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네이멍구 사태를 바라보는 3가지 관전법

주님의 착한 종 2011. 6. 3. 09:38

중국 네이멍구(内蒙古) 지역에 며칠동안 세계의 은근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지역에서 주민들의 시위가 발생했다고 한다.

대학이 봉쇄되었고, 거리 곳곳에 무장경찰이 배치되어 분위기가 살벌하다고 한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통제되었다고도 한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장갑차가 등장하였다는 말까지도 있다.

분명한 것이 있다면,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우리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모른다’는 것만이 정확한 사실인 것처럼 답답한 경우도 없다.

소문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지난 5월 10일, 모르건(莫日根)이라는 네이멍구의 한 주민이 트럭에 깔려 숨졌다.

그는 유목민으로, 인근에 탄광이 개발되면서 분진과 소음으로 생계에 지장을 받자

보상을 요구하여왔고,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친지 30여명과 함께

탄광회사 앞에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대충 어떠한 모습일지 눈 앞에 그려진다.

이들의 시위에도 아랑곳 않고 탄광은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트럭이 태연하게 회사를 나서려하자 모르건은 이를 막아섰다.

비켜라, 비키지 않을테다, 그러면 그냥 지나간다, 그러려면 그래봐라,

정말로 달린다, 어디 한 번 그래보라니까!

이러한 싸움판의 모습도 눈 앞에 훤히 그려진다.

차량을 막아섰던 모르건은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서 죽었다.

트럭운전사가 그대로 돌진해버린 것이다.

모르건은 치킨게임의 승자(?)가 되었다.

열사(烈士)의 탄생은 시위에 기름을 끼얹었다.

일가 친지들의 회사 정문앞 시위에서 주위 유목민들의 거리 시위로 번졌고,

급기야 24일에는 시정부 청사 앞에서 학생들까지 가담한 대규모 시위로 ‘판’이 커졌다.

그때부터 네이멍구 사태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관전법 1 – ‘민족문제’로 발생한 시위인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일부 언론은 이를 ‘몽골족들의 민족소요 사태’로 보고 싶은 듯 하다.

티벳과 위그르족의 예전 그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이른 판단이다.

이 사건은 토착민과 개발자 사이에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지역분쟁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네이멍구 소요 사태’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혹은 ‘유목민 시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이점은 사망한 ‘모르건’이라는 사람이 몽골족이라는데 있다.

지난해에도 저장성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개발에 항의하며 토지보상을 요구하던 시골마을의 촌장이 트럭에 치여 숨진 것이다.

당시 사망한 촌장이 소수민족이었다면, 예컨대 좡족(壯族)이었다면,

그래서 시위가 일어났다면, 이 사건도 좡족의 민족소요 사태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다만 최근의 모르건이 몽골족이었기에,

단지 그것때문에 이번 사건을 몽골족 민족시위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성급한 판단이다.

네이멍구의 이번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민족감정을 표출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아직까지는 민족소요라고 규정할 수 있을만한 뚜렷한 흔적이 없다.

거칠게 말하자면 중국에서 10명이 죽으면 그중에 1명은 소수민족이다.

그때마다 사망자가 ‘소수민족’이라는 사실에 지나치게 주목하다보면

정확한 사태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 관전법 2 – 중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

오랜 세월을 거쳐, 어찌보면 중국 정부는 민족문제 대응에 도가 터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번에도 중국 정부는 사태의 초반부에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가장 먼저 외부로의 연결을 끊었다.

휴대전화를 차단하고, 아마도 특정한 단어가 포함된 문자메시지 발송을 제한하였을 것이며,

PC방도 봉쇄하여버렸다.

고교와 대학도 초기에 봉쇄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였다.

그래서 앞서 사건 개요를 소개한 것처럼,

이러한 사건에 대해 우리는 매번 ‘~카더라’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지금 바이두(百度)에서 ‘모르건’이나 ‘네이멍구 안건’으로 검색해보아도 엉뚱한 검색결과만 나열된다.

이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중국 정부의 매뉴얼이 무엇인지 대충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거리에 무장경찰을 배치하고, 여러 명이 운집하면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해산시켜버렸을 것이며,

혹시나 거리로 뛰쳐나와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이 발견되면 무자비하게 때려패

어디론가 끌고 갔을 것이다.

대체로 사건이 심각해질만한 조짐이 보이면 정부가 서서히 개입하는 외국의 공권력 운용법과는 달리,

중국은 민족문제와 관련해서는 단 1%의 이상한 낌새가 보여도 ‘초기박멸’의 자세로 덤벼든다.

내외부에서 ‘민족’을 건수로 중국 정부를 흔들어보려고 아무리 시도하여도,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 관전법 3 – 후춘화의 평가대

게다가 이번 사태는 ‘임자’를 잘못 만났다.

네이멍구 당서기 후춘화(胡春华)는 티벳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대학졸업이후 15년 동안을 줄곧 티벳 – 즉 시짱(西藏)에서 지냈다.

그것도 본인이 자원을 해서 달려갔다.

후진타오(胡锦涛)의 오른팔로 오랜 세월을 보냈고, 그래서 별명 또한 ‘리틀 후진타오’다.

어떻게하면 소수민족 자치구역을 잘 관리할 수 있는지 보고 자라왔고,

만약에 소요사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골이 난 사람이다.

이번 사태에도 강온의 대응법을 적절히 잘 구사하고 있다.

한편으로 몽둥이를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책임자를 처벌하고 본인이 직접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법적인 재발방지책을 발빠르게 발표하면서 민심을 다독이는 등 ‘역시 후춘화답다’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이다.

경험없는 지도자라면 중앙정부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면서

상당히 우왕좌왕했을 법도 하다.

이번 사태가 후춘화에게는 오히려 능력을 재삼 인정받는 호기가 될 듯 하다.

그는 누구나 지목하는 중국 6세대 지도부의 선두주자다.

쑨정차이(孙政才) 지린성 당서기, 저우창(周强) 후난성 당서기와 함께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인물이다.

후진타오 다음으로 시진핑(習近平)이 국가주석을 맡을 것이 90% 확실하고,

시진핑 다음으로는 이 셋 중에서 최고지도자가 탄생할 가능성이 50%에 가깝다.

그중에서도, 성장배경이나 업무처리 스타일로 본다면 후춘화가 국가주석감이고,

쑨정차이가 총리감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심스레 평가한다.

 

네이멍구의 오늘을 보건대, 대체로 그말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앞으로 10여년 뒤의 최고지도자를 대충 점찍으며 지금부터 능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중국 정치의 상당한 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