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감동의 시내버스 '683번' 곰보자국 안내양

주님의 착한 종 2011. 9. 3. 11:00

683번 버스에 올랐다.

교통체증이 심한 궈마오(国贸) 앞을 지나는 노선이라 평소에는 잘 이용하지 않았는데

어제 저녁엔 웬일인지 그 버스에 몸이 끌렸다.

교통카드를 긁고 올라서는데 탑승문 옆에 서있는 안내양이 내가 들고 있는 쇼핑백을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왜 그러는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무거워 보이니 보관해주겠다”나.

중국 생활 수년 만에 처음으로 겪어보는 과도한(?) 친절인지라 어리둥절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 예술의 경지로 느껴졌던 그녀의 친절

쇼핑백을 건네니 어디에서 내리는지 묻는다.

종점이라고 했더니 그거 잘 됐다고, 안심하고 계시면 내릴 때 전해드리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빈자리 하나를 가리키며 자리가 좀 누추하긴 하지만 저기에 앉으란다.

보니까 버스 내부의 돌출부 여기저기에 방석을 깔아 좌석을 몇 개 더 늘려놓았다.

괜찮다면 저기에라도 앉아라는 것이다.

이 안내양은 운행도중 내내 빈자리가 생기면 서 있는 승객들에게 그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그리고 노인들이 올라타면 부축해주고, 앉아있는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줄 수 없겠느냐고

직접 물어보고, 양보해주는 사람에게는 마치 자신의 일인양 감사하다며 허리를 굽신거렸다.

코끝이 찡할 정도의 친절은 계속 되었다.

매 정거장마다 안내방송을 하는데 여기서는 몇 번 버스나 지하철로 환승할 수 있고 주위에는 어떤

주요 건물이나 관광지가 있는지 까지 말해주었다.

그 많은 환승버스의 번호를 대본도 없이 줄줄 읊어 내려가는 것으로 보아 안내양 경험이 오래된 듯

보였다.

실은 안내양이라기보다 안내 ‘아줌마’라고 칭해야 할 것이다.

나이가 마흔은 족히 넘어보였다.

그래도 목소리는 어찌나 꾀꼬리 같던지, 처음에는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줄 알았다.

얼굴에는 곰보자국이 가득했지만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녀의 안내멘트는 예술의 수준이었다.

한참 버스가 달리는 도중에 마이크를 들더니

“우리가 이렇게 같은 버스를 타게 된 것도 인연입니다. 사업과 학업에 지쳐 버스에 몸을 실은

여러분에게 조금만 위안이라도 되어드리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조용한 음악까지 흘러나왔다.

버스가 정거장에 도착할 즘에는 외부 스피커를 통해

“뛰지마세요, 천천히 타셔도 됩니다”라고 방송을 하고, 자전거가 옆을 지나갈 때에는

“버스가 지나가니 조심하세요”라고 일러주기도 한다.

버스안의 모든 승객들이 ‘무슨 저런 안내양이 다 있나’라는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볼 정도였다.

그녀의 친절은 하루이틀이 아닌 듯 했다.

어떤 아줌마가 올라타더니 “어, 또 만났네”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 안내양은 지난번에 아줌마가 아들과 함께 탔던 것까지 기억하고서 “아들은 잘 있느냐”고

안부를 묻는다. 이 정도면 완전히 프로급이다.

◆ 어떻게 하면 중국인들을 ‘친절하게’ 만들까?

종점까지 1시간 남짓 걸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잊지 않고 내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내리면서 그녀의 성씨라도 물어보려고 했지만 부지런히 하차 준비를 하고 있어서 방해가 될까봐

말을 건네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에 살면서 친절에 둔감하게 된다.

아니, ‘친절을 기대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고 표현해도 그리 과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작은 친절에도 감동하게 되는 것 같은데, 어제의 친절은 그저 작은 친절의 수준을 넘어섰다.

내가 아는 회사가 있으면 직원으로 소개시켜주고 싶을 정도였다.

중국에서 수년간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면서 줄곧 나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직원들을 친절하게

만들까’하는 것이었다.

급여를 올려줘보기도 하고, 채점표를 만들어 친절직원에 대한 성과급을 지급하기도 하고,

매일 같이 교육을 시키는 것도 부족해 한국에서 CS(고객만족) 강사를 불러 특별교육을 시키기도 하고,

직원들끼리 역할을 바꿔 훈련을 시키기도 하고, 심지어는 친구들을 손님으로 가장하여 암행어사처럼

친절도를 체크하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느냐 묻는다면 딱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경험상 친절 교육의

핵심은 ‘자기 직업에 대한 긍지를 갖도록 만드는 일’이라고만 대답해주고 싶다.

급여가 높아져 긍지가 생길 수도 있고,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각성하면서 긍지가 생길 수도

있고, 자기업체나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긍지가 생길 수도 있다.

중국인들을 어떻게 하면 친절하게 만들까,

이것은 중국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모든 한국 기업인들의 고민이자 숙제일 것이다.

오늘 베이징에서 열린 어느 강연회에서도 참석자가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것을 들었다.

 왜 중국인들은 친절하지 않는 걸까?

어떤 사람은 민족성 때문이라며 “중국인들은 절대 친절해질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문화수준이 높아지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걸기도 한다.

 

정말로 중국인들은 ‘천성적으로’ 친절하지 않은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의 불행에 눈을 감는 이기적 성향이 있기도 하지만,

길을 물어보면 가끔은 송구스럽다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알려주는 사람들이 중국인들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도 자주 만난다. 민족성 운운하며 매도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

어쨌든 683번 시내버스 곰보자국의 안내양이 내게 희망의 불씨를 하나 보여주었다.

오늘 하루종일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는 잘 이용하지 않았던 683번 버스였지만, 앞으로는 혹시나 그녀가 탔을까 하여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중국 대륙이 되었으면 한다.

다음에는 꼭 그녀의 이름을 물어봐야겠다. 매일 출퇴근 시간이 기대된다. (bitdori21@naver.com)

 

작성자
온바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