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내의 무릎을 꿇렸습니다.
더 이상 서서 혹은 앉아서 당할 수만을 없었습니다.
저로선 대단하고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감히 아내의 무릎을 꿇리다니...
사연인 즉슨 이랬습니다.
어제, 금요일 하고도 늦은 오후에 모임이 있었습니다.
잘됐구나, 얼씨구나 지화자구나 하면서 모임장소를 갔습니다.
정말 입이 ^+++++++++++++++ +++++++++++++++++^렇게 찢어졌습니다.
죄다가 남자분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여자분도 두어분 오셨습니다.
그런데 20여명이나 되는 남자분들은 하나같이 거시기 해보였습니다.
어케 여자 하나 안달고 딸랑 자기 몸 하나만 온대니?
세상에 널린 게 여자고 길가다가 다리 걸면 넘어지는 게 여잔데...
나야 뭐, 워낙 인물이 출중해서 따라다니는 여자가 많아 골치 아프니
여자분들 피해 다니느라 항상 혼자몸 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하여간에 밥먹고 이러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2차를 가잡니다.
갔습니다. 그런데 다들 이상들하십니다.
노래방에 왔으면 노래를 불러야죠.
왜들 노래는 안부르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아니, 남자분들만 예닐곱명 노래한다고 노래방에 와 갖구선
노래는 안부르고 무슨 좌담회를 하고 계십니다, 예???
그러니 노래방주인이 열 받죠.
술도 안마셔, 여자도 안 불러, 노래도 안 불러
그러니 노래방 장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노래방이 무슨 토론석상도 아니고 만남의 장도 아니고
대화방도 아니고...
다음부터는 본분에 충실합시다요, 충실...
노래방도 먹고 살자구요.
그런데 누군가를 만나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전부가 남자였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만을 했습니다. 노래방에서...
무슨 남북정상회담도 아니고 홀아비궐기대회도 아니고...
남자끼리만 모이면 노래방이라도 노래가 안되고 말하는 게 전부인가 봅니다.
여자분들만 말이 많고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여간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아놔...
다음 부텀, 노래방안가!
하여간 그랬습니다.
암튼 지간에 이야기만 하니까 재미없다며
술을 들여왔습니다. 맥주+생수+글구 음료수...
다들 술을 못 하시더만요.
할 수 없이 술 잘하는 저도 맥주 두 잔만 마셨습니다.
취하대요?
그런데 집에오니 문을 안 열어 줍니다.
아내도 딸도 아들도 저더러 나가 자랍니다.
우쉬~ 주머니에 12원 남았는데 어딜 가라고???
열 받아서 길바닥에서 퍼질러 자려다가 사정사정을 해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텁니다.
오늘 일찍 들어오랬더니 왜 늦었냐?
뭔짓하고 왔냐? 어느 년하고 놀았냐?
얼마나 술을 마셨길래 쩔어서 왔냐?
어느 년하고 뒹굴었길래 화장품냄새가 나냐?
ㅠㅠ~
세상에 이렇게 말도 안되는 모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참다 참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반항을 했습니다.
웃도리를 방바닥에 패대기를 친 다음에
남들은 집에 가면 아내가 옷도 벗겨주고 발도 씻겨주고
술 마시면 몸 보신하라고 북어국도 끓여주고 꿀물도 타준다는데
왜 나만 갖고 지랄이세요?
맥주 두잔 마신 게 마신 거냐? 나는 나가서 사람도 못 만나냐?
나가서 술도 못 마시냐? 노래방도 못 가냐? 내가 무슨 돈 버는 기계냐?
나도 품위 있게 살 권리가 있다! 나도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다!
이러면서...
아내가 눈을 지그시 감습니다. 내 말에 감동 먹었나 보다,
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눈을 부릅뜨더니 소리를 냅다 지릅니다.
"이따식아! 신장170에 허리사이즈24에 몸무게 48에
미스 코리아 진 후보에, 한의사가 죽자 살자 따라다니던
16살 어린 여잘 꼬셔서 결혼해 갖고
말도 안 듣는 웬수같은 애 둘에 허리사이즈 55에 몸무게 89킬로 나가는
피어나 공주로 만든게 누군데애애애애애애!!!"
제가 말을 받아쳤습니다.
"그래도 공주잖아~글구 공주 되기가 그렇게 쉬워?
맨날 백설공주만 공주야?
나도 더 이상 못 참아! 나한테 당장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지 않으면 당장 나갈 거야!"
"이따식아! 피어나가 공주냐? 뚱땡이 아줌마지??
나더러 빌라구? 장난쳐?
말로 안돼겠네. 오늘 너죽고 나살자, 응?" 하면서
무언가를 가질러 주방으로 갑니다.
어디론가 피신을 해야겠는데
딸도 문 걸어 잠그고 아들도 문 걸어 잠그고...
할 수없이 소파 밑으로 숨었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안 맞으려면...
아내가 슈렉의 목소리를 내며 찾습니다.
"그럼 그렇지 지가 가기는 어딜가!" 하면서 무릎을 끓습니다.
드려 아내가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무언가로 쑤셔댑니다.
등 가려울 때 긁는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입니다.
"빨리 안 나와? 빨리 안 나와?
남자답게 몇 대 맞고 말아, 응?
왜 소파 밑에 숨고 그래!!"
하면 효자손으로 마구마구 찔러댑니다.
참다 참다 못해 너무 아파서 소파 밑에서 기어 나왔습니다.
정말 아팠습니다. 옆구리며 허벅지며 종아리며 어깨죽지하며...
무슨 여자가 이렇게 무자비한 지...
하지만, 확실하게 아내의 무릎을 꿇렸습니다.
그것만은 사실입니다.
아침에 아내가 북어국을 끓여주며 그럽니다.
"북어국 먹고 싶으면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
글구, 감당도 못할 거면서 왜 대들고 그래? 그러니까 더 맞잖아.
글구, 다음부터 어디 가면 간다고 말을 해.
어제 하도 늦길래 전활 했더니 배터리를 뺐대?
생각해봐, 그러면 열 안받겟어?
사정을 말했으면 그렇게 안 맞잖아.
남자가 그게 뭐야? 소파 밑으로 도망이나 치고...
다음부턴 그러지 마."
하여간 아침에 북어국을 먹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도 이젠 아내의 무릎을 꿇릴 수 있다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런 생각만 해도 마냥 행복했습니다.
추신:
술 먹고 들어간 날은 절대로 아내에게 대들지 마세요.
효자손~ 그거 우스워 보여도 디게 아프네요.
글구, 제발 웃지 말아주세요. 저는 무지 아파요.ㅠㅠ
-------- ㅎㅎ 칭다오 도우미 카페 시골버스 님의 글입니다. --
'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 > 청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리에서... (0) | 2009.06.17 |
---|---|
나 미쳤나봐요. (0) | 2009.06.16 |
한국인과 중국인이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 첫 번째, 부자에 대해서 ( 3 ) (0) | 2009.06.09 |
한국인과 중국인들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첫번째, 부자에 대해서( 2 ) (0) | 2009.06.09 |
중국 청도 날씨 (2009. 06. 08 ~ 06. 13) (0) | 2009.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