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에서 온 편지..
국경절 연휴 편안하게 즐기고 계십니까?
한국은 태풍에 폭우에 난리도 아닙니다만
청도는 다행히 보슬비가 내리는 거 말고는 전형적인 가을날씨입니다.
쌀쌀한 날씨에 단지내 산책길에도 낙엽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날이면 따뜻한 어묵 국물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어렸을때는 오뎅 국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옛 생각이 나서, 마트에가서 포장된 어묵을 사 왔습니다.
생각을 더듬어 무우를 굵직하게 썰어넣고, 굵은 멸치에 다시마도 집어 넣고..
푹 끓이니 비스무리한 향내가 납니다.
간장에 찍어 먹었는데, 이상하게 어릴때 그 맛이 안 납니다.
두어개 먹다가 젓가락을 놓았습니다.국물도 영 아닙니다.
'맛만 좋구만,,,' 집사람은 거듭 거듭 칭찬을 합니다만..
이 말 안 믿습니다. 다음에 또 해 달라는 립서비스로 들려서...
초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우루루 몰려가는 곳이 있습니다.
교문 앞 가게 입구에는 큰 솥가마에 오뎅을 팔았습니다.
대여섯명이 몰려가서,,
"오뎅 100원어치만 주세요"
그리고는 돌아가며 국자로 오뎅국물을 한없이 퍼 마십니다.
따뜻하고 얼마나 맛있던지...
나중에 가게집 아주머니는 우리들이 몰려가면...
일단 국자부터 챙깁니다. 돌아가며 딱 한 국자씩만.ㅠㅠ
추억의 맛이란 것이 있습니다.
헐벗고 굶주렸던 그 시절 먹었던 음식은 진짜 맛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좋은 재료에 양념에 더 맛있게 만들어도
절대 그때 그 맛을 그대로 재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같은 날,산책길에 이어폰을 꼿고 'Don`t Forget to Remember Me'를 들어도
학창시절 쾌쾌한 다방에서 삼삼오오 모여 레포트 작성하던 그 분위기를
그대로 살릴수는 없는 것입니다.
단지 그때 그 맛이 그리울 뿐입니다.
이것을 추억의 맛이라고 하겠습니다.
농촌에서는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통상 지난 해 농사지었던 쌀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3월부터 보리쌀이 나오는 5월까지입니다.
이 기간에는 쌀밥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그때는 값싼 보리밥만 먹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밭 일 나가시기 전에
정지(부엌) 천장에 이따만한 소쿠리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 안에는 아시게(설익게) 삶은 보리밥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말라비틀어져 동글동글 탱탱해진 보리밥을 한 움큼 덜어서
다시 한번 솥에다 푹 찝니다. 두 번 삶는 셈이지요.
그리고는 된장에 팍팍 비벼 떡 같이 만들면 그나마 쫀득한게 제 맛이 납니다.
된장대신 몽고간장 한 숱갈 넣으면 환상적입니다.
혹 찬장을 뒤지다가 남아있는 버터가 있으면 이건 그냥 졸도합니다.
쌀이 남아돌아가는 지금은 절대 알수없는 맛입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였습니다.
점심시간에 부서원들이 단체로 특식을 먹으러
회사와는 멀리 떨어진 무슨 가든에 간다고 합니다.
아무생각 없이 따라갔다가 기겁을 했습니다.
메뉴가 '보리밥 비빔밥'...
세상에 그 지겹던 보리밥을 특식으로 생각하다니,
모두들 나와 같은 보리고개 추억을 가지고 계시는갑따.했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그냥 맛좋고 건강에 좋다고 요즘 뜨는 메뉴라고 합니다.
몇 숱갈 들다가 입이 까칠해서 슬그머니 수저를 놓았습니다.
한번은 또 특식 먹으러 가자 합니다.
이번에는 수제비 전문점입니다. 미치겠습디다.
그후로 지금까지 저는 보리밥과 수제비는 잘 안 먹습니다.
약 10년 전부터 칭다오에 생긴 중국 맛집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여 '배이따황(北大荒).
벌써 체인점이 몇개 생겼을 정도로 중국사람들에겐 인기가 높습니다.
배이따황은 중국 동북 삼강지역(흑룡강.오수리강.송화강이 만나는 지역)에 위치한
약 5천만평 정도의 황무지입니다.
중국 3대 척박한 지역 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살기 힘든 동네입니다.
당시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힘들여 개간하여 심은 식물로 연명을 했는데
그 구황음식이 지금의 중국인들에겐 추억의(역사의) 음식이었나 봅니다.
저도 가끔 찾아 종업원에게 배이따황의 원조 음식이 무엇이냐 물으면,
잘 모르는지 건성으로 메뉴판의 모든 것이 그것이라고 합니다.
메뉴는 다른 중국식당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오히려 채소가 풍부한 산동요리에 가깝습니다.
단지 주방장의 요리솜씨가 좀 특별한 듯 보입니다.
중국사람들에게 배이따황이란 이름은 역사적 기념품 정도로만 여기고
음식맛은 지금의 맛으로 잘 만들엇다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닌듯 보입니다.
즉 그들에겐 추억의 맛 보다는 역사적 브랜드에 이끌렸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하튼...
어묵탕.추어탕은 지금까지도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맛있는 음식입니다.
사실. 추억의 맛이란 오감의 맛은 아닐것입니다.
어릴때 그 퉁퉁 불어터진 오뎅을 그대로 갖다 준데도 지금은 그 맛을 못 느낄겁니다.
제 입맛이 이미 변했기 때문입니다.
추억의 맛이란 정확히 말하면 아스라한 그리움이 배인 정신적 감성의 맛이겠습니다.
추억의 맛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맛있고 행복했던 맛. 또 하나는 맛없고 고통스러웠던 맛.
제가 좋아하는 추억의 맛은 그때 참 맛있고 행복했던
그런 음식.그런 음악.그런 풍경.놀이들입니다.
- 스프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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