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은 언제나 샐꼬?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속에 맺혀 있어...” 송강 정철의 시 ‘사미인곡’의 일부다. 시에는 나이 50에 왕에게 소외당한 신하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그런데 나는 보름만에 아그레망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신임 류우익 중국대사에 관한 글을 보면서 위의 시가 생각났다. 중국대사를 제안 받았지만 대통령의 옆에 있고 싶어서 고사하다가 결국을 강권하다시피 이런 결정을 했다는 후문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 중국 대사라는 자리는 총리가 할 역할에 비견할 일이지 결코 장관급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대통령실 실장까지 지냈고,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니 당연히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부임하는 중국 대사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우선 현재 한국 경제는 모든 면에서 중국과 동조화되어 있다. 우리가 먹는 식품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이고, 공산품은 70~80%가 중국산이다. 대외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를 넘었고, 몇 년 후에는 절반을 차지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또 지금 우리 경제가 나름대로 회복하는 것도 중국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면서 수출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대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누가 가볍다고 할 것인가.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중간에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거의 닫혀 있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중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최근에 만난 중국의 관료는 물론이고 지식인 등도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이제 한국을 파트너로 인식하지도 않으려하면서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인식의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모든 면에 중국에 집중되는 반면에 사회 교류, 문화 교류 등 양국간 인식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교류는 거의 실종됐기 때문이다.
이 정부 들어서 정부 단위는 물론이고 민간 단계에서도 한중 교류는 거의 단절이라 할 만큼 절대적인 양이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수출 등의 경제 부분에서만 비정상적일 정도로 빨리 교류 양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안에 중국에 관해서 제대로 인식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얼마전 이대통령이 발마사지 전문가들을 불러서 외국 관광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경쟁이 있다는 말에 “우리가 발마사지를 경쟁하려면 어떻게 이기겠나. 그런 관광을 하기에는 이미 지나간 산업이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께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명동을 한번 나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일본 등 해외 여행객들이 많이 있는 명동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마사지’ 가게들이다. 이 마사지가 ‘발 마시지’와 어떤 변별력이 있는 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올 3월에 한 인터넷 신문에 ‘공항에서 한국 단체 여행객 보기가 힘들다’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처음 제목은 ‘중국인 발 마사지 이미 시작됐다’로 뽑아서 논쟁이 붙은 적이 있다. 직업의 귀천을 떠나서 중국 관광객들이 온다면 그들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반면에 지난 2년간 우리 국민들이 외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는 현격하게 줄어 들었다. 반면에 중국에서 한국에 오는 여행객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특히 내년에 비자까지 폐지된다면 내년 중으로 200만명을 넘은 일본을 제치고 1위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주중대사가 차지하는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류대사 내정자의 역할을 두고 긍정적인 전망보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한다. 우선 류 내정자가 중국에 대한 이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말에 능숙할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올 5월 부임한 존 헌츠먼 주중미국대사나 미야모토 유지(宫本雄二)도 일본의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중국말에 능숙하다. 헌츠먼 미 대사는 중국 태생의 딸을 입양해 키울 만큼 중국에 대한 이해가 많다. 또 미야모토 대사는 교토대학 법학과를 나왔지만 81년부터 2년간 중국대사관 1등 비서, 90년 2월부터 1년 반 동안 중국과장, 97년 6월부터 2001년 1월까지 중국 대사를 지낸 후 본부 생활을 하다가 2006년 3월에 다시 중국대사로 부임했다. 이 때문에 류내정자의 중국 행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국에서의 외교는 중국에 정통한 사람들조차 쉽게 결실을 맺기 힘들 만큼 적응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더구나 국가간의 균형이 이미 중국 쪽으로 기운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의 역량을 발휘하기가 과거보다 휠씬 힘든 상황이다. 또 중국말을 못하는 김정기 상하이 총영사의 부임 등으로 이미 심기가 불편한 중국으로서는 다시 중국 말 못하는 대사의 부임은 달갑지 많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우리 인재풀에 중국어가 가능한 중량급 인사가 없다는 점 등도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 중국에 영향력이 있는 원로급 인사를 만나서 점심을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이분은 이번 인사가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에 기업에 있는한 분은 중량급의 인사라서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류 내정자가 주중대사로 부임할 경우 임기는 MB정부와 맥을 같이할 전망이다. 그럴 경우 임기는 약 2년 반 정도다. 중국어를 하지 못한 상태로 부임해 큰 성과를 낸 황병태 전 대사와 같은 역할을 할지 아니면 갈수록 증대되어 가는 한중관계의 빈 공백기로 남을지가 걱정인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곧 부임하는 신임 대사는 이제 ‘사미인곡’을 쓰던 마음을 버리고 대신에 ‘형가(荊軻)가 읊었다는 ‘역수가’를 더 마음에 새기었으면 한다. 형가는 중국 전국시대의 자객이다. 그는 연(燕)나라 태자 단의 식객이 되어 진(秦)이 침략한 땅을 되찾아 주거나 진왕 정(始皇帝)을 죽여 달라는 단의 부탁을 받는다. 단의 부탁도 있었지만 진시황의 악행 때문에 그 일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차다. 장사는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문구가 있는 ‘역수가’를 남기고 진나라를 향한다.
하지만 형가는 안타깝게 진시황 살해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중국에서 형가는 협(俠)의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이 때문에 일개 자객에 지나지 않는 형가를 사마천은 ‘사기’에서 ‘열전’(列傳)으로 다루었다. 또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이나 안중근 의사들도 형가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면서 구국의 길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머잖아 중국으로 부임할 신임 대사는 이제 먼산 보고 자기를 부르길 기다리는 ‘사미인곡’의 마음은 서해안에 모두 던져 버리고, ‘역수가’의 마음으로 중국을 이해해야 했으면 한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몇 비판론자들의 지적을 두고 껄껄 웃으면서 비웃을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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