밍(张志铭)에게 넘겨줄 당시까지만해도 황광위는 최고 부자에 오르리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당시 최고부자는 모치중이었다. 1999년 후룬은 그를 중국 최초의 최고 부자로 선정했고 펑룬(冯仑)이나 판스치(潘石屹) 왕공취엔(王功权)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1999년 정월부터 정치권에서 모치중의 난더(南德)그룹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기업인들은 이상 야릇한 정치 분위기를 동물적으로 직감한다.

모치중의 부하였던 펑룬은 “아무 일도 없다. 화장실에 다녀 오겠다”고 말 한 후
쏜살 같이 도망가서 이후 종적을 감춘다.
펑룬이 도망가자마자 모치중을 조사하기 위해 수사 대원들이 들이닥친다.
모의 옥살이는 지난 8월까지 이어진다.

황광위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도 ‘뭔가 잘 못 되어간다’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황광위가 평소 큰 누님으로 부르던 최 측근인 중국은행 직원이 먼저 체포된 것이다.
두 사람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식사를 같이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그녀는 황에게 많은 대출을 해줬다.

잘나가던 황광위는 바로 대출을 갚고 정샤오둥(郑少东) 공안부장 비서의 배려로 고비를 잘 넘긴다.

그런데도 반성은 커녕 황광위는 오히려 안하무인이었고 오만방자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중국 가전 소매판매 시장은 연간 10조원 규모였는데 궈메이 시장 점유율은 17%나 됐다.

회사 직원만 30만 명이고 관련 제조업체까지 합치면 100만 명을 족히 먹여 살렸다.
누구도 대마불사형인 궈메이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광위의 오만은 2003년 극에 달한다.

창업공신들을 내치고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하고 전국에 유통매장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하얼빈의 헤이텐어(黑天鹅)나 선전의 이하오자(易好家) 우한의 중상(中商)을 비롯해서
장쑤성의 진타이양(金太阳) 산시(陕西)의 펑싱(蜂星) 따중(大中) 산롄(三联)상사 등
2년 사이 전국에 쓸 만한 매장을 몽딸 구입한다.

유통 실물 비즈니스에서 자본전략과 부동산 투자로 전환한 덕분에 중국 최고 부자가 된 것이다.
2004년과 2005년 2008년 3번에 걸쳐 최고 부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2004년 황의 나이는 35세에 불과했다.
아버지 재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된 양이옌(杨惠妍)을 제외하면 중국서 가장 어린 최고 부자인 셈이다.

모치중 황광위에 이어 왕젠린까지 정치적 희생물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는 가운데서도
최고부자 경쟁은 식을 줄 모른다.

대표적인 사람이 쉬자인 (许家印) 헝다그룹 회장이다.

올해 매출 목표를 4000억 위안으로 잡고 부동산 거품을 이용해 최고부자 타이틀을 거머쥐겠다는 포부다.
내년목표는 6000억 위안이다.
가장 실적이 좋았던 2011년에는 량원건(梁稳根) 회장에 240억 위안 뒤진 5위에 그쳤지만
1위를 반드시 하겠다는 구상이다.

헝다는 올들어 1-9월 매출이 부동산 1위인 완커 보다도 앞섰다고도 발표했다.
많게는 30% 씩 아파트가격을 깎아 주는 할인 마케팅 덕분이다.
연말까지 평균 82%가격에 공급해서 매출을 달성하자고 직원들을 다그치고 있다.

매출 뿐만 아니라 헝다 그룹은 자산 총액으로도 마케팅에 열심이다.
총 자산이 9999억 위안 규모라고도 홍보하지만 알고 보면 부채 8000억 위안을 포함한 수치다.

2009년에는 홍콩에 상장하면서 일시적으로 중국 최고부자 자리에 오르자
매체를 통해 열심히 홍보하기도 했을 만큼 1등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다.
 쉬자인 회장은 헝다빙촨(恒大冰泉)이라는 계열사가 3년간 매출 3백억 위안을 넘어섰는데
부채율이 낮은 만큼 중국을 대표하는 백년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중국에서 외형에 집착하면서 백년 가는 기업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정서다.

마치 마법에 걸린 사람들처럼 최고부자 타이틀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두고
유명 기업인인 궈창창(郭广昌)은 “기업위기는 스스로 자초한다.
정부가 나서서 정리하지는 않는다”고 훈수한다.

시장 규모가 큰 중국서 1등을 하면 바로 외형상으로는 글로벌 1등이라는 환상이
중국기업들을 사지로 몰고 있다는 느낌이다. 



현문학 매일경제 영남 취재 본부장 m_hy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