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청도 이야기

그냥 돌아오세요.

주님의 착한 종 2009. 2. 28. 13:05

여보, 그냥 돌아오세요..

 

 

 어제 저녁엔 주보편집을 하느라 9시 넘게까지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주보 양식을 바꾸느라..

중요한 일은 안젤로 형제가 다 하시고

저는 남은 칸들을 메꾸는 일만 했는데도

시간이 핑핑 날아갑니다.

 

전화가 울립니다.

대장 : "여보세요~~"

마님 : "오늘은 왜 전화 안해요?"

아이고.. 깜빡했구나.

저는 매일 중국시간으로 7시 반 쯤 되어서 마님에게 보고를 합니다.

일기장에 쓰는 대신 마님 머리에 기록합니다.

왜 7시 반이냐? 

그 시간이면 저녁미사도 끝나고, 식사도 끝날 시간이기도 하고

늦게 하면 혹시나 마님 취침에 지장을 줄까봐.. (ㅠ_ㅠ)

 

즉시 대장이 마당쇠로 전환됩니다.

 

마당쇠 : "예, 마님.. 일이 조금 있어서 깜빡했네요."

마님    : "일이 있다니.. 손님들이 있어요?"

마당쇠 : 갑자기 할 말을 잃고 버벅댑니다.

             풀 죽은 목소리로.. "아직 없네요.. 날씨가 풀리면 나아지겠죠."

마님    : "오늘 환율 보니까 아주 미쳤던데?"

마당쇠 : "아닌게 아니라.. 그래서 나도 미칠 것 같아요.."

마님    : "한국도 모두 힘들어해요. 당신만 그런 것도 아니니

             너무 기죽지 말고, 어깨 좀 펴요.

             지난 번에 들어왔을 때 보니, 너무 풀이 죽은 것 같았어요."

마당쇠 : "... " (속으로 "고맙사옵니다. 마님")

마님    : "글라라 오늘 등록금 냈어요. 루시아가 언니라고 보태주고

             글라라도 조교 노릇 하면서 모은 돈 보태고..

             자기들이 모두 해결을 했어요."

마당쇠 : "... 면목없음".

 

마님   : "식사는 했어요?"

마당쇠 : "아니요. 아직.."

            그래놓고는 아차... 싶더라구요.

 

마님  : "왜 식사는 안 하고 그래요?"

          그리고는 건강은 어떻고 저떻고..

          보나마나 뻔하지, 나 없으니 맘대로 담배 피워댈 거고..

          통금(?) 없으니 밤새도록 술 퍼마실거고.. 

          또 일장 연설이 시작됩니다.

 

마당쇠 : "마님, 요즘 돈이 없어서 술 못 마셔요.."

마님    : "혹시 쌀 떨어져서 밥 굶는 건 아니고?"

마당쇠 : ...

마님    : ...

 

잠시 침묵 뒤에 마님이 말합니다.

 

"당신, 그동안 수고 많이 했잖아요..

 당신 때문에 어려움 모르고 행복하게 살았잖아요..

 정년퇴직한 남편.. 찾아봐도 없어요.. 

 당신, 좀 쉬셔도 되요. 고생할 필요 없어요.. 당신 충분히 자격 있어요.."

 

갑자기 뜨거운 것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그냥 돌아오세요..."

 

대꾸할 말이 없어서... 잘 자라고 인사하고는 끊었습니다.

 

부부란, 가족이란 무엇인가..

어제 밤에 생각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힘드시죠?

10월 중순에 청도에 들어와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금융위기가 터지더니 연초에 120원 하던 위안화 환율은 200원 위로 맴돌고..

한국 경제는 맥을 못추는데, 국회에서는 쓸데없는 걸로 쌈박질이나 하고.. 

마님에게 얻어온 돈은 일찌감치 거덜내고..

마님 모르게 은행에서 빌려서 직원들 월급주고, 임대비 내고..

 

다음 달에 한국 들어가면 마님에게 이실직고 하고

원조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저렇게 말을 하니, 참 난감해지네요.

 

뭐 그래도 이왕 왔으니, 버텨봐야 하지 않겠어요?

당분간은 요원하겠지만, 언젠간 환율도 좋아질 때가 있을 거고..

 

우리 모두 힘냅시다.

화이팅... 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