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72) - 31살의 총각의 마지막 삶 - 2

주님의 착한 종 2008. 2. 29. 14:33

31 총각의 마지막  - 2

 

지난  소식지에서 말씀 드렸던 31 말기 신장암 환자의 이후의 근황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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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날 꽃마을에 입원해서 대략 한달 정도는 움직이고 걷고 식사도 

조금씩   있었지만,  후부터는 옆구리의 통증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잠도 계속해서 앉아서 자야 했습니다. 

구토도 점점 심해져서 물조차 넘기지를 못했습니다. 

먹으면 바로 토했는데 이것은 암세포가 () 전이가 되었기 때문인데도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그저께 먹은 수박이 얹혀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어느 날은 저에게 마지막으로 바닷가를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바다를 좋아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죽을 수밖에 없는 

괴로움과,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털어 버리고 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울다 보면 풀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친구들 차를 얻어 타고 갔다 오겠다고 하는데 사실 동해바다까지 

가기에는 너무  거리였습니다. 

이미 걷는 것은 고사하고 앉아 있는 것도  늘어질 정도였습니다. 

보름이상을 식사를 제대로  적이 없는데다 수박  조각이 식사의 

전부였으니 체력이 남아 있을 리 없었습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때문인지 진통제 외에 포도당이나 영양제도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런 몸을 이끌고 어느  저녁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하고는 

 길로 동해바다까지 갔습니다.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진통제였습니다. 

마약성 진통제좌약을 거의 두 시간 간격으로 계속 투여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갖고 있는 약이 4개밖에 없었습니다. 

몸을 무리해서 움직였으니 약효가  빨리 떨어질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오전 10시쯤 되어 들어왔는데 거의 초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바닷가를 보고 오니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움직일  있었던 마지막 몸짓이었고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이후로 통증이  심해졌고 자신도 모를 헛소리와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통증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이미 1000mg 마약성 진통제가 들어가고 있었음에도 치솟는 통증을 

따라 잡기에는 버거웠습니다. 

(일반병원에서는 200mg정도가 한계) 

 

임종 전날 

어제 밤에 엄마, 아버지를 만나 얘기도 나누었다며 ” 행복해  했습니다. 

이는 죽기 전에 반짝 기력을 회복하는 듯이 보이는 반조 현상입니다. 

 다음날 오전 11시쯤부터 임종이 시작되더니 오후 5 45분에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한 모습으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마도 엄마, 아버지가 배웅을 나왔을 것입니다. 

엄마, 아버지의 정을 그렇게도 그리워했는데 이제는 원 없이 만나 

행복해  것입니다.  

6 5 입원해서 7 20일까지 불과 한달 보름 정도를  셈입니다. 
 회원님의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영원한 안식을 누릴  있도록........