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청도 이야기

퇴직을 하고..

주님의 착한 종 2008. 10. 7. 14:09

2008년 3월 31일,

25년 이상 봉직했던 동서식품에서 드디어 정년퇴직을 했다.

처음에는 담담했고, 또 마음 편히 가지려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매일 새벽 6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던 버릇이 고쳐지지가 않는다.

어김없이 6시에 일어났건만..

 

부지런히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마님이 차려준 아침 상을 감사히 받고..(너무 간단히 먹어서 미안하지만..)

서둘러 지하 주차장으로 달려가

아직은 한산한 새벽길을 달려 회사에 가야 하는데..

 

아,

할 일이 없다.

신문을 다 보고나도 7시..

티비를 켜고 뉴스를 또 듣고,

아침부터 스카이 라이프 채널을 돌리고..

출근하는 큰 딸, 등교하는 작은 딸을 배웅하고,

늦게 부부와 아침을 먹는다.

 

새벽, 아침 시간이 너무 길다.

 

일부러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역시 눈이 떠지는 시간은 매 한가지..

괜히 몸만 축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 후 방향을 바꾸어 등산을 시작했다.

 

일어나자 마자 배낭에 마실 물과 수건,

그리고 빈 펫트 병 몇 개를 담고,

등산복, 등산화에 스틱까지 갖추고 집을 나선다.

 

부천 행 마을 버스를 타고 10여 분 달려서 성지산 구름다리 밑에서 내려

성지산을 오른다.

싱싱한 공수부대 초병들에게 손도 흔들어 주고는

이어 숲이 선물하는 향기를 가슴 깊이 마시며

성지산을 넘어, 소래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이제 막 깨어난 우리 동네를 내려다 보며 체조를 하고

산을 내려와, 빈 병에 약수를 가득 담는다.

 

돈을 못 버니... 물 값이라도 벌어야겠다는 건 아니고..

정수 보다야 생수인 약수가 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집에 돌아오면 8시 반에서 9시가 된다.

 

이렇게 아침시간을 몇 달 보냈더니..

올챙이 같던 배는 쏙 들어갔는데...

아뿔사.. 몸에 맞는 바지가 하나도 없다.

 

이후..

중국에 배낭여행도 다녀오고.

중국에 있는 분들의 도움을 얻어 이곳 저곳 할 일을 찾아봤다.

물론 한국에서도 많은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정년퇴직자를 맞아주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명퇴도 아닌 정년퇴직자가 직업을 구한다고 하니

모두들 그냥 쉬시지... 한다.

 

일자리가 있긴 있었다.

아파트 경비, 건물  경비..

뭐 경비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자리는 있었는데..

(지금 경비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뭔가.. 좀, 아니 많이 억울했다.

그래도 대기업에서 그것도 전산이라는 첨단 기술을 담당하는 부서의

부서장이었는데,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중국이다.

나중에 중국 이야기는 무척이나 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중국에 들락거리며,

몇 가지 제안받은 일들을 연구 분석했으나

결국은 접게 되었다.

이유도 나중에 밝힐 것이다.

 

아무튼 200년 9월 말일..

회사를 그만 둔지 꼭 5개월 후에

두리두리 가방을 싸들고 청도로 왔다.

 

이제 50 중순의 한 장년신사..(? 늙은이라던지, 노인이라는 말은 정말 No..)

어렵게 낯선 청도에서 혼자 생활을 시작했다.

 

잘 해나가야지...

스스로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