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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 ‘한복(漢服)’ 입기 운동 열풍
“만주족의 옷 치파오는 한족의 옷이 아니다”
중화권에 한복(漢服) 입기 열풍이 거세다. 중화권 소식에 정통한 홍콩의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지난 3월21일 중화권의 한복 입기 열풍에 대해 집중보도했다. 중국 고대 한(漢)나라의 전통 의복을 말하는 한복은 치파오(旗袍ㆍ차이니즈 드레스)등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익숙한 중국 전통 복장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기마민족 만주(滿州)족의 전통 복장인 치파오가 소매가 좁고 몸에 딱 달라붙는 것이 특징이라면, 농경문화에서 비롯된 한복은 우리나라 한복(韓服)과 마찬가지로 앞을 Y자로 여미고 소매가 넒고 품이 넉넉한 것이 특징이다.
중화권 한복 입기 열풍은 진원지는 동남아 화교(華僑)사회다. 지난 3월3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한 영화관에서는 이색 풍경이 연출됐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논란을 빚은 영화 ‘공자(孔子)’의 말레이시아 첫 상영을 앞두고 약 50명에 달하는 화교들이 중국 전통 한복을 차려입고 영화관에 나타난 것이다. 각양각색의 한복에 망건까지 눌러쓴 화교들은 영화 상영전 영화관에서 고대의 제례 형식에 갖춰 공자에 ‘삼헌례(三獻禮)’를 올리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날 한복을 입고온 화교들은 영화를 무료로 관람하는 특전이 주어졌다.
이날 한복 입기 행사를 기획한 한복 입기 운동가 장즈파(江志發)는 “한국,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심지어 중국의 티베트족이나 위구르족도 민족 고유의 전통의상을 가지고 있는 반면 유일하게 한족만 전통 복장이 없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라며 “치파오나 창파오(長袍) 등이 중국 전통 복장이라고 하지만 이는 만주족의 전통복장이지 화하(華夏)문명을 만들어 낸 우리 한족의 전통 복장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IT업에 종사하는 장즈파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처음으로 붉은색 한복을 입고 망건을 쓴 채로 전통 혼례를 올린 인물로 평소 한복 입기를 주창해 왔다.
중국 언론들을 비롯한 전문가들도 화교 사회의 이 같은 움직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중국을 대표하는 의복으로 만주족의 전통 복장에 기반한 치파오가 일종의 대세였기 때문이다. 몸에 ‘쫙’ 달라붙고 치마 한쪽이 길게 트인 치파오는 ‘여성의 각선미’를 가장 잘 살려주는 옷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최근 중국 대륙에서는 치파오를 입고 대학 졸업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더욱이 치파오에 기반한 ‘상하이탕(上海灘)’같은 브랜드는 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 같은 치파오를 ‘한족의 옷이 아닌 만주족의 옷’이라 일거에 격하시킨 것이다.
게다가 한복 입기 운동은 중장년층보다 오히려 젊은 층에서 더욱 호응이 높다고 한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한복 입기 운동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말레이대 중문과의 옌자젠(嚴家建)교수는 “한복 입기 운동에 적잖은 의의가 있다”라면서도 “(만주족 치파오의)청나라도 엄연히 중국 역사의 일부인데 이를 단절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또 일각에서는 “영화 ’공자‘와 전통 한복을 연결시키는 것은 넌센스”라는 주장도 나온다. 공자가 살았던 시기(기원전 551년~기원전 479년)는 한나라(기원전 206~220년)가 세워지기 약 300여년 전이다. 이에 한복 입기 운동가 장즈파는 “전통 한복을 입는 것은 공자가 주장한 ‘복고(復古)’와 일맥상통하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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