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수교 이후 매년 10%대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대중국 수출이 급속한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 대중국 수출의 급감은 지난해부터 불황형 흑자로 나타났는데, 올 2분기부터는 그 불황형 흑자마저 그 기세가 꺾이고 있다.
이제 25년째 제조업의 중국수출로 발전하던 한국 경제의 흐름은 끝났다. 그리고 이제 이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중 관계에 집중하던 기자는 최근에 감지되는 주요한 징후들을 바탕으로 대중국 교류의 시사점을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이 기사가 3회 연재의 마지막 글이다. - 기자 말
지난 9일 합정동에 위치한 한 인문학 카페에서 '한중출판연구회'의 발족 준비모임이 있었다. 이 행사에서는 한중간 인문교류에 큰 역할을 하는 정인갑 교수가 강연을 했다. 올해 칠순인 정 교수는 베이징대 중문과 출신으로 중국의 대표적인 인문출판사인 중화서국에서 편집책임자와 칭화대 객원교수를 지낸 중국 동포다.
이날 정 교수 강의의 핵심은 한국과 중국의 차이였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스스로는 서로를 잘 안다고 느끼는 한중간의 가깝고도 먼 차이를 차례대로 설명했다. 도무지 사회주의가 될 수 없는 중국인들의 천성과 내부 문제를 외부를 통해 풀어내는 중국인들의 정치성 등을 설명했다. 한국과 중국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가진 그의 강의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과 중국 사람들의 차이였다.
1992년 수교 이후 한중간은 수많은 인적, 물적 교류가 오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을 '가깝고도 먼 나라'로 인식하지 않는다. 같은 동양 문화권이고, 유교문화의 영향 등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인갑 교수가 파악하듯 한국과 중국은 전혀 가깝지 않다는 게 중국을 오랫동안 만난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가깝게 느꼈다면 그것은 수교 이후 두 나라의 이해와 실질적인 협력 부분이 톱니바퀴처럼 아귀가 맞으면서 잘 돌아간다고 느꼈을 뿐이다. 두 나라 사람들의 기본 정서는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불리는 한일 관계 못지 않게 멀다. 그리고 최근 들어 두 나라간 위상이 변화하면서 그런 차이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제조업 지고, 문화 뜨다
▲ 한중 교류의 패러다임 변화 2000년을 전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중국에 진출했지만 2010년 이후에는 이 흐름이 약세를 타고 있으며, 향후 강소기업과 협동조합 등 알찬 스토리가 있는 이들이 중국과 비즈니스가 가능할 전망이다. | |
ⓒ 조창완 |
여러 곡절 끝에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것은 1992년 8월 24일이니 머지않아 한중 수교 24년을 맞는다. 중국의 문이 열리자 가정 먼저 저렴한 인건비와 시장 등을 바라본 단순가공업 등이 중국에 관심을 가졌다. 부산이나 익산 등지에서 오르는 인건비에 힘들어하던 봉제나 보석가공 업체들이 하나둘씩 산둥반도나 랴오닝 등으로 떠났다. 중국 유학생들도 급증해 베이징이나 상하이, 톈진 등 대도시에는 한국 학생들 러시가 일었다.
중국 시장의 가능성이 보이고, 새로운 시장 개척이 필요하던 대기업들도 다양한 컨설팅과 연구를 거친 후 90년대 중후반부터 중국 진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국 대기업의 제조업 공장 거점이 된 곳은 톈진이다.
베이징과 가깝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중간 항공노선이 가장 먼저 생긴 톈진에는 삼성전기를 비롯해 삼성SDI, 현대전자, LG전자, LG화학 등 공장이 들어섰다. 중국 내수도 있지만 수출 중심의 선진 제조업들이 중심이었고, 그밖에도 따리엔, 옌타이 등도 한국 기업 진출 붐이 있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계를 느겼던 대기업들은 중국 공장을 지렛대 삼아 기업의 내실을 도모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5년을 정점으로 중국 내 한국기업의 경쟁력은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중국 굴삭기 시장을 장악했던 두산인프라코어(원 대우중공업)나 현대중공업이 이 시기를 정점으로 퇴조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초반기 전자레인지나 에어컨, 냉장고에서 중국 시장을 장악했던 국내 백색가전쪽 대기업의 위기가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기술 추격이 쉬웠던 분야에서 하이얼, 하이신, 창홍 같은 중국기업들의 추격이 시작됐고, 상대적으로 유지비가 높았던 한국기업들은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국 대기업의 제조공장 역할을 했던 톈진의 한국인은 한때 10만명을 육박했지만 지금은 2~3만명 수준이다.
이런 상황은 2015년 전후로 고착화되면서 이제 중국에 기존 대기업 중심 진출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안정성을 담보로 한 한국 특색의 무역이나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으로의 진출 폭은 넓어질 전망이다. 98년 '사랑이 뭐길래'를 시작으로 '목욕탕집 남자들',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순으로 지속되온 한류 드라마는 물론이고 출판, 영화, 예능, 게임 등 콘텐츠 분야의 가능성도 여전하다.
한류로 인한 뷰티산업이나 성형 미용분야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이 주도한 중국 진출이 마케팅, 문화창의, 금융 등 특성화된 고급 인재를 필요로 하는 시대로 변모했다.
물론 이런 분야로 이룩되는 경제적 가치는 대기업을 통해 이루어지던 수치에 비해 휠씬 작은 것이 사실이다. 대기업 수익이 일반인들 혜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지 않았지만 최근 변화로 인해 얻어지는 수익은 개개인 등에게도 돌아가는 부분이 많다. 결국 한국의 대중국 교류의 패러다임이 최근 몇 년 사이 완전히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관광, 크루즈 등 전략산업 발굴해야
▲ 한국을 찾는 중국과 일본 관광객의 변화 2013년 역전이후 현재는 중국 관광객이 일본의 3배에 이른다 | |
ⓒ 조창완 |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떤 부분에서 미래가치를 부여할까. 우선 세계 양대 헤게모니 국가이자 소비대국인 중국이 비행기로 1시간에서 4시간 거리에 있다는 것은 한국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중국 관광객의 증가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 관광객은 2010년 187만명 수준이었다. 2013년 432만명으로 일본을 추월했다. 2014년은 612만명을 기록했고, 메르스 사태가 있었던 2015년에도 598만명이 한국을 찾아 일본(183만명)을 세배차로 따돌리는 기염을 토했다. 메르스 사태가 없었다면 1000만명도 가능했던 중국 관광객의 증가세는 한해 4000만명이 방문하는 홍콩과 비견하면 정점이 어딘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중국 인센티브 관광단체의 치맥 파티나 삼계탕 파티로 주목을 끌기도 하지만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의 상당수가 개별여행이라는 점도 한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요소다. 개별 관광객은 단체 관광객과 달리 시장, 요식업, 쇼핑, 운수업 등에 다양한 긍정 작용을 한다.
또 관광객의 증가는 제주도에 투자한 녹지그룹의 경우처럼 관광시설 투자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위기의 제조업을 대체할 청정산업이 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중국을 상대로 한 한국의 관광 전략은 허점이 많다.
▲ 톈진 동강크루즈 항 중국 텐진 빈해신구 동강크루즈항은 동양 최대의 크루즈 부두를 지어 하루 5만명 접객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반면에 한국은 이런 전략이 부재하다 | |
ⓒ 조창완 |
최근 중국에서 가장 크게 확장되는 관광상품은 크루즈다. 따리엔, 톈진, 칭다오, 상하이, 샤먼, 선전, 하이난 등이 거점 크루즈항으로 육성하면서 크루즈를 통한 해외여행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중국 관광객이 해외로 나갈 수 있지만, 해외의 고급 크루즈선들이 속속 이 항구에 입항하면서 중국 관광산업의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곳 크루즈 거점항들은 20만톤급 이상 배가 정박할 수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의 대표 항구인 인천이나 부산항의 일반 접안 가능선박은 12만톤급이나 15만톤 수준으로 해외 초대형 크루즈의 정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상대적으로 최고 수심 35미터 가량인 새만금신항은 25만톤급 크루즈 전용항 건설이 가능하지만 현재는 크루즈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새만금에 크루즈전용항이 만들어질 경우 해외 관광객이 적은 충청지역과 호남지역에 중요한 관광객 유입요소지만, 새만금개발청이나 전라북도 등은 해수부가 주관하는 크루즈협의체에 조차 참여하지 않는 상황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중국 관련 미래를 가늠할 때 가장 어렵게 느끼는 것은 실무적인 능력을 갖춘 중국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수교 이전에 대만을 주로 찾았던 우리나라 중국 유학생들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0년을 전후해서는 중국 전역에 10만명 정도가 공부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육성된 중국 전문가들이 수십만 명이지만 이들은 실제로 중국 관련 업무를 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대기업에서 파견된 이들은 현지에서 속성으로 중국어를 익히는 방식을 주로 선호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중국어를 익힌 이들은 물론이고, 중국 유학생 출신 역시 중국 비즈니스나 소통에서는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런 문제가 대두되면서 관심을 가진 이들 사이에 '10만 중국 전문가 양성' 같은 이야기가 2000년대 들어서 나왔다.
산업부 출신으로 무역협회 부회장과 코트라 사장을 지낸 오영호 공학한림원 회장 등이 실제로 이런 작업을 추진했지만 자리 이동 등으로 큰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중장기적으로 중국을 상대한 중국 전문가들은 언어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문화나 본성, 각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 등이 있어야 하지만 일반 교육과정에서는 이런 전문가가 양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5일부터 이틀간 중국 난창(南昌)에서 진행된 한중도서전에는 10여명의 전문 통역 요원이 배치됐다. 이들은 엄격한 선발과정을 걸쳐서 선발된 중국인 유학생들이었다.
이 행사 실무를 추진한 중소출판협회 이건웅 전략개발단장은 "몇번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중국어가 가능한 한국인들보다는, 한국어는 조금 서툴러도 중국을 잘 아는 중국 유학생들이 중국인들을 상대로 우리 콘텐츠를 소개하는 게 효과적이었다"며, 현재 상황을 말했다.
▲ 2006년 12월 문화콘텐츠진흥원 북경사무소를 찾은 한국 관계자들에게 중국 문화 산업을 설명하는 권기영 교수 | |
ⓒ 조창완 |
학생들 뿐만 아니다. 전문가 그룹 역시 비효율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기자가 아는 한국내 최고의 중국 콘텐츠 전문가는 현재 인천대에서 강의하는 권기영 교수다. 권 교수는 2001년부터 10년간 문화콘텐츠진흥원 북경사무소장으로 재직하면서 한중간 문화 콘텐츠 교류의 전반을 조율하고, 실무를 추진한 책임자였다.
2005년 출간된 황의봉 전 동아일보 중국특파원이 쓴 '중국통'에서 문화 콘텐츠 전문가로 소개될 정도였다. 그런데 권 교수는 베이징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안전한 계약직 전문 공무원보다는 대학 교수가 휠씬 안전하기 때문에 개인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한중 문화콘텐츠 교류의 실체를 파악하고 조율해 줄 수 있는 최고급 실무자가 사라진 것이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아빠 어디가'나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은 각기 1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지만 한국이 얻는 수익은 극히 일부다.
포맷 판매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연출하고, 대본을 쓰고, 연기한 '태양의 후예'는 중국에서 이에 못지 않은 매출을 만들고 있지만 그 열매는 이 드라마에 530억원을 투자한 중국 화처미디어가 가져가고 있다.
현장형 중국 전문가가 키워질 수 없는 것은 정부는 물론이고, 지자체 등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외국 투자유치를 위해 만든 경제자유구역의 경우 현재 중국 전문가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곳이다.
하지만 현재 8개 경제자유구역청에서 근무하는 중국 전문가는 10여명 수준이다. 서기관급은 찾아보기 힘들고, 사무관급도 4명 안팎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자체가 주관하는 경제자유구역들은 모두 중국 투자유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대중국 기획을 하고, 실무를 추진할 수 있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곳곳에서 문제를 발생시킨다. 2004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던 상하이자동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두 주체간에 갈등을 잘 완화시킬 협상가만 있었다면 '먹튀'라는 오명을 듣고, 철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3년 부산 해운대 엘시티 프로젝트에 투자를 결정했다가 결국 무산된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C)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엘시티측에 중국의 입장과 상황을 잘 이해하고, 중재해줄 중국 전문가가 있었다면 중국측이 이 사업에서 철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중국 측의 철수 후에 분양 등이 잘 진행되고 있지만 중국의 대표적인 국영 건축기업이 부산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으로 얻는 다양한 가치는 잃었다.
글의 시작에서 소개한 정인갑 교수는 중국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국 자체의 크기를 간과하지 말라고 말했다. 1901년부터 나온 한자무용론이 100년 넘는 토론을 거치면서 키보드 입력 시스템에서 가장 편리한 문자로 인정받아 논란이 종식된 것을 예로 들었다. 쑨원 시대에 주장됐다가 수리공정을 잘 아는 장쩌민 시대에 구체화된 산샤댐 등 긴 토론을 통해 때를 만나는 중국인들의 습성을 모르고서는 중국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상 드물게 중국 앞에서 당당했던 지난 이십여년은 분명 의미있는 시간이지만 기억을 그곳에만 두고 있다면 한국은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고, 이미 닥친 경제위기조차 피해가지 못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의 한 성 규모다
규모에서 중국은 이제 한국을 압도한다. 한국과 마주하고 있는 산동성은 중국 31개의 성시중 하나지만 2014년 호적조사에서 인구가 9747만1000명으로 한국의 두배에 가깝고, 2015년 GDP는 6조3002억3000만위안(기준율 달러 9555억 달러)으로 1조 3212억달러인 한국의 72% 가량이다.
산동성의 최근 경제성장률이 8% 정도인 것과 한국의 성장 정체를 감안하면, 산동성의 규모가 한국을 앞지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산동성을 보는 시각은 한국의 한 광역지자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개혁개방 이후 한국은 중국의 경제발전에 다양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생각속에 한국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치던 속국 정도다.
중요한 것은 향후 한중관계가 어떤 모습을 띨 수 있는건가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수천년간 중국의 지배에 들어가지 않고 독립적인 언어와 국가를 유지한 것은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때문에 중국 속에서 중국의 힘을 활용해 독립운동을 했던 백범 김구나 단재 신채호 등도 한국은 중국과 동화되지 말고, 한국만의 자존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20여년간 한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중국은 이제 원래 지위를 되찾아 세계 헤게모니를 좌우하는 국가가 됐다. 반면에 대기업 중심으로 중국을 활용해 경제를 유지발전하던 한국의 역할은 사라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을 상대해 자존을 지키고, 미래 비즈니스가 가능한 분야들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까지 중국을 보아왔던 시각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이 이유다.
요즘 대중국 전문가들 사이에 많이 나오는 단어가 '먼 곳과 교류하고, 가까운 곳은 공격한다'는 뜻의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진(秦)나라 정치가 범저(范雎)가 이 전략을 내놓은 후 중국의 외교정책을 대표하는 말인데, 중국과 가까이 있는 한국에게는 분명히 즐겁지 않은 개념이다. 하지만 지난 수천년간 크고 작은 중국의 변화속에서 한국의 자존을 유지했듯이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지속된다는 신뢰 속에서 한국 스스로의 자존을 찾아가야 한다.
'중국 창업을 준비하며 > 중국무역·사업 경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위안화 기준치 1달러=6.6375위안…5년6개월래 최저 (0) | 2016.06.28 |
---|---|
[스크랩] 중국 경제 주간뉴스(6월-4) (0) | 2016.06.27 |
[스크랩] 톈진 1인당 GDP 2만불, 중국이 달라졌다 (0) | 2016.06.27 |
[스크랩] 중국, 애플 아이폰6 판매 중단 명령 (0) | 2016.06.21 |
중국 기업 취업에도 ‘지기지피’가 필요 (0) | 2016.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