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을 준비하며/중국무역·사업 경험기

농촌서 옥수수 장사로 큰 돈 번 상인, 결국은

주님의 착한 종 2016. 7. 27. 08:05



얼마 전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는 희한한 뉴스가 하나 실렸다.

내몽고(内蒙古)자치구에 사는 한 남자가 당국의 허가 없이 옥수수를 농촌에서 구매해서 내다 팔아

 21만 위안(3570만원)의 이익을 챙겼다가 붙잡혔다는 뉴스다.

농민들 제보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이 남자는 결국 법원에서 허가 없이 식량을 구매 판매한 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 벌금 2만 위안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보리 옥수수 등 식량은 사회 안정을 위한 기초자원이다.

따라서 수매와 유통 판매를 할 때 국가에서 엄격한 규정을 통해 관리를 한다.

기초 식량을 수매하거나 영농 자금을 취급하거나 도매 경영 행위는

반드시 유관 부문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뉴스가 나가자 도대체 계획 경제시대에나 있음직한 규정이 아직도 남아 있나는 반응들이다.

중국에서 1978년 이후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진 개혁 개방 성과를 생각해 보면

식량 유통 체계도 상당한 개혁이 이루어졌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중국 식량 유통 분야는 식량안보니 공공이익이니 교역비용이니 사회위험이니 농민보호 정책이니

뭐니 하면서 넘치면 풀고 부족하면 죄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매년 수 천 억 위안 규모의 재정 적자를 해결하려면 식량유통구조를 개혁해야한다고 외치면서도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형국인 셈이다.


지난 2004년 중국 국무원에서 식량 시장주의를 채택한 양식유통조례를 발표했지만

여전히 애매모호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아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중국의 식량비축제도는 역사적으로도 뿌리가 깊다.

()나라 때 부터 중앙에 농업과 농지를 담당하는 부서를 두었고

각 지역에는 상평창(常平仓)이라는 비축시설을 운영할 정도였다.

이른바 면화나 돼지고기 황금 동전 화폐 등을 중앙에서 비축해 놓고 부족하면 풀고

남으면 사들이면서 시장 안정화를 꾀하는 정책의 일환이다.


이 중에서도 특수상품인 식량은 생존의 필수품인데다 자연 조건의 영향도 가장 많이 받는다.

따라서 개혁 개방 이전에는 전략 식량 비축정책은 중앙군사위원회에서 하고

자연 재해 용 식량 비축은 국무원에서 맡아서 해 왔다.


1990년대에는 식량 전문 비축제도도 만든다.

인구가 많고 자연재해도 빈번해서 전문적으로 관리할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에서다.

이 때 만들어진 게 국가 양식비축국 이란 곳이다.

그런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식량비축을 각각 담당하도록 이원화된 구조로 만든 게 화근이 된다.

이해 당사자들이 많아질수록 운영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과 지방의 관계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 중 하나다.

중앙 정부차원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 종 칙령을 통해 시장 질서를 바로잡으려 한다.

그러나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중앙의 지시보다는 지방의 이익이 우선이다.

특히 지방정부의 식량이 부족하면 중앙에서 내려오는 어떤 정책도 효과를 보기 힘들다.


1995년 이후 각 성의 성장 책임 아래 쌀가마니를 관리하게 한 미따이즈(米袋子,쌀가마니)’ 정책이 대표적이다.

중앙정부는 각 성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성 정부에서 식량을 관리하도록 한다.

중앙이 관여하지 않고 농업 생산을 장려하고 농민을 보호하려는 정책인데 결과는 식량 위기라는 씨앗을 뿌린다.


중앙에서는 각 성장에게 책임을 지라고 했는데 성장은 그대로 작 시장이나 군수에게 책임을 지운다.

시장 책임제까지는 좋은데 시장은 다시 전문책임관을 두고 관리를 맡기는 식으로 권한이 이양되다보니

국가 식량을 시군구에서 관리하는 상황으로 변질 된 것이다.“

각 성장 책임 아래 시장과 군수가 나눠서 책임진다는 의미로 시장 군수 분급 책임제라는 말이 생겨나더니

결국 책임이 분산된 지역 독립 형 식량 제도를 만든 것이다.


말로는 전국적으로 식량시장을 통일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 이름아래

중앙비축식량과 지방 비축 식량을 따로 관리하다보니 통제주체인 중앙과 이익주체인 지방간 충돌은 당연지사다.


만약 식량공급이 부족하면 지방정부는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서 양식을 풀지 않는다.

우선 자기 지역 내 식량부터 해결해야하는 데다 재고를 쌓아 놓으려고 중앙 정부 분 식량까지 추가로 확보하려한다.

반대로 공급이 수요보다 더 늘어나면 지방정부는 보조금 지급을 줄이기 위해 비축을 늘리지 않으려한다.

결국 어떤 경우건 식량 비축에 따른 부담은 모두 중앙정부 몫이다.

이 처럼 중앙정부와 지방간 거꾸로 가는 식량 정책은 1990년대 내내 반복된다.

중앙과 지방 간 알력은 과거 황제들도 풀기 어려운 골칫거리였다.


청나라 때 옹정(雍正) 황제는 즉위 첫 해에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자 교서를 발표한다.

각 지방 총독 등 책임자들이 지역 곡식을 반출 못하게 해서 돈을 버는 등의 지역 이기주의를 버리게 하려는 의도에서다.

옹정제는 당시 저장성이나 강남 수저우 등 지역은 인구가 많고 땅은 좁다.

이들은 식량이 풍부한 후난이나 광저우 장시 지역을 부러워한다.

흉작에 소상인들 못 다니게 하면 추수철 쌀 가격이 껑 충 뛰게 되니 유통질서를 세우라고 한다.

흉년 든 곳의 쌀 장사꾼이 지역 밖으로 나가서 쌀을 못 사 오도록 유통을 막지 않으면

모든 백성이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정은 비슷하다. 식량은 중앙의 식량비축기구인 식량총공사가 수매하도록 돼 있는데

지방 정부 차원에서 이 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배경에는

바로 해당 지역 식량을 타 지역으로 내가는 걸 막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

바로 중앙정부의 식량 정책을 이용해서 지방의 실익을 챙기고 있는 셈이다.


중앙과 지방 문제에 이어 생산지와 소비지의 불균형 문제도 골칫거리다.

식량은 부족할 때 생기는 사회적 비용이 남을 때 생기는 비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중국에서는 기근이 들면 국가가 나서서 식량구매와 판매 업무를 맡는다.

전통적으로 위험과 손실을 모두 정부에서 부담해온 것이다.

중앙에서 식량을 비축하면서 농민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지방 각 성별로 분담금 낼 것을 종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빈곤지역인 농업지역에 대한 지원금은 중앙 재정 몫이다.


또 식량 비축 기지도 불균형이 심한 편이다.

1998년 이후 식량 비축에 대한 수직 관리를 강화하면서 전국에 비축창고를 조정한다.

식량이 남아도는 상황이어서 식량 비축에 따른 비용을 줄이려고 식량 생산지역에 비축기지를 만들었다.

식량은 서부에서 많이 생산되는데 소비도시는 동부에 몰려있다 보니 수송비용이 말썽이다.


식량 공기업과 국가의 관계도 풀어야할 숙제처럼 보인다.

개혁개방 30년 간 가장 발전이 더딘 분야도 식량 공기업들이다. 업종이 특수한데다

관리 감독 당국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개혁을 단행하기도 쉽지 않다.

한마디로 자신이 자기를 감독하는 상황인 것이다.


식량 분야 공기업은 경영은 엉망인데 국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국가와 농가나 농민 사이에 길목을 차지한 공기업들은 위치우세를 점하며 호의호식 하는 꼴이다.


급기야 식량 보호 가격을 완화하고 동시에 공기업에는 가격에 따른 판매를 종용하는 정책이 1998년부터 시행된다.

농민의 적극적성을 유발하고 식량기업의 손실을 없애기 위한 취지였다.

그런데 식량공급이 넘치는 상황에서 기업은 염가에 구매할 수 없는 일이고 결국 중앙정부의 보조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낡은 곡식도 문제다. 상식적으로 새 곡식이 들어오면 보관비용이 많은 낡은 곡식을 방출해야한다.

그런데 중국 공기업들은 보조금을 받기 위해 낡은 곡식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식량 품질은 떨어지고 중앙정부의 재정 적자는 커지는 원인이다.


특히 식량공기업과 농업발전은행의 관계는 흥한 것도 소하 때문이고 망한 것도 소하 때문이다

(成也萧何 败也萧何)’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1994년 농업은행과 공상은행에서 2592 억 위안의 정책성 자금을 지원받아 설립된 농업발전은행은

국가개발은행과 중국 수출입 은행 등과 함께 정책성 은행으로 출범한다.

농업 정책성 업무를 주로 처리하면서 개발성 업무를 했는데 양식 구매기금을 개발로 전용하면서 부실이 발생한다.


1998년 국무원은 개발 성 업무를 다시 농업은행으로 환원하고 농업발전은행은 면화 양식 기름 등

수매 자금만 운영토록 했다.

그러자 마치 계획경제 시대처럼 각종 규정과 조례 통지 등을 새로 만드는 등 규제일변도로 나간다.

대출해주면서도 대출 목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가격을 정하는 데도 관여할 정도라는 것이다.

부실이 쌓이면 전업 하거나 문 닫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원성도 들린다.

중국의 식량생산에는 문제없다.

그런데 구매 저장 유통 등 정책에는 문제가 많다고 한 미국 경제학자 게일 요한슨의 말과 함께

시장에 답이 있다는 원칙을 떠올리게 만든다.



현문학 매일경제 영남 취재 본부장 m_hy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