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조선족 사회의 위기와 위기의식

주님의 착한 종 2010. 5. 6. 09:32

얼마 전 미국의 한국인 유학생이 찾아와 조선족공동체 관련 논문을 쓰려고 연길에서 조선족 간부지식인들을 찾아 조사연구를 펼치고 있는데 대답들이 신통치 않아 기대치에 못 미친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 때 필자는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니 별도로 평생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 전에는 신통한 대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했다.

조선족은 중국혁명에 커다란 희생을 내고 기득권을 얻었음에도 타민족에 비해 위기의식을 갖고 산다. 이같은 위기의식은 첫째, 과거 중국공산당(이하 '당')의 거듭되는 정풍운동과 잔혹한 문화대혁명을 치른 결과이다. 둘째, 당내인사들의 ‘사상의 고도의 일치성 유지’를 강조하는 공산당작풍(共産黨作風)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셋째, 소수민족 중에서 유일하게 ‘모국을 둔 민족’, 즉 역사적으로 2중국적자라는 신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한수교와 조선족들의 한국방문은 조선족사회에 훈훈한 봄바람을 몰고 왔으며 많은 조선족들은 한국으로 부를 축적하였고 삶의 질도 향상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한국사회의 의존도는 수많은 조선족들이 민족정체성 문제로 고민에 빠지게 하는 문제도 초래하였다. 이는 1세기를 거쳐 어깨 곁고 싸워온 중국의 타민족들에게 배신감을 주었고 그들과의 연대성을 잃어가는 명분으로 되었으며 조선족 간부지식인들의 전통적인 위기의식을 키우는데 빌미를 제공했다.

자유분방한 한국 언론의 충격과 역사, 영토 등 문제들이 대담하게 거론되면서 조선족 간부지식인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국사회언론이 많이 자유화됐음에도 그들은 지레 겁먹고 감히 조선족의 민감한 사안들을 거론하지 못한다. 사전에 불리한 요소들을 차단하기에 급급하다보니 조선족언론은 심입된 조선족사회문제 거론이 불가피하고 ‘당과 국가의 이익’에 ‘기스’나지 않는 차원에서 민족문제를 거론하는 맥락에 그치고 있다.

그 실례로 지난 20여 년 동안 조선족노무자들이 한국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렵게 벌어 고향의 경제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조선족 간부지식인들이 고민해야할 조선족사회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불법체류’, ‘강제추방’과 같은 한국정부의 강경대응에 “한민족 한 핏줄인데 좀 봐 달라.”고 공식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또 그들이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한 말과 문장들도 차라리 안하고 안 쓰기만도 못한 철저히 당성원칙과 국가의 이익에 비추어 다듬어진 것들이었다.

조선족사회가 오늘처럼 파죽지세로 해체되어 당장 민족교육이 어렵고 떠난 사람은 돌아올 방법이 없고 남은 사람은 죽기내기로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은 민족사회의 해체가 대두되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이를 만회해보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간부지식인들은 서민들과 떨어져 살고 해외조선족들과는 서로 소가 닭 보듯 척을 두고 살다보니 일치감치 각자 제멋대로 사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조선족은 역사적으로 2중국적자이지만 중국혁명에 혁혁한 전공을 세운 집단으로써 모택동 스스로도 중국의 국기에는 조선족(조선인)의 피가 묻어있다고 말할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고 해방전쟁시기에는 전투마다 혈로를 개척하는 조선족 장병들의 희생을 자제해달라고 군에 지시할 정도였다. 또 한족들은 국민당이 돌아와 문책할까봐 감히 장개석 초상화를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도 조선족은 주저없이 모택동 초상화를 벽에 걸고 당을 따랐으며 해방 후 어려운 시기에는 자기는 굶주리면서도 식량을 국가에 바치는 등 중국혁명의 선두에 서서 솔선수범하는 민족이었다.

때문에 조선족의 2중성은 앞서 이민 1세, 2세들에 의해 중국에서 기득권을 얻으면서 중국이 조국으로 선택되었고 3세, 4세들도 중국을 조국으로 알고 살았고 중국은 이 역동적이면서도 굴할 줄 모르는 민족을 진작 국민으로 받아주었다. 하여 오늘날 모국인 한반도는 중국에서 조선족의 기득권문제와 1세기를 내려오며 중국혁명에 바친 피의 댓가성문제 때문에도 중국이 2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고 한국이 국민으로 받아주지 않는 한 민족(동족)관계로 정리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민족문제를 지나치게 국가이익과 당성원칙에 관통시키는 간부지식인들의 작법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지만 국가이익과 당성원칙을 민족문제에 깊숙이 개입시키는 것도 당과 국가, 민족 모두에게 무책임한 행위이다. 가족이 모여 민족이 되고 여러 민족이 모여 중화인민공화국이 되었다면 우리는 뼈와 살처럼 자기가정을 사랑하듯이 민족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며 국가이익에 못지않게 민족의 이익과 운명을 고민해야 한다.

개혁개방 이래 중국의 지도자들은 해외순방 때마다 현지 언론에 ‘중국의 민주화’는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이는 중국도 민주화를 동경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실제로 중국의 정치사상 영역이 많은 변화를 보이며 글로벌화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족 간부지식인들은 지나친 위기의식에서 헤어나올 줄을 모르고 조선족사회 현안들을 체념하고 살면서 구제불능의 조선족사회를 만들고 있다. 이는 현직의 조선족 간부지식인들에게 죄를 물을 수밖에 없다. (morae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