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마음을 열고

바보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주님의 착한 종 2009. 10. 28. 17:17

바보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1.

몇 해 전의 일입니다만 친구 하나가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실한 직장인이었고 열심한 신자, 좋은 가장이었던 그분은

저와는 소속 본당은 달랐지만 같은 기도 모임에서 십여 년을 함께 하면서

서로 위로와 힘을 주고받는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침운동에서 쓰러진 후 며칠간을 사경을 헤매다

바로 세상을 떴으므로 죽음에 대한 준비는 커녕, 유언 한 마디 남길 여유도 없었습니다.

평소 특별히 건강을 걱정하지 않았으므로 유족을 위한 준비도 없었습니다.

이십년 이상을 봉직했던 회사에서는 아주 담백하게, 군더더기 없이,

기천만원의 퇴직금을 정산해 줌으로서 관계를 정리해 주었었고

오직 가장의 수입에만 의존하고 살아 왔었지만 구차하게 더 기대할 것이 없었던 유족들은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남은 가족 - 아직은 성년이 되지 못한 자녀들- 의 장래를 책임져야 했던 미망인은

남편이 죽으면서 남긴 유산-퇴직금-을 함부로, 허술하게 풀어 헤칠 수가 없었으므로

유산을 대충 3등분으로 하여 정기 예금으로 곱게 남겨 두었었고,

궂은 일 해본 경험이 거의 없던 몸으로 서투른 노동을 시작함으로서

힘겨운 남은 삶을 시작했습니다.

 

2.

제게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내가 소원하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제 힘으로 꼭 보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그리 할 만큼 벌이가 신통치 못했던 저는

부끄럽게도 한달에 몇푼씩 적금을 들기로 했습니다.

따로 통장을 만들어서 든 것이 아니라 함께 하던 기도모임의 리더가 관리하는 계좌에

입금하는 방법으로 그리했습니다.

 

이년 후에 그 모임에서 성지 순례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안타깝게도 건강이 여의치 못하여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속이 몹씨 상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모인 돈으로는 부족할 것이었으므로

두어 해 더 모인 다음 보내 주자는 마음으로 위로를 삼았습니다.

 

3.

조그만 사고가 났습니다.

그 기도 모임의 리더(모임에서는 그를 회장이라 부릅니다)가 아내를 찾아왔습니다.

이사하는 과정에서 돈을 주고받는 시차 관계로 문제가 있다며

급히 천만 원을 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의심할 일이 없는 사이었으므로 가진 돈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빌려 주고 싶었지만,

그만한 돈을 가지고 있을 리 없는 우리의 사정을 미안해하며 변명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딱한 사정"은 우리의 어려움을 핑계로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다급했습니다.

 

이리 저리 융통을 하여, 이런 저런 곡절 끝에 한 열흘이면 해결 된다는

그분의 소요자금을 만들어 드릴 수 있었습니다.

 

1주일이 보름이 되고, 한달이 되고 반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 돈은 갚아지지 않았습니다.

훗날에야 안 일이지만 적금을 들었던 푼돈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4.

참 바보 같은 일입니다.

아내는 꾸어다 댄 돈을 갚기 위해 다시 익숙치 않은 이자 돈을 꾸어다 대었고,

제 경제적 실패로 인하여 한참 쪼들리던 우리 살림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지만

그 회장님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저로서는 아내를 위해 여행비 적금 든 것이 거품 되어 버린 것은 참 속상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무덤덤한 아내 때문에 속상해 할 여유마저 없었습니다.

저도 아내처럼 같이 바보가 되어버렸습니다.

 

더 바보 같은 일이 있습니다.

난데없이 돈을 꾸러 다니며 허둥거리는 아내를 수상히 여기신,

평소에는 아내를 각별히 사랑해 주시던 그 모임의 어느 할머니는

당신이 아내에게 빌려 주신 돈을 기꺼이 포기하셨습니다.

그분, 그다지 부유한 분이 아니십니다.

겨우 출가한 자녀로부터 푼돈에 불과한 생활비를 받아 사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할머니가 제 아내를 위하여, 아니 급전을 꾸어 가 막지 못한 그 회장님을 위해

오백만원을 포기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렵게 혼자 사시는 따님까지도 얽혀들어 속상하기 그지 없으실 할머니는

오히려 기도 중에 그 회장을 위해 기억하자며 저희들의 손을 잡아 끄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말할 나위 없는 바보이십니다.

 

5.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들이 잇달아 터져 나왔습니다.  

저처럼 고작 천 수 백만 원 정도 가지고는 명함도 못 낼 일이었습니다.

한꺼번에 수억 원을 그렇게 손해 보신 분도 계시고,

여러 해를 걸쳐서 수천 만 원을 앗기신 분도 계셨습니다.

 

반 지하 축축한 셋방에서 어렵게 셋방살이 하시는 분의 몇 백 만원도 있었고,

골목골목 야채며 과일이며를 싣고 다니며 목청 높여 외쳐대며

행상 하시던 분의 대부받은 몇 백만 원도 있었습니다.

시쳇말로 하면 그 규모가 결코 작다 할 수 없는 사기 사건이었습니다.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가톨릭 신자이며, 더구나 작기는 하지만 한 모임의 리더이고,

아마 전국적으로 이름도 꽤 알려져 있을 그 회장님에 의하여

그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보다는 그 사건을 맞이하는 피해자들의 헤쳐 가는 방법입니다.  

들고 일어나 멱살잡이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현명한 방법으로 돈을 회수한 분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힘 있는 연줄을 동원하여 을러대고 겁주어 돈을 회수해 가신 분이 계시고,

가재도구를 압류하는 등의 방법으로 회수해 가신 분도 계시며,

조용히, 그리고 약삭빠르게 다른 詐欺의 결과를 챙겨 가신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길길이 날뛰어야 할 시간에 오히려 바보처럼 모여 기도했었고,

경찰이니 검찰이니를 뛰어다녀야 마땅할 시간에

기왕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다른 사기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들을 했었습니다.

 

6.

머리에 말씀드렸던 친구 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에 받은 유일한 대책인 퇴직금을 그 회장에게 주었다 합니다.

아들, 딸의 몫으로 나누어 만들어 둔 통장을 기가 막히게 알아 낸 그 회장의 간청을 이기지 못한

그 부인은 자투리 돈, 푼돈도 남겨 둠이 없이 오롯이 다 챙겨 주었다 합니다.

제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뒤로 넘어져 두어번 기절이라도 해야 마땅할 그분의 얼굴에서 마저도

분노의 흔적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살아가는 공동체 안의 사람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똑똑한 사람도 있고 힘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똑똑해야 할 분들이,

마땅히 나서서 자신의 피해를 구제해야 할 분들이

저렇게 바보처럼 조용히 기도만 하고 계시고,

한번 나서서 용을 쓰기만 해도 거짓말쟁이 하나쯤은 쉽게 패대기를 칠 수도 있을 분들이

오히려 속인 사람의 영혼을 걱정하며,

자신은 수십배 더 큰 피해를 당하셨으면서도 오히려 남의 피해를 걱정들 하고 계시니

저 같은 사람마저 어쩔 수 없이 함께 휩쓸려 바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구제 불능의 바보라도 되려는 것인지...

저는 이 바보같은 아내가 좋고, 더 바보 같으신 그 할머니가 좋습니다.

아직은 장래가 만리 같으신 젊은 과숫댁, 그 부인의 지독한 바보스러움이 좋습니다.  

  

저는 제 이 바보스러운 삶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 보다는 수천 배 더 바보스러울 것이 틀림이 없을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옮겨 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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