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중국)=박효선 기자 rahs1351@mt.co.kr
‘짝퉁의 천국’ 중국.
가방이나 시계 등 물건뿐 아니라 최근에는 ‘짝퉁 프랜차이즈’까지
쇼핑몰 내부에 버젓이 자리 잡았다.
이들 짝퉁 프랜차이즈는 한국식 표기는 물론 메뉴 등을 똑같이 사용하면서
마치 한국에서 건너 온 ‘원조’인 듯 행세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쇼핑몰 곳곳에 입점한 짝퉁 설빙과 치르치르를 직접 찾아가봤다.
◆치르치르, 가맹점이 본사 노릇
중국 상하이 우원로에 위치한 한 쇼핑몰 지하1층.
이곳에 ‘치르치킨’이라는 간판을 내건 매장이 보인다.
매장 인테리어부터 로고·캐릭터까지 한국 브랜드 ‘치르치르’와 흡사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헷갈릴 정도다.
매장 내부에 들어서자 TV에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이 방영 중이다.
여기저기 혼자 앉은 손님이 많았다.
대부분 저녁식사를 때우러 온 듯했다.
이곳에선 맥주를 팔지만 ‘치맥’을 즐기러 온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직원에게 이곳이 한국 브랜드 치르치르가 맞냐고 물어보자
그는 “한국에서 온 브랜드가 맞다”고 완강하게 말했다.
이쯤에서 궁금해졌다.
과연 맛까지 같을까.
원조와의 맛 차이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음식을 주문했다.
기자가 시킨 메뉴는 치르치르의 대표메뉴 ‘미치르’.
가격은 56위안(9600원)으로 치르치르 미치르(1만9900원)보다는 훨씬 저렴했다.
한국 ‘치르치르’ 매장과 흡사한 ‘치르치킨’ 매장. /사진=박효선 기자 |
미치르를 주문하자 왼쪽 가슴에 ‘치르치킨’ 로고가 박힌
빨간색 셔츠를 입은 종업원이 기본찬을 가져다준다.
치르치르에서는 기본찬으로 ‘옥수수콘’과 설탕을 묻힌 ‘건빵튀김’이 나오지만
이곳에서는 ‘옥수수콘’과 ‘두부과자’가 나왔다.
옥수수콘은 지나치게 달았고 두부과자는 짠맛이 났다.
드디어 미치르가 나왔지만 예상했던 모양이 아니었다.
베이스로 깔린 크림소스 위에 놓인
커다란 케이준 순살치킨 덩어리를 기대했지만
이곳 미치르의 치킨은 위에 얹힌 크림 파스타에 묻힐 정도로 작았다.
파스타를 뒤적거려야 치킨이 보일 정도였다.
치킨은 혀가 얼얼할 만큼 짰다.
치르치킨의 크림소스는 크림이라기보다 액상에 가까웠다.
치킨이 눅눅했던 이유기도 하다.
치킨 위에 얹은 파스타에도 같은 소스를 쓰는지 싱거우면서도 뻑뻑했다.
싱거운 파스타는 치킨의 짠맛을 잡아주지 못하고 따로 놀았다.
조화롭지 못한 크림소스, 치킨, 파스타의 맛만 보고 매장을 나왔다.
이 같은 짝퉁 매장은 상하이뿐 아니라
베이징, 광조우, 우한, 석가장, 시안, 칭다오, 덕주, 선양 등
다른 지역에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치르치르를 운영하는 외식 프랜차이즈 리치푸드 관계자는
“톈진 치르치르 1호점 가맹점주가 브랜드명과 로고를 교묘하게 베껴
‘치르치킨’이라는 브랜드를 등록한 것”이라며
“브랜드 및 상표권 악용으로 인한 피해규모가 260억원에 달한다”고 토로했다.
리치푸드가 상표권을 빼앗긴 사연은 이렇다.
리치푸드는 지난 2014년 중국 톈진에 마스터프랜차이즈(MF)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그런데 톈진점주가 치르치르 디자인과 인테리어 상표권을 중국에 선등록하면서
가맹점이 본사 노릇을 하기 시작한 것.
이 가맹점은 ‘치르치킨’이라는 상표를 달고
톈진에서 15개가량의 가맹점까지 낸 것으로 조사됐다.
리치푸드는 벼슬과 꼬리 부분을 붉게 칠한 닭 일러스트를
치르치르 아이덴티티(BI) 중 하나로 내세운다.
중국 진출을 준비하던 당시 리치푸드는 치르치르 한글, 영어 상표권을 선등록했지만
간판 로고와 디자인 상표권은 등록하지 않았다.
이를 악용해 가맹점이 로고 디자인을 선등록한 뒤
‘치르치킨’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현지에서 가맹사업을 한 것이다.
치르치르 치킨이 한국 브랜드인줄 알았던 현지 가맹점주들은
어디가 본사인지 몰라 혼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리치푸드 관계자는 “톈진 1호점에 브랜드 사용권에 대한
강력한 시정조치와 계약 위반사항을 들어 추가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며
“다른 가맹점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한 중국대사관 및 코트라IP센터에도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 ‘설빙’ 매장과 흡사한 중국판 ‘설빙’ 매장. /사진=박효선 기자 |
◆설빙, 이름부터 매장·메뉴까지 판박이
중국 내 짝퉁 브랜드로 인해 피해를 본 업체는 리치푸드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인기몰이 중인 코리안 디저트 카페 ‘설빙’ 역시
이름과 메뉴를 교묘하게 베낀 ‘짝퉁 설빙’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미 중국 전역에 짝퉁 설빙이 우후죽순 생긴 상태다.
현재 중국 내 한국 설빙이 낸 매장은 8개에 불과하지만 짝퉁 설빙 매장은 100여개로 추정된다.
원조보다 더 많은 매장이 들어선 것.
설빙의 대표적인 짝퉁 브랜드로 ‘일소레 설화빙수’가 꼽힌다.
상하이 9호선 다푸차오역 주변 쇼핑몰 4층에 위치한 일소레 설빙을 찾았다.
매장부터 종업원의 옷차림, 메뉴까지 원조 설빙과 판박이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원조 설빙의 지점을 찾아온 게 아닌지 헷갈렸을 정도다.
평일이어서인지 매장은 한산했다.
이곳에서 설빙의 대표메뉴인 인절미빙수를 주문했다.
가격은 46위안(7700원)으로 원조 설빙 인절미빙수(7000원)보다 비쌌다.
5분 후 주문했던 인절미빙수가 나왔다.
일단 모양새는 비슷했다.
갈아 넣은 우유 얼음 위에 콩고물과 아몬드 조각, 작은 인절미 덩어리를 얹었다.
다만 빙수용 티스푼이 아닌 밥숟가락이 나온 점이 특이했다.
얼음가루는 우유보다 물맛에 가까웠는데
얼음을 만들 때 우유를 조금 섞어 색상만 흰색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인절미는 굳어서 딱딱했다.
속에는 묽은 팥이 들어있는데 단맛이 강했다.
먹다 보니 얼음가루에도 설탕이 들었는지 전반적으로 단맛이 지나치게 두드러졌다.
먹을수록 오히려 갈증이 났다.
설빙 측은 이처럼 유독 많이 생기는 짝퉁 매장을 제지하기 위해
중국 현지에서 강력 대응할 방침이다.
그러나 중국 상표법상 상표를 먼저 등록한 사업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강력제재가 가능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표 도용
중국에서 ‘짝퉁 프랜차이즈’가 아무런 법적 제재 없이
원조브랜드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중국의 상표법 때문이다.
중국은 먼저 상표권을 출원한 사람에게 권리를 주는 ‘선출원 우선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를 악용한 상표브로커가 국내업체의 상표권을 가로채고 있는 것.
국내업체가 중국에 공식 진출하기도 전에 중국 현지에 상표를 출원하면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상품이름이나 디자인을 베끼는 것을 넘어
아예 상표권을 먼저 등록해 한국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가로막는 점이다.
중국의 브랜드 도용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프랜차이즈의 몫으로 돌아온다.
일각에서는 이 짝퉁 브랜드로 인해 오히려 한류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4년 11월부터 지난 5월까지
해외에서 한국기업 상표가 무단 선점·도용된 피해는 1019건에 달한다.
이 중 1005건이 중국에서 발생했다.
사업군별로 프랜차이즈(42.6%)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어 식품(17.5%), 의류(13.2%), 화장품(11.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짝퉁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이들 대부분이
조선족과 중국교포 등이라는 점도 갈등을 고조시킨다.
이들은 양국 사정에 밝아 국내 유행 브랜드를 중국서 먼저 론칭하고
문제가 생겨도 ‘관시’를 앞세워 국내 프랜차이즈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특허청이 지난 2014년부터 ‘K브랜드 보호 컨설팅’ 프로그램으로 국내기업을 지원 중이지만
이는 분쟁예방을 위한 사전 컨설팅에 그치는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관련업계는 짝퉁에 대한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고 호소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상표권 관련 분쟁 경험이 있고
산하에 법무팀을 둔 대기업이 아닌 소규모 점포의 경우
이런 문제에 약할 수밖에 없다”며
“창업단계부터 해외진출을 고려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송이라는 절차를 통해 특허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지만
절차나 비용 등의 부담이 크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국 브랜드의 상표권 보호와 분쟁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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