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명문대생도 월 80만원…전세계가 中 R&D 인력 노린다"

주님의 착한 종 2011. 5. 30. 09:40

글로벌 기업들, 中 공공기관·대학서 개발한 원천기술 '상업적 활용' 나서

글로벌 풍력터빈 선도기업인 스페인의 '아시오나'는 차세대 혁신기술로 주목받는 디렉트 드라이브 방식의 해상 풍력터빈을 개발하고 있다. 핵심기술을 제공하는 파트너는 '중국항천과기공사'다.

항천과기공사는 직원 11만명 규모의 대형 국책연구기관으로 우주개발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항천과기공사는 우주선 연구 과정에서 정교한 발전기 기술을 부산물로 얻었다. 하지만 이 기술이 풍력터빈 제조라는 상업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중국은 세계 최대 풍력터빈 제조국가이며 시노벨(세계 3위), 골드윈드(〃5위), 동팡(〃7위)과 같은 거대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도 이 기술의 상업화 가능성에 주목한 중국기업은 없었다. 스페인기업인 아시오나에게 GE, 지멘스와 같은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을 단숨에 따라잡을 기회를 눈뜨고 내어준 셈이다.

▲ 미국 제조업체들이 중국으로 내보냈던 로테크 공장을 미국 내로 되돌리고 있다. 한편 중국은 전 세계 하이테크 산업의 인큐베이터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중국 중난대학교 유전학 실험실. /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 미국 제조업체들이 중국으로 내보냈던 로테크 공장을 미국 내로 되돌리고 있다. 한편 중국은 전 세계 하이테크 산업의 인큐베이터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중국 중난대학교 유전학 실험실. /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미국에는 23andMe, Navigenics와 같은 개인 유전자분석 서비스 업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기술로 유전자 염기서열을 판독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국영연구기관인 BGI(베이징게놈연구소)의 역량에 의존할 뿐이다. BGI는 중국개발은행이 15억달러를 투자해 매년 1만5000명의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염기서열 판독설비를 갖춰준 곳이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중국의 공공연구기관과 대학이 개발한 원천기술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 주도로 R&D에 집중 투자한 덕에 중국은 이미 SCI급 학술논문 숫자에서 세계 2위에 올랐다. 이르면 2년 뒤 미국마저 제치고 1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원천기술을 많이 가진 중국이 그 상업적 활용은 정작 외국 기업에 뒤지는 이유는 뭘까? 중국 민간기업들이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팔릴 만한 혁신제품을 기획·개발하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중국 전체 인구 중 대학졸업자 비율이 3.6%에 그쳤기 때문에, 지금도 민간기업 관리자 가운데 대졸자를 찾기가 어렵다. 이렇게 중국 민간기업들이 R&D 인력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인력들은 국영연구기관이나 대학에 자리잡고 원천기술을 축적해 왔다.

외국 기업들 입장에서는 중국을 원천기술의 인큐베이터로 활용할 기회다. 중국의 공공연구기관과 대학이 이미 개발해 둔 원천기술을 활용, 적은 비용과 짧은 기간에 혁신제품을 개발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우주항공기술, 바이오테크놀로지, 나노테크놀로지 분야에서 이러한 기회가 많다.

중국의 R&D인력은 약 230만명으로 전 세계 R&D 인력의 20%에 이른다. 이 숫자는 앞으로도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1970년대 말 시작된 경제개혁과 산아제한 정책으로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한 덕분에, 한해 대학졸업생이 100만여명(2000년)에서 630만명(2010년)으로 10년 만에 6배나 증가했다. 대졸자의 40%가 이공계 출신이다. 향후 10년간 대졸자 숫자가 2배 더 증가하면서 R&D 인력도 더욱 확충될 것이다.

R&D 인력의 임금이 아직도 선진국보다 훨씬 낮은 점도 외국 기업들에게는 매력적인 조건이다. 중국에서는 고학력화의 급진전으로 과잉 공급된 대졸자의 임금이 2010년에만 20% 떨어지며 하향 안정화되고 있다. 월 50만~80만원이면 명문대 졸업생도 채용할 수 있다.

중국은 선진국 기업들로부터 해외 R&D센터 입지로 이미 주목받고 있다. UN무역개발회의가 전 세계 다국적 기업들을 상대로 '해외 R&D센터 기지로 가장 선호하는 국가'를 물었더니 미국, 인도를 제치고 중국을 꼽았다. 2001년 100여개 남짓이던 해외기업의 중국 내 R&D센터 숫자는 2010년 3300개로 급증했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은 아직도 중국을 혁신기지로 활용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고용한 R&D 인력은 4000명 수준으로, 중국 내 고용 인력 전체(9만명)의 5% 정도에 그친다.

이제 한국기업도 중국을 '하이테크(high-tech) 강국'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중국 기초과학의 원천기술을 활용하여 선진시장에 판매할 혁신제품을 개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중국의 공공연구기관, 대학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그들의 우수한 인력, 기술을 한국 기업으로 유도하는 방안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