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 베조스의 자산 가치는 지난주 59억달러(7조770억원)가 쪼그라들었다. 작년에 번 돈의 전부와 맞먹는 규모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의 자산 가치도 45억달러(5조4000억원) 줄었다. 주식 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9일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새해 첫 주에 중국발(發) 주가 하락으로 세계 400대 부자들의 총 재산은 1940억달러(약 233조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같은 세계적인 거부(巨富)뿐만 아니라, 전 세계 평범한 주식 투자자들도 평균 6%의 손실을 입었다. 일주일 만에 세계 주가가 평균 이 정도 떨어진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급격한 위안화 약세에 대한 우려로 새해 첫 거래일부터 폭락세로 출발한 중국 증시가 주변 아시아 국가와 미국·유럽 등 각국 증시에 공포를 전염시키면서 벌어진 일이다. 안전 자산인 채권 금리가 급등하고 달러화·엔화·유로화는 강세를, 원화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는 약세로 돌아서는 등 파장이 전방위로 퍼졌다.
그런데 중국 증시에서 주식을 마구 내던져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외국인 투자자나 대형 기관 투자자가 아니었다. 약 2억명으로 추산되는 중국의 '개미'(개인 투자자) 군단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채 성장해온 중국 주식시장은 자국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86%에 달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주식을 사고팔기 시작한 현지의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작은 뉴스에도 떼 지어 반응하는 통에 세계 경제가 이들의 손끝에 휘둘리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2억 中 개미가 흔드는 세계 금융
중국국제금융공사(CICC)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외국인 투자자의 중국 주식 보유 비중은 2%에 불과하다. 반면 개인이 보유한 주식은 전체의 43%에 달한다. 이들이 일일 거래량의 85.6%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매매 활동을 벌이며 증시를 주무르고 있다.
다른 나라 증시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나 일본 증시에서 개인 투자자의 주식 보유 비중은 19~20% 수준에 불과하고 외국인 비중이 30%대로 많다. 그날그날의 시장을 읽을 때 외국인 투자자의 매매 동향에 신경 쓰는 이유가 여기 있다. 투자 선진국인 미국도 개인 비중은 37%에 머물고 기관 투자자(50%)나 외국인(15%) 비중이 상당한 편이다.
중국의 개인 투자자 가운데 절반가량이 최근 5~6년 사이 거래 계좌를 새로 튼 사람들로 추정된다. 특히 주가지수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던 작년 상반기엔 한 주에 300만개가 넘는 계좌가 신규 개설됐고, 하루 거래대금이 뉴욕 3대 지수 합계치를 뛰어넘는 1조위안을 돌파해 거래소 전광판이 먹통이 되기도 했다. 미국 금융정보회사 스테이트스트리트의 지난해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투자자 중 한 달에 최소 한 번 이상 주식 거래를 하는 사람은 53%인 데 비해, 중국은 81%에 달했다. 개인 투자자의 3분의 2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저(低)학력자들이라는 분석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주식시장은 주가가 오르면 따라 사고, 내리면 따라 파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장악돼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얼마나 자주 사고파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시가총액 회전율'을 봐도, 중국은 우리나라의 6배, 미국의 17배에 달한다.
◇汎중국 증시 영향력 갈수록 커져
문제는 중국 본토 개미들의 움직임이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말 기준 중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7조1000억달러(8516조원)로 미국(23조4000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7.6%에서 2015년 11.1%로 급증했다. 중국 역외시장 역할을 하는 홍콩까지 포함한 범중국 시장의 비중은 같은 기간 14%에서 17.5%로 커졌고, 선전 증시까지 합치면 지난해 중국의 시가총액은 전 세계 시가총액의 4분의 1(25.1%)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금융시장 개방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본토 증시에 직접 투자하려면 허가가 있는 금융회사를 통하거나, 하루 투자 한도가 정해져 있는 홍콩 등지를 통해야 하는 등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중국 개미에 증시가 휘둘리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증권 성연주 연구원은 "중국 국영 기관투자자들이 증시를 방어하고는 있지만, 개인들의 떼 지은 투매(投賣)를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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