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을 준비하며/중국무역·사업 경험기

저가 전략의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지혜

주님의 착한 종 2016. 9. 21. 09:06



미국 감옥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물건은
중국산 컵라면이라는 글이 중국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쇼생크의 탈출’이라는 영화에서는 미국 감옥의 화폐가 담배로 묘사되는데
이제 중국산 라면으로 대체된 사실에 흥미를 느낄 만도 하다.

그런데 정작 중국에서는 요즘 라면의 저주라는 말이 유행이다.
소비자의 입맛이 변한건지 아니면 유통망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판매나 순익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중국에서 한 때 98%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했던 캉스푸(康师傅)가 발표한 올 상반기 실적을 보면
라면 매출은 15억 달러(1조4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했다.
순익은 6968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64%나 줄었다.
연속 4년 째 내리막길을 달린 끝에 역대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내수 침체의 원인이 있어 보이지만 저가 상품의 대명사인 라면은 오히려 불경기에 더 팔린다.
그렇다면 달라진 중국 소비자의 입맛과 유통망 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에 라면이 처음 보급된 시기는 1986년부터다.
개혁 개방의 물결에 힘입어 캉스푸와 통이(统一) 등 대만 기업과 홍콩 기업들이 본격 진출하던 시기다.

당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제품은 1991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캉스푸의 ‘홍사오 소고기라면’이다.
통이 라면은 중국 남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새우라면 등 해산물 맛으로 접근한 데 반해
캉스푸는 중국인이 맛보지 못했던 소고기 맛을 낸 게 대박의 비결이다.

이후 홍콩 한국 일본의 기업들도 소고기 라면으로 도전장을 냈지만
한 번 맛 들여진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실패한다.
캉스푸의 중국 라면 신화는 그 때부터 25여 년 간 계속된다.
최근 실적이 부진하지만 중국 라면 시장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캉스푸의 몫이다.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중국 내수시장에서 장기간 권좌를 지킨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코카콜라나 맥도널드 등 세계적인 식품업체도 못 이룬 성과이기 때문이다.

중국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인이라면 어린 시절 한 번쯤 먹어봤을 정도로 유명했던 
 ‘광밍 아이스크림’이니 ‘다바이투 유가사탕’ ‘홍바오쥐즈 사이다’ ‘시러 요구르트’ 등 은
이미 시장에서 퇴출 된지 오래다.



까다로운 중국인의 입맛과 세대별로 달라지는 소비 습관을 사로잡은 캉스푸의 비결 중
첫 손가락으로 꼽는 것은 다름 아닌 유통망 장악이다.

중국에서 판매망은 절대적이다.
50대 60대 아줌마들에게 “왜 이 상품을 샀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슈퍼나 마트에서 제일 잘나가는 상품이라서 구매했노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브랜드는 대형 마트나 슈퍼마켓 등 판매점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륙의 사정을 잘 알았던 대만 캉스푸는 여기에 주목했고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마련한다.
대형 마트에서부터 슈퍼마켓까지 넓은 판매망을 구축한 캉스푸는
소비자들의 성향을 봐가며 세밀하게 대응해나간다.
지역별로 500km단위로 생산기지도 만든다.
운송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5% 이내로 하고 이와 동시에 상품의 신선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여기에 대형 광고 전략을 가미한다.

특히 대형 기업이 적은 라면시장의 특성상 관리나 비용 절감 면에서
중국 기업들을 압도해 나간 것이다.
다른 업체들은 그냥 캉스푸를 따라가는 전략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중국 라면 업계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초창기 2위업체인 통이는 캉스푸와의 격차를 축소하기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친다.
1998년의 일이다.
한편으로는 가격을 내리면서 대규모 광고전도 펼친다.
그런데 2003년이 되자 국제 팜유가격이 크게 올랐다. 원가가 올라 판매 가격을 올려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캉스푸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업체에 대한 반격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라면 업계의 특성상 영업력이 좋고 탄탄한 기업일수록 저가 전략을 펼치기 마련이다.
비용 부담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게 큰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절치부심하던 통이는 10년 연구 끝에 오래된 신김치라는 뜻을 가진 ‘라오탄솬차이’라는 라면을 내놓는다.
이 라면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캉스푸와의 격차를 확 줄이는 데 성공한다.
캉스푸는 이때 보조금 전략을 가지고 나온다. 우세한 판매방을 활용해 경쟁자를 압박하는 전략인 셈이다.

라면업체간 치열한 경쟁으로 이익률은 점점 떨어진다.
1986년 중국 라면 평균 판매가는 0.35위안(1위안은 약 170원)이었다.
1991년 인기를 끈 홍사오 소고기 라면은 1.5위안 이었는데 당시 1인당 가처분 소득은 100위안 정도였다.
최근에는 가처분 소득이 2500위안으로 25배 늘었다.
그런데 홍사오 소고기라면 가격은 4위안이면 살 수 있다.

그동안 물가나 인건비 부동산 가격이나 원료 가격은 폭등했는데도 라면 가격은 여전히 싼 이유다.
고급 제품을 만들어도 상품가격 결정권은 판매망을 장악한 기업에 달려 있다.

중국의 라면시장이 저가 경쟁의 대명사가 된 배경이다.
저가 시장에 머무르다보니 최근에는 판매액도 확 줄었다.
개인 취향 변화로 저가 전성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신호다.

일단 젊은 소비자들은 라면도 인터넷으로 구입한다.
특히 일본에서 비싼 라면을 구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라면 한 개에 10위안이 넘지만 새로운 맛을 찾고 있는 것이다.

유통망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상품을 중국 1선 2선 3선도시의 슈퍼마켓에 내다파는 판매망을 갖추기만 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국소비자의 특성상 실물을 보고 사거나 광고에 의존하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이 보급돼서 많은 사람이 인터넷으로 쇼핑을 즐긴다.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상품 트랜드를 빨리 습득할 수밖에 없다.
유통망을 장악한 업체의 설 땅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소리다.

과거에는 유통망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판매망이 있어도 품질이 따라가지 못하면 소용없다.

농민공은 줄어들고 신세대가 시장을 주도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뭐든 생산하면 팔리던 시대에서 재고를 중시하는 생산과잉시대를 맞고 있고
최종적으로는 소비자가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배고픔을 경험하지 못한 중국 신세대들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개성소비 경향도 뚜렷하다.

특히 라면으로 대표되는 저가 상품의 설 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가격은 물론 다양한 품질 차이를 인정한다. 라면은 물론이고
중국 백주업계의 루이비통이라고 불리는 마오타이(茅台)주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이 전통 유통망을 대체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인터넷 시대에는 품질과 다양성을 추구해야하고
소비 주력그룹인 80년대 출생자와 90년 대 생의 차이도 알아야한다.
 
이들의 상반기 인터넷 매출액이 25억 위안을 돌파했다.
2015년 전체 매출액을 넘어선 수치다.

따라서 중국에 불고 있는 라면의 저주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결론은 품질과 소비자 경험을 우선시하는 마케팅전략을 세우는 기업이 승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현문학 매일경제 영남 취재 본부장 m_hy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